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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변신한 비투비 이창섭

데뷔 12년차에 찾아온 성대폴립… 그리고 극복하기까지. 가수 이창섭이 잘 해내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불안을 조리하는 방법.

프로필 by 조서연 2025.03.11

‘적당히’라는 표현은 주로 요리 레시피에서 많이 쓰인다. “적당히 이만큼 넣으세요.”라는 말은 결국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기호에 맞게 조절하라’는 뜻이다. 가수 이창섭이 펴낸 첫 에세이 <적당한 사람>에서 언급한 적당함도 비슷한 맥락에서 출발한다.

이창섭은 그룹 비투비로 데뷔해 최근 학과 리뷰하는 웹 예능 ‘전과자’에서활약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리메이크곡 ‘천상연’으로 노래방 인기 차트에서 24주간 1위를 차지했고, 첫 솔로 정규 앨범을 발표한 후 전국 투어도 마쳤다. 그런 그가 이제는 에세이 작가로 변신했다.

그가 책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솔로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한 앙코르 콘서트 VCR에서 그는 스스로를 ‘적당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책에서 정의한 ‘적당함’은 단순한 균형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유지하는 조화로운 상태’라고 했다. 또, 자신을 어느 한 틀에 가두지 않은,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존재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웃긴데 우습지 않는 사람'

에디터가 이창섭을 데뷔 초 때부터 보며 생각했던 모습이다. 이는 그가 책에서 말한, ‘어느 것 하나로 규정되지 않은 존재’와 맞닿아 있다. 그가 언급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사고 실험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상자 속 고양이가 방사성 물질과 함께 있을 때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한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삶에 대입해 보면, 세상은 대립하는 두 가능성이 공존하는 곳이며, 반드시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의 삶도 명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닌,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끊임없이 결정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노래’라는 선택지

이창섭이 처음 음악을 접한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음악학원에서 ‘앙상블 수업’을 들으며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경험을 한 후, 그는 음악에 빠진다. 이후 가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자, 가까운 피아노 학원을 찾아 원장에게 부탁해 월세를 내고 노래 연습을 하는 열의를 보인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연예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아이돌 연습생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데뷔’라는 꿈 하나만 바라보고 모인 사람들 속에서 치열한 나날을 보낸다. ‘준비한 게 잘 안 되면 어쩌지’라는 고민을 하면서도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다짐으로 자신을 다잡았다고 한다. 특히, 매달 치르는 ‘월말 평가’는 그와 동료들에게 혹독한 겨울과도 같았다. 평가 후 연습실을 가득 메우는 울음소리에 작별인사를 하면서 더욱 연습에 매진한다. 당시 소속사에는 1인용 보컬 연습실이 따로 있었는데, 이를 차지하려면 출근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야 했다. 연습실을 확보하지 못한 날엔 ‘화장실에서 연습하며 버텼다’고 회상한다. 그러면서 그는 연습을 소홀히 한 친구들에게서 나타난 변화를 보며 깨닫는다. 실력이란 단기간에 몰아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겹 한 겹 레이어처럼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데뷔 후에도 쉽지 않았다. 약 3년 동안 수익이 거의 없어 회사에서 용돈을 받으며 생활해야 했다.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할 법도 했지만, 그와 멤버들은 끝까지 버텼다. 그리고 그들이 막다른 길에서 만난 운명의 곡이 바로 ‘괜찮아요’였다. 이 노래는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비투비의 상황과도 맞물려 더욱 진정성 있게 전달되었다. 그렇게 데뷔 4년 만에 실시간 차트 1위를 차지했고, 멤버들과 소속사 직원들은 함께 울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연습실 지박령

이창섭에게는 ‘연습실 지박령’이라는 별명이 있다.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 후까지, 연습실을 가면 늘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거지만, 그는 이러한 습관이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연습과 노력을 ‘세팅’이라고 표현하며, 철저하게 준비된 세팅 속에서 무대를 완성한다고 말한다. 뮤지컬 연습을 할 때도 ‘걸음 수’까지 계산하며 철저한 연습을 거듭한다. 그가 이렇게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이유는 완벽한 준비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을 해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는 존재한다. 그에게 가장 큰 변수는 ‘성대 폴립’이었다. 목소리는 성대가 여닫히면서 발생하는데, 성대에 물혹이 생기면 가늠할 수 없는 목 상태가 되어 음을 제대로 낼 수 없다. 노래가 본업인 그에게 타격은 불가피했다. “마치 지뢰밭을 걷는 것처럼 혼란스럽고 위축됐다.” 그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부정적 에너지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

이창섭이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잘 마주하는 것’이다. 그는 불안할 때 자신과 대화한다. ‘나 지금 무서운 마음이 드네. 그래. 무서워하는 건 알겠어. 왜 무서운 거지? 아, 잘하고 싶은데 그 마음 때문에 올라가기 직전에 압박감이 너무 많이 느껴져서 무서운 거네(중략)’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면,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수학자 김민형은 ‘세상의 현상을 이해할수록 행동의 폭도 넓어진다’고 말했다. 이창섭이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방식도 비슷한 맥락이다. 불안을 직시하고 원인을 이해하면, 결국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더욱이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그로써 부정적인 에너지로부터 지켜낼 자신만의 방법이 필요했을 거다. 상하좌우, 컷 대 컷으로 나란히 비교당하기도, 타인뿐만 아니라 과거의 자신의 모습과도 비교 대상이 되는 순간을 마주하면서 말이다. 그중에서도 그는 타인과 비교 대상으로 놓일 때 상황 자체만을 놓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면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사람들을 보며 더 나은 방식을 배우려고 했다.


관계도, 일도 ‘여백’을 남기자.

이창섭은 노래에 진심을 담는 것과 감정을 꽉 눌러 담는 것의 사이에서 조절한다. 그는 가수를 ‘전달자’라고 표현하며, 듣는 이들이 감정을 채울 공간을 남겨둔다. 마찬가지로 삶에서도 ‘적당한 여백’을 중요하게 여긴다.

관계적인 측면에서는 그가 운영하는 실용음악학원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고민 없는 질문’은 가급적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시안적으로 ‘스킬’을 떠먹여 주기보다는 직접 깨우치고 성장하는 쪽으로 돕는다. 반려견 구리가 아기였던 시절에는 지극한 애정 표현을 삼갔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하는 구리가 분리 불안을 겪지 않도록 조절한 것이다. 그러면서 활동량이 다른 강아지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비글견을 위해 산책만큼은 절대적으로 지켰다고 한다.

일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쉴 때 무대와는 정반대로 집에서 적막과 고요를 즐기며, 어떠한 자극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면서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구름에도 눈길을 머물고, 사소한 경험도 소중히 대하며, 그 순간을 온전히 감각한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소리도 끼워주려 하지 않는다고. 몸과 마음이 힘든 날에는 걸으면서 혼자서 생각하고 스스로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진다. 화려하고 일거수일투족 이슈 되는 그의 직업과는 정반대의 일상을 추구한다.

그가 이렇게 적당한 여백을 남길 수 있었던 건 그의 어머니가 ‘겪어볼 여유’를 준 덕분이었다. 학창시절 스케이트보드 선수였던 아들이 부상으로 그만둬야 할 때도 채근하지 않고, 드럼을 권유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최단 거리를 알려주기보다는 그가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줬다.


작가 이창섭이 첫 장에 쓴 ‘잘 해내고 싶은 마음으로부터’라는 말이 시선에 탁 걸친다. 관계도, 일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삶은 완벽할 수 없다. 그가 ‘그래, 늘 그랬듯 언제나’에서 밝힌 것처럼 슬럼프가 왔을 때면 백야를 지날 수도, 뮤지컬 멤피스 ‘Love Will Stand When All Else Falls’ 가사처럼 ‘지친 순간에 부디 기억해 다시 일어날 용기’로 삶의 희망을 얻을 수도 있는 여러 가능성이 난무하는 삶 속에서 말이다. 삶은 완벽할 수 없기에 적당한 틈과 여백을 두며, 각자만의 방식으로 삶을 조리해 나가면 된다.

‘큰 이벤트가 없는 소소한 일상도 삶이라는 영화 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복선 중 하나일 것이다’

인생을 영화로 비유한 그의 표현에 이렇게 더해 본다. 삼삼한 나날들마저 모두 우리 삶의 ‘복선’인 것 같다. 코믹, 멜로, 호러 등 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는 인생이라는 영화에 어떤 결말을 맞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구성될 무수한 장면들을 기대하는 것 또한 삶이기에. 그러한 순간 속에서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인해 어딘가에서 헤맬, 그렇지만 또 다시 방향을 찾아 나갈 ‘동시대의 모든 이창섭’에게 적당하고 무탈한 일상이 스미기를 바라며 그는 에세이로 노래했다.


Credit

  • 사진 / 21세기북스
  • 글 / 어시스턴트 에디터 조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