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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시대가 막을 내린 가운데, 영국에선 그녀를 추모하는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13일 관이 런던에 도착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고 난 후엔 조문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구시대 유산인 '군주제'가 낳은 여왕이지만, 영국 국민들은 왜 그토록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을까.
여러 추측이 있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살아온 행적을 보면 답이 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40년. 당시 총리가 캐나다로 도피를 권하자 이 제안을 거절하고 영국을 지켰다고. 그때 당시 14살 밖에 안 된 공주가 "우리는 용감한 군인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위험과 슬픔을 스스로 감당해 내고 있구요. 결국 모든 것은 잘 될 것입니다"라는 연설을 했다고 하니, 조국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8세 때는 여군 부대인 ATS에 입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영국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후 25살에 왕위에 오른 후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정치적 발언을 아껴왔다. 그러나 국익을 위한 외교에는 발벗고 나선 그였다. 총 110개국 정상들을 만났다고.
왕실에만 주어지는 특권을 반납하기도 했다. 1992년 영국 왕가 주말 별장인 윈저성이 화재 피해를 입었을 때, 수리비에 세금이 투입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커지자 면세 특권을 포기했다. 이후 버킹엄 궁전 개방으로 관광 수입을 창출하고, 각종 로열티 사업으로 영국 경제에 기여했다.
또 후원하던 사회 단체만 620개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고 하니, 그가 사회 발전과 기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었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