무조건 추천! 내공이 느껴지는 번역가의 책들 4
단어를 건너는 사람들, 올 봄에 읽기 좋은 번역가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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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번역가의 영역을 넘어,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들이 있다. 읽고 감동하는 문장들이 누구의 손을 거쳐 탄생했는지를 다시금 돌아보게끔 내공이 느껴지는 번역가의 책들을 소개한다.
번역은 단순 언어의 전환을 넘어, 함부로 알지 못하는 문화와 미묘한 감정을 연결하는 예술이자 기술이다. 번역가는 원작의 뉘앙스 하나 까지도 함부로 넘어가지 못하는 섬세함과 어감이 주는 확장성까지 고민한다. 어느 순간부터 번역가가 쓴 소설과 에세이, 희곡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들이 써 내려간 글에는 언어를 다루는 직업인의 섬세한 통찰과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텍스트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번역가의 프로페셔널한 모습도 좋지만, 번역가들이 언어 앞에서 보이는 태도에 더욱 마음이 간다. 사려 깊고도 담대한 태도. 그래서 일까. 번역가들의 글을 읽을 때면, 글은 결국 쓰는 사람을 닮아 있다는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번역가들의 글을 더 많이, 함께 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흰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별 지음,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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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고래의 흼에 대하여_홍한별

흰고래의 흼에 대하여_홍한별
"잡히지 않는 공허. 포착할 수 없는 의미. 이쪽을 붙들면 저쪽을 놓치고, 저쪽을 잡으면 이쪽이 사라지는 단어를, 의미를 고정하는 순간 무수한 틈이 생겨버리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밀크맨>으로 제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한, 클레어 키건, 애나 번스, 가즈오 이시구로, 데버라 리비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의 소설을 한국어로 옮긴 홍한별 번역가의 에세이다. 그는 책에서 번역가의 삶을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화자 이슈메일에 비유한다. 작품에서 이슈메일은 흰고래 모비 딕을 알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만다. 번역도 비슷하다. 늘 완전하지 않은 시도다. 홍한별 번역가는 흰 고래처럼 의미를 온전히 붙잡을 수 없는 언어의 세계를 탐색하며, 번역이라는 행위가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짚어간다. 또한 어떤 번역이 좋은 번역인가에 대한 주장도 분분하다. 데버라 스미스가 번역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영어판에 관련된 논란에 대한 해석 역시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홍한별 번역가는 불가능한 번역을 정의하려는 시도에서 쉬이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 하다. 결연하기까지 한 모습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잔상처럼 남는다.
우는 나와 우는 우는, 하은빈 지음, 동녘
」
사진/동녘 제공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에서 활동했으며 일라이 클레어의 책《눈부시게 불완전한》을 번역한 하은빈의 첫 책. 클레어의 원서를 이토록 적확하고 유려하게 번역한 사람은 누구일까 늘 궁금했었다. 장애를 가진 연인과 함께하다 헤어진 후 장애 담론의 언저리를 서성이게 된 개인적 경험을 낱낱이 꺼내는 책을 읽자,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다. ‘은빈’과 ‘우’는 대학 시절부터 함께 한 연인이지만 우가 근육병을 가진 장애인이고, 은빈이 비장애인이라는 사실로 인해 ‘조금 다른’ 연애를 하게 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터놓는다. 세상은 그들을 쉽게 정의하려 하거나, 그저 특별한 사례로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사랑과 돌봄이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이별 후에도 끝없이 되짚으며 사랑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5년의 긴 연애 끝에 남은 감정과 무수한 그리움과 후련함을 따라 가보면 마음이 먹먹해지고 이내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책은 결국 사랑을 넘어, 많은 이들이 경험해 보지 못했을 돌봄과 그 가능성의 세계를 그려보게 만든다.
누아, 신유진 지음,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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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알마 제공
신유진 번역가 겸 작가가 쓴 누아는 알마 출판사가 야심차게 시도하는 창작 희곡 시리즈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희곡을 공부한 신유진은 신비한 느낌을 지닌 장종완 작가의 그림에서 시작해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다시 썼다. 그 유명한 <어린 왕자>를 서늘하고 슬픈 이야기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프랑스어로 ‘검은’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어린 왕자로 덧대어지는 인물은 희곡 속 ‘검은 실루엣’으로 등장한다. 아이이자 목소리인 존재는 어둠 속에서 길고 긴 기다림을 지나 빛을 향해 나아간다. “이야기는 상자를 닮아서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준다. 닫거나, 열거나. 다시 말해 간직하거나 이어가거나. 간직하는 것은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나 갇힐 수 있다. 이어가는 것은 어떤 상실을 감수해야만 한다.” 소리내 읽었을 때, 감정은 더욱 고조되고 붙잡고 싶은 문장이 주는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밤이 아닌데도 밤이 되는, 최리외 지음, 핀드
」
사진/핀드 제공
최근 록산 게이의 칼럼을 묶은 국내 신간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를 번역해 촉망받는 번역가로, 매력적인 낭독자로 활동하는 최리외의 첫 책. 편지와 낭독을 좋아하고 목소리가 지닌 가능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그를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나 쓰고 싶은 것들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기는 작업에 매료되었을까 싶다. “기억하고 싶은 것들은 전부 기억되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언제나 기억된다.”라든가 시차 (TIME DEVIATION)를 두고 “편지의 본질은 시차다. 대면하지 않기에 상상의 여지와 오해의 여지가 동시에 발생하는 일탈적 매체. 편지는 결코 개별적 주체 간의 대화가 아니며, 리얼리티가 아닌 해석의 산물이다.”라고 쓴다. 글은 편지가 되었다가 시가 되었다가 소설, 내밀한 일기가 되기도 한다. 언어 사이에서 길을 잃고, 다시 방향을 잡는 번역의 본질을 고민하는 최리외가 읊조리고 떠올릴 수 있는 표현을 한껏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Credit
- 사진_알마_문학동네_핀드_동녘_동아시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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