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EE는 멈출 줄 모른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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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EE는 멈출 줄 모른다

블랙핑크의 ‘뚜두뚜두’는 두려움 없이 전진하는 탱크 같다. 프로듀서 R.TEE는 그가 만든 곡처럼 여기가 아닌 어딘가 아주 다른 곳을 향한다.

BAZAAR BY BAZAAR 2019.03.05

셋업 수트는 Ordinary People.

R.TEE라는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되게 궁금했어요.

어릴 때부터 록 음악을 좋아했는데 특히 라디오헤드를 너무 좋아했거든요. 고등학생 때는 돈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라디오헤드 티셔츠가 갖고 싶어서 돈을 간신히 모아 해외 직구로 샀어요. 당시에 10만원이 넘었으니까 굉장히 큰돈인데 그 티셔츠를 입고 그들의 노래를 들으니 돈이 하나도 안 아깝고 정말 행복한 거예요. 록 밴드를 시작하면서 이름이 필요했는데 그 행복한 기분이 떠올랐어요. 내가 어떤 음악을 하더라도 항상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라디오헤드 티셔츠’를 줄여서 R.TEE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록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네요.

말 그대로 음악에 미쳐 있었어요. 교복에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다니니까 친구들이 저만 보면 웃었어요. 매일 엄청난 볼륨으로 음악을 듣다가 귀가 잘 안 들리는 지경까지 갔어요.(웃음) 당연히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자연스럽게 밴드를 하게 됐어요. 드럼이랑 보컬을 맡았는데 실력이 그다지 좋진 않았어요. 그래도 사람들을 놀게 하는 건 잘했던 것 같아요.

록이 청자를 고취시키는 것과 EDM이 소리로 고조를 이끌어내는 점은 닮아 있어요.

바로 그래요. 록 음악뿐만 아니라 잔잔하고 감성적인 음악도 두루 듣는데, 결국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건 에너지인 걸 깨닫게 된 거죠. 록 음악을 하고 있었지만 점점 더 다른 소리에 매료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데 섬네일에 쥐 탈을 쓴 사람이 보여서 우연히 클릭했다 새로운 장르를 접하게 됐어요. DJ 데드마우스(DeadMau5)의 ‘HR 8938 Cephei’라는 곡이었는데 듣고 나서 충격에 사로잡혔어요. 스무 살이 된 뒤로 클럽에 가게 되면서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특별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해졌죠.

마음먹자마자 록 밴드 멤버에서 프로듀서가 된 건가요?

항상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자는 주의여서 인라인스케이트도 선수를 할까 고민할 만큼 타봤고 그림에 빠져서 미대를 다니며 공부도 했어요.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음악으로 에너지를 표출하는 게 가장 좋았어요. 컴퓨터로 음악을 만든 지 10년이 됐는데 그중에 7년은 남들보다 더뎠어요. 주변에 음악을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면 한 달 만에 익히는 경우도 많거든요. 왜 이렇게 더딜까 버거울 때도 있었는데 마냥 재미있어서 포기하지 않았어요. 7년 정도 되니까 그동안 열심히 했던 게 나오더라고요. 음악을 만들면서 나보다 내 음악을 더 잘 소화할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다 보니까 프로듀서가 된 건데 아직도 ‘프로듀서’라는 타이틀이 어색해요.

 

한국화를 전공한 이력이 인상적이었어요.그림을 그린 경험이 음악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나요?

중학교 때 말 안 듣고 말썽 피우는 애였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제가 그림만 그리면 조용해진다고.(웃음) 얼떨결에 예고를 갔고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랑 누나가 한국화 작가라서 영향을 받았던 거예요. 그림을 가까이 접했던 경험은 진로 선택은 물론 음악 작업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돼요. 한국화는 붓이 한 번 지나간 자리를 수정할 수 없어요. 그만큼 그 한 번에 힘이 있어야 해요. 음악을 만들 때 전 하나의 강렬함을 늘 생각해요. 그리고 비우는 것. 제가 만드는 음악이 가득 차 있긴 하지만 비울 때는 확 비우려고 하거든요. 좋은 그림을 볼 때도 그 안에 작은 사람이 한 명 돌아다닐 수 있는 공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차 있는 것보다 그 안에 흐름이 있고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는 걸 항상 유념하고 있어요.

DJ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제 음악을 만들다가 가끔씩 기분 전환으로 다른 음악가의 음악을 리믹스해서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곤 했어요. 반응이 엄청 좋아서 유튜브에 영상을 짜깁기해서 올리기도 했는데 월드디제이페스티벌 감독님이 그걸 우연히 보시고 DJ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어요. 데드마우스를 처음 들었을 때 그가 DJ라는 사실을 몰랐거든요. 저스티스나 다프트 펑크도 결국 DJ였고.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제가 마포구에 사는데 감독님께서 작은 지역 축제에 섭외해주셨고 월드디제이페스티벌에도 나갔어요.

자기 방에 앉아 음악을 만드는 일이 손쉬운 시대예요. 그런 시간을 보내온 음악가로서 결과물을 내놓을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디바이스가 좋아지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됐어요. 지금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것들이 예전에는 전부 하드웨어였어요. 다 사려면 돈도 많이 들고 공간도 부족했죠. 결국 더 미치는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음악을 만들지만 결과물을 들어보면 얼마나 연구했고 얼마나 정체성을 실으려고 노력했는지가 보이니까요.

 

체크 후드 셔츠는 Songzio Homme, 투 버튼 패턴 블레이저는 Kimseoryong Homme, 라인 팬츠는 Ordinary People, 레터링 슈즈는 Dr. Martens × Sex Pistols.

음악가 R.TEE의 이름으로 첫 곡을 세상에 내놨을 때를 기억하나요?

EXID의 하니가 피처링한 ‘We Got The World’라는 곡인데 이 곡 역시 방구석에서 혼자 열심히 만든 노래예요. 우리나라에 없는 스타일의 노래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힘 있고 세련된 보컬이 필요했어요. EXID가 막 주목받으며 활동 중일 때 하니를 봤는데 뭔가 모르게 빛이 났어요. 조심스럽게 제안했고 흔쾌히 승낙을 받아 즐겁게 작업했어요. 우리 둘 다 분투하던 시기라 서로 격려를 주고받았던 게 기억에 남아요. 처음 생각했던 대로 완성됐고 만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곡을 틀었을 때 감동은 아마 평생 못 잊을 거예요.

대중에게 커다란 인상을 준 곡은 블랙핑크의 ‘불장난’이었어요.

하니랑 작업을 하고 제 개인 앨범을 내고 싶어서 타이틀로 만든 게 ‘불장난’이었어요. 일요일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속옷만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20분 만에 만든 곡이거든요. 어쩌다 테디 형을 만나게 됐는데 운 좋게 함께 작업을 하게 됐어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가장 존경하던 사람이랑 작업을 한 것만으로도 제겐 의미가 커요. 테디 형의 손을 거쳐 너무 멋진 곡으로 탄생하고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은 경험 모두가 소중하고요.

이후로 빅뱅의 ‘에라 모르겠다’, 태양과 승리 솔로곡까지 다양한 작업을 이어갔어요. 같은 사람이 만든 음악처럼 들리진 않았어요.

‘에라 모르겠다’도 테디 형이랑 새벽 5시에 갑자기 곡 하나 만들어보자 하고 순식간에 스케치를 끝내버렸어요. 태양 형의 ‘Wake Me Up’ 같은 경우에는 꿈속에서 환희를 느끼는 기분을 주고 싶어서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넣고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데 집중했어요. 빅뱅으로 한 팀을 이루고 있지만 솔로일 때는 서로가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잖아요. 그들이 가진 고유의 분위기를 의식하면서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곡을 만들게 돼요.

반면 블랙핑크의 후속곡 ‘뚜두뚜두’는 연작의 느낌이 들어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탱크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곡. 드랍 부분을 만들 때 미친 척하고 여백을 뒀는데 함께 작업한 다른 프로듀서 24도, 테디 형도 맘에 들어했어요. 전작과 비슷한 무드로 가자고 의식한 건 아니지만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 부분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네요.

 

프로듀서는 곡에 붙는 라벨 같기도 해요. 다른 음악가와 겨룰 수 없는 장점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나요?

음악을 완성하기까지 끊임없이 들어야 하거든요. 제가 전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게 계속 듣는 거예요. 아무도 못 이겨요.(웃음) 음악을 만들 때 제 안에 스위치가 여러 개 있어요.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엄마, 아빠, 회사 사람들, 친구, 대중의 마음으로 스위치를 켜고 끊임없이 들어요.

부모님의 반응은 실제로 어떻던가요?

부모님이 마틴 게릭스랑 체인 스모커스를 좋아하세요. 저보다 음악을 많이 듣는 분들이라 무조건 좋다고 하시기보다는 아닌 건 아니라고 정확한 의견을 주세요. 승리 형의 ‘혼자 있는 법’을 처음 완성했을 때 ‘Cuz I don’t want to be alone’ 파트까지 어떤 소리가 있었는데 목소리가 잘 안 들릴 것 같으니 과감하게 비우라고 얘기해주셨어요.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서 고민하다 뺀 적이 있어요. 다행히 이번 신곡은 다 좋다고 하셨어요.(웃음)

신곡이 기다려지네요.

안다가 노래를 부른 ‘뭘 기다리고 있어’라는 곡이에요. 안다의 묘한 목소리와 모습이 음악에 녹아 있어요. ‘뭘 기다리고 있어’ 부분의 가사와 멜로디는 누가 들어도 귀와 입에 착착 감길 거라 생각해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었을 때 드랍 파트에서 숨을 못 쉬었으면 좋겠어요. 구름 위를 떠돌다가 잠깐 땅으로 내려왔을 때 갑자기 지구 안의 모든 공기가 싹 빠지는 느낌을 염두에 두고 편곡을 했어요. 기분 좋게 깜짝 놀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동안 더블랙레이블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을 집약해서 제 이름을 걸고 보여주는 첫 곡이기도 해요. 3월 6일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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