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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자체로 특효약! 한국 메디컬 드라마의 진화

한국의 메디컬 드라마는 단순히 병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넘어선다. 인간애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며, 사회적 이슈를 공론화하는 장르로 자리잡았다. 다양한 작품이 쌓아 올린 계보를 통해 메디컬 드라마가 걸어온 길을 살펴본다.

프로필 by 최강선우 2025.01.31
메디컬 드라마의 전환기를 이끈 작품은 단연 MBC 드라마 <하얀거탑> (2007)이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과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주인공 장준혁(김명민 분)은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야망과 욕망의 끝에서 고립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의사라는 직업의 복합적인 모습을 제시했다.

이어 방영한 SBS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는 따뜻한 시선으로 의료진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메디컬 드라마의 영역을 확장했다고 평가 받는다. 과거 외과 병동만을 배경으로 둔 메디컬 드라마의 영역은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변화한다. 과거와 달리 다양한 병동과 신선한 의료인의 상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의사와 환자의 이야기를 통해 대중의 감정을 움직이고, 의료계와 인간 본연의 윤리를 깊이 탐구한다. 또한, 입체적인 캐릭터를 등장시켜 보건의료와 얽힌 사회적 논의를 거듭 확장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며 의사 파업이 시작된 이후 사실상 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는 맥이 끊긴 상황이다. tvN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역시 국민 정서를 고려해 연기하다 오는 4월 방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실 속 의사를 비롯한 의료계에 대한 실망 혹은 불신이 잠식되지 못하더라도, 분명 한국 사회에 다양한 메시지를 전하는 좋은 메디컬 드라마는 필요하다. 현실 속 의료계의 문제점과 사회적 불신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할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주미는 그의 저서 메디컬 드라마(2016, 커뮤니케이션 북스)에서 메디컬 드라마를 위한 제언으로 “현재 의료 현실에서 제기된 여러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드라마 안으로 논의를 끌어오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의료 민영화, 존엄사, 연명 치료 등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주제를 공론화하며 드라마를 이끄는 서사에 녹여내는 것이 장르의 본질일 테다.

박시온 From ‘굿닥터’ (2013)
사진/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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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의사의 모습을 그려냈다. 시온은 자폐 성향을 가진 발달장애인이다. 천재적인 암기력과 지각능력을 지녔지만 사회성은 10세 수준에 머문다. 하지만 병원 내 규정은 무시하고 환자를 살리려는 진심과 헌신적 태도로 환아들을 살피는 따뜻하고 멋진 의사임이 분명하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기각되었던 의사 면허증을 따내고, 전문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시온을 어엿한 독립적 주체이자 전문의로 성장하도록 돕는 김도한(주상욱 분)과의 케미, 강아지 같은 댕댕미로 사랑을 듬뿍 받았다. 이 작품은 의료계 내 장애인 전문가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한국을 넘어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리메이크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미국에서 시즌 7까지 장수하며 사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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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요한 From ‘의사 요한’ (2019)
사진/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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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의학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휴먼 메디컬 드라마.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병동을 그려내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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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요한은 마취통증의학과 최연소 교수로 닥터 10초라는 별명답게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기까지, 단 10초면 파악을 완료한다. 의사인 그가 숨기고 싶어 한, 치명적 비밀은 요한이 통증을 못 느끼는 무한증을 동반한 선천성 통증 무감각증(CIPA) 환자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간직한 어두운 과거는 존엄사라는 민감한 이슈를 끄집어내 통증 의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존엄사는 어떤 것인지 묻는다. 아픈 과거와 선천적 질병을 딛고 본분을 다하는 모습에서 ‘이런 의사가 많아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 SBS 제공 사진/ SBS 제공 사진/ SBS 스틸컷

김사부와 돌담즈 From ‘낭만닥터 김사부’ (2016~2024)
사진/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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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3까지 나오며 흥행과 작품성 모두를 지녔다고 평가받아 롱런하는 메디컬 드라마의 근본을 보여준 작품. 작은 지방 병원 ‘돌담병원’의 병동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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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 등장하는 환자의 보호자들 모두 환자를 살려내라고 의사를 협박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김사부도 가만히 있지 않는 강하고 쎈 캐릭터. 특히 시즌마다 등장하는 김사부의 제자들이 그리는 서사는 또 하나의 재미 포인트. 좋았던 부분은 카리스마를 갖춘 김사부와 달리 시즌 3에서 안효섭, 이성경, 유연석이 연기한 ‘돌담즈(돌담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가 가지고 있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저마다의 고민, 관계 속 케미 또한 드라마의 매력을 높인다.

차정숙 From ‘닥터 차정숙’(2024)
사진/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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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가 추락한 '하남자'(상남자의 반대) 남편을 둔 차정숙은 20년 만에 다시 의사 가운을 입은 가정의학과 1년차 레지던트다. 실수투성이 1년차 레지던트 정숙은 나이와 병력으로 눈칫밥을 먹고 민폐 캐릭터로 등극한다. 큰 수술을 받고 평생 관리해야 하는 몸 상태 탓에 잘 나가는 의사가 되기는 어렵다. 그래도 차정숙은 굴하지 않는다. 따라서 배경은 병원이지만 중년 여성이 이끄는, 여성 서사에 더 가깝다. 여자 의사가 주인공이었던 적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반부에 접어들며 시청률 급상승을 이루고 ‘엄정화의 화려한 귀환’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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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혁 From ‘중증외상센터’ (2025)
사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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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대란 후 오랜만에 나온 신작. 드라마의 주인공 백강혁 교수는 실력과 사명감이 투철한 인물. 매사 뾰족하게 날이 서 있고 싹수는 좀 없지만 행동이 앞서고 만다. 환자를 최우선에 두는 결정엔 이상하리만큼 타협이 없다. 환자를 구할수록 홀대받던 한국대학병원의 중증외상팀의 일원들 모두 진정한 의료인으로 성장하는 감동 스토리를 담았다. 한결같은 백강혁의 리더십과 진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원작은 2019년 연재를 시작한 네이버 웹소설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다. 2018년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가 쓴 책 <골든아워: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이 반향을 일으켜 센터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백강혁은 이국종 교수를 떠올리게 하는데, 현실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둘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총 8부작으로, 호흡이 짧아 오히려 아쉽다는 호평을 받았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 사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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