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기 감독의 유머 코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부산행> <극한직업> <사바하>까지. 지난 몇 년 사이 한국 영화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장르의 다양화다. 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집행위원인 다섯 명의 영화감독이 자신의 장르에 대해 말한다. | 영화,영화제,영화감독,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감독

우문기 연출… 이후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계세요?요트 영화를 2년 정도 준비했는데 잘 안 됐고 배드민턴 영화를 일 년 반 준비하다가 얼마 전에 엎어졌어요. 지금은 계획이 없습니다. 찾고 있어요. 둘 다 같은 느낌의 B급 정서가 섞인 코미디 영화였거든요. 결과적으로 만들어지지 못해서 아쉽긴 한데 앞으로도 계속 그런 영화를 찾으려고요.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아요.이번에도 전체 관람가 영화겠네요?네, 맞아요.전체 관람가 영화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영화로 예술 세계를 펼치고… 이런 욕망은 없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고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가 좋아요. 제 아이한테 어려서부터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아빠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어. 미안하지만 너는 열아홉 살에 봐야 돼.” 이러기 싫어요.소포머 징크스에 대해서 걱정하세요?별로 생각 안 했는데 요트 영화도 안 되고 배드민턴 영화도 안 되니까 소포머 징크스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 대한 의심이 들 때가 있죠. 시덥잖은 유머나 하는 같은 영화를 계속 시도해도 되는 걸까? 내가 원하는 결과가 잘 안 나오고, 제의가 들어왔는데 거절한 영화는 만들어져 있고. 어쨌든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어야 영화감독이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시도하지만 영화를 못 만드는 영화감독과, 좋아하진 않지만 어찌 됐든 영화를 계속 만드는 영화감독, 그 사이에서 고민을 해요. 그런 건 있어요. 저의 제2의 꿈이 도예거든요. ‘정 하다가 안 되면 도예의 길로 가면 되지, 뭐. 사람 죽이는 영화를 찍으면서까지 영화를 계속 하진 말자.’에 “야, 정신 좀 차려. 너한테 족구가 뭔데?”라는 대사가 있잖아요. 만약 누군가 감독님한테 “정신 좀 차려, 너한테 영화가 뭔데?”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실래요?만든 지 몇 년 되다 보니까 그 재미가 가물가물하긴 해요. 만드는 과정을 제외하면 영화는 참 괴롭거든요. 준비 과정도, 결과도. 저도 지금은 영화가 저한테 뭔지 다시 찾는 과정인 것 같아요.코미디 장르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유머 코드는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요. 감독의 유전자가 제일 깊이 박힌 장르가 코미디인 것 같아요. 저 감독 아니면 안 된다 싶은 코미디 영화들 있잖아요. 그런데 미쟝센 영화제만 해도 코미디 부문인 ‘희극지왕’에서 대상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보통은 사회적 관점이 담긴 영화나 액션 스릴러 장르죠.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하게 인상을 남기기 쉽고요. 그런데 미쟝센 영화제에 와서도 그런 영화들만 보면 지치니까 중간에 코미디도 하나 봐야 하거든요. 말하자면 코미디는 간식 같은 장르이고 칸막이 같은 장르예요. 그런데 상은 못 받죠. 화제도 안 되고요. 영화제의 들러리 느낌이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응원하고 싶고 그래요. 불쌍한 감독.(웃음)코미디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동료 감독들에게 어떤 연대의식이 있나요?저도 예전에 이원석 감독님 영화들을 보면서 ‘아, 저런 코미디 영화도 만들 수 있구나’, 용기를 얻었거든요. 코미디 안에도 여러 장르가 있잖아요. 슬랩스틱도 있고, 말로 하는 코미디도 있고. 우리가 독립군처럼 계속 코미디의 범위를 넓혀가야 해요. 점잖은 민족이라 그런가. 우리나라는 코미디 장르에 대한 허용치가 엄청 좁아요. 중국에서는 주성치가 박스오피스 1위를 하고, 미국에선 잭 블랙 마니아가 그렇게 많은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코미디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인 거죠. 제일 척박한 장르이고 무시당하거나 낙인이 찍히기도 쉬운 장르예요.그래도 코미디 장르에 대한 벽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이병헌 감독의 이 천만을 넘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맞아요. 이병헌 감독님도 자기 색깔을 지켜가면서 이전에 없던 이상한 코미디 영화를 계속 만들어 왔잖아요. 멋있고,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전 누가 “쟤는 스포츠 코미디 전문이야?”라고 하면 그 말이 싫지 않거든요. 그렇게 제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코미디 장르의 외연을 넓히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다음 영화를 위해 세워둔 철칙이 있나요?19금 영화는 하지 않을 것. 새드 엔딩 영화는 하지 않을 것. 피,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는 하지 않을 것. 물론, 귀여운 도둑질 같은 건 나올 수도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