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아녜스 칼라마르가 직시하는 것
인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힘에 대하여.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MISSION CRITICAL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아녜스 칼라마르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 언제나 부패와 불의에 맞선다. 독재자들과 싸우고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건 그에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아녜스 칼라마르(Agnés Callamard)는 매년 여름 저항의 힘을 되새긴다. 더 정확하게는 8월 15일, 할아버지가 나치에 총살당한 날마다. “그날이 올 때마다 할아버지가 처형된 장소를 찾아갔어요. 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은 제 삶의 중심과도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어떤 가치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어요.”
우리는 런던의 국제앰네스티 본부에 있는 칼라마르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할아버지 이야기에 덧붙여 평생 여성 교육과 난민 보호 같은 대의를 위해 싸워온 어머니와, 열렬한 페미니스트였던 할머니의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듣고 보니 인권 단체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는 칼라마르의 지금이 마치 필연처럼 느껴졌다. 정작 그 스스로는 불안감에 압도되어 이 직업을 택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프랑스 남부 아비뇽 인근의 한 마을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고정된 삶을 사는 대신 세상을 탐험하기를 갈망했다. 틀을 깨고 싶었다. 그르노블 정치대학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워드대학에서 국제 및 아프리카학 석사 과정을, 뉴욕 뉴스쿨에서 박사 과정을 거쳤다. 예상하지 못한 것들을 안겨줄, 도전이 될 만한 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칼라마르는 젊은 시절 피에르 샤네 당시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의 보좌관으로 일한 적이 있다. 이후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는 영국 단체인 ‘아티클 19(Article 19)’과 콜롬비아대학교의 ‘글로벌 표현의 자유(Global Freedom of Expression)’ 이니셔티브에서 각각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이후 2016년에는 유엔 인권이사회(UNHRC)의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되었다. “대단한 자리였고, 매우 즐겁게 수행했습니다. 특별보고관으로 일하면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철저히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독립적으로 일하는 법도 배웠고요.”
유엔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비사법적 살인사건을 전문적으로 조사했다. 증언을 분석하고 증거를 입증하는 데 수개월이 걸리곤 했다. 그가 맡은 케이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018년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사체가 훼손된 채 발견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인사건이었다. 칼라마르는 러시아 활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살인미수사건도 조사했다. 자신의 독살 시도에 관한 칼라마르의 조사 과정에 협조했던 나발니는 2024년 2월, 시베리아에 있는 러시아 교도소에서 복역 중 사망했다. “아, 나의 친애하는(my dear) 알렉세이여.” 대화를 나누다 나발니의 이름이 언급되자 칼라마르의 눈은 금세 촉촉해졌다.



전쟁이 지속되는, 참혹한 갈등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이 가진 분노가 있다. 우리의 과제는 이 분노를 변화를 위한 긍정적인 투쟁으로 바꾸는 것이다.
칼라마르가 조사한 사망사건은 정의를 추구하고 최고위층의 부패를 근절하려다 입막음을 당한 자들에게 일어난 일이 다수다. 칼라마르가 하는 일 역시 정확히 그런 것이지만 자신을 향해 꽂히는 걱정 어린 눈초리들에 대해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 당국 관계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던 일에 대해 듣는 동안, 앞서 그가 이 일은 ‘혼자’ 하는 일이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저는 정말 화가 났어요. 저는 그냥 제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니까요. 살인을 저지른 건 그 사람들이잖아요!” 칼라마르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가 조사했던 가장 흥미로운 케이스 중 하나는 2020년 이란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사망사건이었다. 솔레이마니는 이라크에서 미국의 드론 표적 공격으로 사망했다. 칼라마르는 이 공격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결론지었다. “솔레이마니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아주 끔찍한 부류에 가까웠죠. 하지만 공식적으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이 인류의 첨단기술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부분이 분명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아주 중요한 조사였고요.” 그 사람이 아무리 달갑지 않고, 심지어는 실제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앰네스티의 핵심 신조다. 칼라마르 역시 그 권리는 불변의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2021년, 칼라마르는 자금과 지원이 부족한 것에 좌절감을 느끼고 유엔을 떠난다.(그는 카슈끄지 사건을 맡았을 당시 조사 비용의 상당 부분을 사비로 부담했다.) 이후 국제앰네스티로 돌아와 최고위직인 사무총장직을 맡게 되었다. 처음 국제앰네스티에서 일한 시점으로부터 20년 만의 일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멋진 귀향’이었다. “조사관으로 일하는 건 아주 외로운 일이었어요. 조사관의 영향력은 철저히 한 개인의 에너지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도움을 얻는 능력에 달려 있으니까요. 국제앰네스티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회원과 활동가들의 탄탄한 네트워크가 뒷받침해줍니다. 이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 플랫폼은 없을 거예요.”
외롭다는 것 외에도 일의 어려움은 많다. 칼라마르는 홀로 움직이던 활동가에서 글로벌 운영을 총괄하는 리더가 되었다. 다시 말해 예산 스프레드 시트를 들여다보거나, 어쩌면 가장 까다로운 일인 인력 관리처럼 필수적인 업무를 도맡아야 했다는 것이다. “앰네스티는 다문화, 다국적, 다종교 단체예요. 사회 여러 층위에 갈등이 스며들어 있는 시대에 함께 일하기 수월한 집단은 아니죠. 어쩌면 앰네스티가 저를 시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칼라마르는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되고, 가자지구에서의 분쟁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격화되는 것을 목도했다. 이런 상황은 팔레스타인인, 유대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이 모두 속해 있는 그의 팀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과 토론하며 다른 견해를 접하는 과정을 좋아하는 칼라마르에게도 이들 각자의 목소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 과제를 잘 해결해나갈 수 있었던 건 언제나 흔들리지 않을 기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종파를 초월해 어떻게든 인류를 지켜내겠다는 마음. 많은 것을 타협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정치로 발을 들이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완고하고 단호할 것. 칼라마르가 말하는 자신의 업무관이다. 그는 이른 새벽까지 일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런던에서의 하루를 보면 낮엔 회의로, 저녁은 보고서를 읽고 작성하는 일의 연속이다. 출장도 잦다. 문득 그가 어떤 타입의 리더일지 궁금해졌다. “저는 팀이 최상의 업무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아주 강하게 밀어붙입니다. 복잡한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제가 종종 실무 관리자가 되기를 자처하기도 하죠. 우리 조직의 페미니즘과 반인종주의 원칙을 발전시키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리더가 되고 싶어요. 든든한 동료들의 지원 덕에 어느 정도 그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고요. 결국 우리가 하는 건 단 하나의 목적에 집중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레바논에서 일어난 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전 세계적 참상은 칼라마르가 말한 “인권 보호가 급속도로 악화하고, 인류의 기본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해진” 현실이다. 우리의 대화 중에 나온 더 노골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지옥으로 추락한” 상황. 칼라마르는 세계사의 어두운 암흑기와도 같은 시기에 인권 단체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전쟁 범죄들이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채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나날. 인권을 지키기 위한 그 어떤 대비책도 없이 계속되는 현실은 그에게도 걱정인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이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무관심이야말로 기후변화와 함께 글로벌 사회로서 우리가 맞닥뜨린 가장 큰 실존적 위협임을 강조하면서.
인류가 가진 최악의 얼굴을 계속해서 마주하는 직업을 가진 칼라마르는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를 어떻게 다독이는 것일까. 꺼내 놓은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인생에는 사랑이 있어야 해요.” 틈틈이 소설을 읽고, 캠핑카로 곳곳을 여행하는 건 일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가장 최근의 여행지는 아이슬란드였다.) 90대인 아버지와 함께 종종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칼라마르는 세상이 더 나아진다는 희망을 갖고 있을까? 그는 이 질문에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내 분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참혹한 갈등 상황을 직접, 혹은 멀리서 지켜본 사람들이 가진 분노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의 과제는 그 분노의 방향을 바꾸어 변화를 위한 긍정적인 투쟁으로 바꾸는 거예요. 그걸 해낼 수 있다면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죠.” 흔들림 없는 결의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새어나왔다.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단체들이 포기할 수는 없어요. 그건 애초에 없는 선택지예요. 저에게 요구되는 건 그저 용기를 갖는 것뿐입니다. 용기가 있으면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Credit
- 글/ Marie-Claire Chappet
- 사진/ Eduardo Quiros Riesgo, Courtesy of Amnesty International, Getty Images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Celeb's BIG News
#스트레이 키즈, #BTS, #엔믹스, #블랙핑크, #에스파, #세븐틴, #올데이 프로젝트, #지 프룩 파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