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로익 프리장(Loïc Prigent)의 책

패션 산업에 대한 로익 프리장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긴 에세이 <1조 개의 리본>

프로필 by 서동범 2025.03.11

THE CRAZY STORY OF FASHION


패션업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로익 프리장(Loïc Prigent)은 30년이 넘도록 패션 세계를 관찰하고 기록해온 패션 전문 기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제작자이다. 최근 <1조 개의 리본(Mille Milliards De Rubans): 패션의 진짜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한 그가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과 유머 감각을 발휘해 패션이라는 환상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로익 프리장의 시그너처 룩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잘 나타내는 건 목소리다. 그는 1990년대 말부터 패션계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TV나 플랫폼을 통해 선보였다. 영상에 나오는 코멘터리는 그가 직접 남긴 것으로, 종종 불어를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매우 프랑스적인 영어로 말한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패션위크 런웨이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절대 놓치지 않는다. 패션위크에서 들은 재담을 모아 이미 두 권의 책을 펴낸 그가 이번에는 에세이를 통해 좀 더 깊은 문학 세계를 보여준다. <내가 싫어하는 것만 모아 놓은 패션이 너무 좋아(J’adore la mode mais c’est tout ce que je deteste)>, <샴페인 좀 줘 봐, 목에 고양이가 걸렸어(Passe-moi le champagne, j’ai un chat dans la gorge)> 이후 선보이는 에세이 <1조 개의 리본>은 로익 프리장의 패션 산업에 대한 철학을 담았다. 다음은 패션의 이면(裏面)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그와 나눈 대화이다.



(위부터 시계 방향) 칼 라거펠트의 2014 F/W 샤넬 컬렉션 쇼의 한 장면, 2012 F/W 루이 비통 쇼 룩의 뒷모습, 로익 프리장의 시그너처 룩, 19세기 유제니 황후의 초상화.



하퍼스 바자 지난 10월, 패션업계의 역사를 다룬 신작 <1조 개의 리본>이 발간되었죠.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로익 프리장 일종의 팩트체크(fact-checking) 과정에서 시작되었어요. 패션업계에 대해 답답한 부분과 감정도 있었고요. 일에 대해서는 아주 오랫동안 만족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었죠. 처음 패션업계에 발을 들인 건 패션의 변화무쌍함과 덧없음에 끌렸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다가올 시간과 6개월 후의 일을 위해 상상력을 쏟아붓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작업이 이루어지는 아틀리에는 관심 밖이었어요. 과거의 부분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알지 못했던 레퍼런스나 이름들이 계속 나오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믿을 수 없는, 흥미로운 패션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고 더 깊게 파고들었죠. 그게 <1조 개의 리본>을 쓰고 완성한 계기입니다. 구성 면에서는 런웨이 쇼를 다루듯 패션의 역사에 대해 글을 썼어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찰스 프레데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에 대하여 마치 현재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는 젊은 디자이너처럼 평가한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19세기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유제니(Elisabeth Amalie Eugenie) 황후의 이야기를 다루며 ‘A’ 리스트 셀럽에게 하듯이 그녀를 둘러싼 스캔들이나 이슈를 신랄하게 바라보는 일도요. 패션업계 전체를 보는 관점과 마찬가지로 그 역사 또한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는 거죠.


하퍼스 바자 책은 당신이 참석했던 첫 패션쇼, 1997년 이브 생 로랑 런웨이로 시작하죠. 그 당시 쇼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로익 프리장 무슨 원자력 발전소에라도 들어온 느낌이었어요. 쇼의 장소는 마르소 가(Avenue Marceau)에 위치한 건물 안이었고, 당시 극소수의 인원만 참석했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사교계 명사들이 녹색 카펫 바닥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꿈인가 싶어 제 자신을 꼬집어봐요. 당시 이브 생 로랑의 뮤즈인 룰루 드 라 팔레즈(Loulou de la Falaise)가 저를 무대 뒤로 데려가더니 컬렉션 피스들을 만져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천상에서 가지고 온 듯한 푸른색 모슬린에 손을 갖다 댄 기억이 나는데, 마치 물을 어루만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사실 지금도 왜 그녀가 저를 백스테이지에 데려갔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누가 봐도 촌놈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이해를 못하는 모양인데, 뭐 한 가지라도 알려주자’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요.(웃음)


하퍼스 바자 본격적으로 파리에 정착하며 쇼에 참석하기 전, 패션업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요?


로익 프리장 처음 런웨이라는 것을 본 건 어머니가 보시던 잡지 <주르 드 프랑스(Jour de France, 프랑스의 나날)>였어요. 무대 아래에서 찍은 모델들의 사진이 실려 있었죠.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바라보던 시선이 지금 제가 무대 밑에서 옷을 올려다보는 것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아마도 그때부터 이 작업과의 연결고리가 시작된 것 같아요. 또 다른 기억도 있는데(이 순간 제가 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재밌네요), 열다섯 살 때 토요일 오후 수업에 그려볼 그림을 찾으려고 <하퍼스 바자> 한 권을 샀어요. 잡지를 펼쳐 보는데 파리에서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거기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죠. 파리는 단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고 변화하며, 기쁨이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상(無常)한 세계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격렬한 광기에 끌렸어요. 수년 후 처음 파리에 발을 디딘 후 만나게 된 이 패션 세계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일치했어요. 좋은 면은 창작자들이었어요.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열정을 품은 채 변화를 일으키며, 이번 시즌에는 다른 그 어떤 컬러도 아닌 꼭 이 색이어야만 한다는 그런 사람들요. 싫었던 것은 제가 그 색의 옷을 입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무시하기로 마음먹는 그런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


하퍼스 바자 이번 에세이는 주로 19세기 패션에 주목하지만 현재 패션업계의 고민과 문제에 대해서도 담겨 있습니다. 이를테면 끊임없는 창조와 우수성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부당한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제조과정이라든지 환경적인 영향 같은 것.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로익 프리장 차이점은 없어요. 패션업계의 부덕함은 패션계에서 활동하는 우리 모두의 부덕입니다. 패션업계의 윤리성은 그 세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의해 정해지죠. 사람이 변해야 패션도 변해요. 이것도 하나의 입장 표명이지만 나를 꿈꾸게 하고 이곳으로 이끈 파리라는 도시와 그 창의성은 예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영상들은 ‘파리’라는 말로 시작할 때가 많죠. 그렇게 프레임을 구성하고, 창작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혁신의 환희와 그 탁월함을 지켜보는 거죠. 촬영하는 절차가 항상 고결하지만은 않지만 카메라에 담는 것은 어쨌든 기쁨의 순간과 흔히 찾아보기 힘든 패션의 유토피아 같은 거예요. 어떻게 보면 통속극이나 최단 시간에 런웨이 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면이 조르주 페도(Georges Feydeau)의 희극과도 닮아 있죠. 전 그런 걸 무척 좋아합니다. 시간과의 싸움을 그린 코미디 장르라고나 할까요? 일례로 칼 라거펠트와 장 폴 고티에를 여러 번 촬영했는데(초반에는 두 사람이 경쟁하는 사이라는 것을 몰랐어요), 촬영을 마치고 나니 두 사람이 저에게 똑같이 “연극 끝”이라고 하더군요. 카메라 앞에서는 누구나 착해지거든요.



(왼쪽부터) 이브 생 로랑과 그의 뮤즈 룰루 드라 팔레즈, 슈퍼마켓 테마의 2014 F/W 샤넬 쇼, 오스트리아 엘리자베스 황후의 초상, 마크 제이콥스의 2012 F/W 루이 비통 컬렉션.



하퍼스 바자 지난 트렌드 중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건?


로익 프리장 토가 나올 것 같은 그 초록색, 브랫(Brat) 그린요. 정말이지 사상 최악의 컬러였어요. 그런데 싱어송라이터 찰리 XCX 덕분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언젠가는 또 싫어질 것 같긴 한데,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패션의 힘이 경이롭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주변 사람들이 어떤 경향을 따라가는 걸 지켜보는 게 흥미로워요. 역으로 눈꼴사나운 것일수록 그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요. 가끔은 유행에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1백 퍼센트 사실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에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부드럽게 말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며칠 전 TV에서 줄타기로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넌 슬랙라이너 얀 루스(Slackliner Jaan Roose)의 모습이 방영되어 보았는데, 어정쩡한 길이와 핏의 팬츠를 입었더라고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엄청 힘들었을 테고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데 저런 차림이라니, 제가 다 슬프더라고요. 하지만 내년 여름에는 일명 7부 팬츠가 불티나게 팔릴지 누가 알아요. 저는 ‘뉴포리아(Newphoria)’가 실재한다고 믿습니다. 완전히 반윤리적이긴 하지만, 새 것이 주는 기쁨이라는 건 분명히 존재하죠. 새로운 셔츠를 입으면 기운도 생기고 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지잖아요?


하퍼스 바자 셔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오늘도 셔츠를 입고 있어요. 캡모자와 안경도 쓰고요. 어떻게 이 시그너처 스타일을 오랫동안 고수하게 되었나요?


로익 프리장 어느 날 그렇게 됐어요.(웃음) 처음에는 무언가에 대한 거부 반응으로 시작되었어요. 동료들을 존중하지만, 한 예로 주황색 베스트 같은 것을 입고 다니는 그들의 방식이 너무 복잡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디자이너를 만날 때는 중립적인 모습이고 싶었습니다. 마치 스펀지처럼요. 그러니 칼 라거펠트와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Ines de la Fressange)가 “옷보단 필름이 낫네…”라며 우스갯소리를 했겠죠. 때와 장소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던 건 인정합니다. 스타일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나 싶은 시절도 있었고요. 30년이 지나고 좀 더 나이에 맞는 옷을 입으려는 시도는 했지만 저만의 스타일은 유지했어요. 사람들의 눈에는 예의 없게 보였을 수도 있었지만, 저에게는 나름 존경의 표시였어요. 노동자들이 입는 체크무늬 셔츠를 입어도 농사를 지으시던 조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댄디함과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모델 롤리 바히아(Loli Bahia)가 생일 선물로 웨일스 보너(Wales Bonner)의 파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스트라이프 패턴 재킷을 선물해줬어요. 저라면 그런 옷을 구매할 생각조차 못했을 텐데, 입어보니 어찌나 멋지던지. 그때의 경험과 함께 뉴욕의 콜리나 스트라다(Collina Strada)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그 다채로운 분위기와 스타일을 보고 이제는 긴장을 좀 풀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하퍼스 바자 커리어 초기와 비교해서 일에 대한 접근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로익 프리장 판단을 좀 덜하게 됐어요.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포탄이라도 쏠 기세였습니다. 패기와 열정이 넘쳤고, 기성 세대와 의견도 안 맞았으며 매사에 단호한 성격이었죠. 조금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지금은 그때보다는 더 조심하고 세심하며 제 자신의 취향이라 할지라도 적당히 경계하려 합니다. 예를 들면 콜리나 스트라다의 아름다움이 뭔지 저는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왜 그렇게 난해한 건지 모르겠고, 자주 등장하는 그 초록색은 누가 입어도 볼품없어 보일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콜리나 스트라다의 등장으로 인해 거리에는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피어나고,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는 그런 부분이 정말 구원처럼 느껴집니다. 저의 미적 취향과는 맞지 않지만, 요즘 콜리나 스트라다가 쿨하고 기분 좋은 무언가에 기여한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정말 흥미로워요. 패션에 대해 글을 쓰고 패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열정은 아직 그대로예요. 가끔은 저도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가 싶고, 제 자신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요. 한편으로는 이룬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니면 너무 빨리 잊어버렸든지….



Credit

  • 글/ Julien Magalhaes
  • 번역/ 이진명
  • 사진/ ⓒ Getty Images, Bridgeman, ABACA, Launchmetrics, Piercarlo Quecchia, DSL Studio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