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바깥생활 Vol.24 포항의 걷기 좋은 길 5 포항의 해안을 따라 드넓게 이어진 해파랑길을 수시로 걷고, 끼니마다 물회를 먹었다. 기기묘묘한 괴암 해벽과 검은 화산 바위는 비범하고 사람들은 친절하며 쿠루는 내내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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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해의 지질 대잔치, 선바우길 트레일
포항의 해파랑길 구간이 무려 100km다. 포항에만 코스가 6개 있고, 동해안 전체 구간 중 가장 길다. 포항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20km 거리에 있는 화진해수욕장에서 시작한 길은 소규모 백사장들과 낚시 공원, 호미곶 등대를 지나 구룡포항으로 이어진다. 그 사이에 6.5km의 평이한 바다 데크 길이 이어지는 선바우길이 있다.
신생대 퇴적암이 뒤섞인 포항의 독특한 지질을 가장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구간이고, 인적이 드물어 반려견과 동행해도 마음 놓이는 곳. 해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바다 데크 길을 걷고, 출출할 때 노포에 들러 물회나 생선 국수 한 그릇 해결한다면 포항 여행의 반은 성공한 것이다. 들머리에 솟은 ‘선바우’를 시작으로 기묘한 화산암층이 민낯을 드러낸다. 억겁의 세월 전 우리나라와 일본은 하나의 대지였고, 지구 지각이 뒤틀리며 벌어진 틈은 바다(동해)로 채워졌다. 지하 깊은 곳에서 찢어지고 솟아오르며 분출한 바다 화산의 근사한 조각품이 데크 길을 따라 펼쳐진다. 손으로 대충 주무르다가 얹어놓은 듯한 퇴적암, 숟가락으로 파낸 것처럼 매끈한 힌디기 해벽에 말간 옥빛 파도가 소란스럽게 차오른다. 투명한 자갈 속으로 미끄러지는 작은 물고기 떼가 선명하게 들여다보인다. 귀여운 해식 동굴인 고릴라바위나 사람들의 염원이 쌓인 소원바위를 지나는 길은 신선하고 어느 하나 지루한 순간이 없다. 포항의 새로운 시각이고 발견이다.
*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호미로2790번길 20-18, 6.5km, 약 1시간 30분 소요 포항과 경주의 경계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 감포읍에 숨은 해식동굴로 가는 깍지길이 있다.
용이 지나간 구멍이라고 하여 ‘용굴’이라 하고, 물 속에 있는 구멍까지 총 4개의 굴이 있어 ‘사룡굴’이라고도 부른다. 작년 태풍으로 훼손된 일부 데크 길이 복구되었고, 10여 분 도보로 가면 용굴의 자태를 목도할 수 있다. 용굴로 향하던 오전 내내 부슬비가 오락가락 내리고 파도 소리가 거침없다. 물 먹은 숲은 짙은 솔잎 향을 무겁게 실어나르고, 수풀로 우거진 고갯길 하나를 넘자 해식 동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가 진 이후에는 출입을 금한다는 군사지역 경고문보다 먼 곳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흰 파도의 요동이 더 긴장감을 불러온다. 해식 동굴 이름이 용굴인 곳은 종종 보았으나, 이토록 이름과 잘 어울리는 곳은 드물다. 불룩한 먹장구름 아래 동굴 천장까지 전체를 휩싸고 도는 파도는 금방이라도 바닷속에서 하늘로 튀어 오를 것 같은 용의 포효를 보는 듯하다. 파도의 밀당이 큰 날에 용굴의 본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리라.
매해 1월 1일에는 용굴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려는 감포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든다고. 특별한 기운이 있는 곳인 건 분명해 보인다.
* 경북 경주시 감포읍 전촌리 30-1, 전촌항에서 감포깍지길 1코스를 따라 약 15분 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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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본 여행자처럼,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포항의 풍요로운 어장, 어족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일본인 거주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구룡포 전통 시장 뒤 장안동 골목에 100년 전 융성했던 일본인 가옥거리가 일부 남아 있다. 그동안 근대가옥을 복원하고 재건하는 꾸준한 노력이 있었고, 일본식 찻집과 레스토랑, 카페 등 상업 공간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라는 유명세 덕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면 도착하는 구룡포 공원에서 100년 전 풍경을 만난다. 옛 흑백사진 속 포구에는 정박한 배들이 빼곡하고, 일본인 거주지에는 오가는 사람들로 기운생동하다. 특히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불단과 고다츠, 칸막이문과 장식기둥 등이 남아 있는 전형적 일본식 목조 가옥으로 당시의 생활 양식을 경험할 수 있다. 일본인 가옥거리는 구룡포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인 동네와 이어진다. 한 평 텃밭 딸린 귀여운 단층집 대부분은 바다를 향해 있고, 작은 개가 늠름하게 지키며, 한쪽에서는 생선이나 채소가 건조되는 중이다. 시원한 가을 해풍을 맞으며 어촌의 골목을 느리게 산책해 보자.
*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 243번지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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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국적인 낚시 명당, 장길리 복합 낚시공원
구룡포읍 남쪽에서 만난 장길리 복합 낚시공원은 이름 그대로 낚시를 즐기려는 관광객을 위한 종합 세트. 사이트에서 바로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돔 형태의 해상펜션이 일정한 간격으로 조성되어 있고, 170m 길이의 ‘보릿돌교’가 낚시 명당인 갯바위를 향해 쭉 뻗어 있다. 본래 장길리 마을은 해녀들이 전복, 미역, 뿔소라를 잡아 올리는 소문난 어장이자 유명 다이빙 스폿. 이곳에 흘러든 사람들은 널찍하게 펼쳐진 갯바위 섬에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를 잡고 종일 돔을 기다리거나, 다이빙 장비를 갖추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반면 공원에서는 낚시꾼보다 장길리 풍광을 즐기려는 여행객들이 더 많이 보인다. 특히 해상 목재 다리인 ‘보릿돌교’를 가로질러 갯바위로 가는 길은 특별하다. 길 끝에 만나는 보릿돌은 8년 전만 해도 배를 이용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유명 낚시터였다. 너른 화산 바위에 앉아 피크닉을 즐기거나, ‘바다멍’을 즐기며 낚시에 도전해 보자. 공원 내 매점에서 낚시 도구를 구입할 수 있다.
*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동해안로 437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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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멍 때리기 좋은 전망대, 곤륜산 활공장
해발 177m의 낮은 산이지만,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위해 조성한 아스팔트 찻길은 제법 경사가 심한 편이다. 정상까지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포장 도로는 꽤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20분가량을 걸어 사방 탁 트인 활공장 전망을 만나면 노고는 금세 잊히지만 말이다. 물론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신청하면 업체 차량을 타고 쉽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곤륜산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칠포항과 오봉산 능선이 내려다보이고 반대편에 칠포해수욕장과 영일만 산업단지가 막힘 없이 펼쳐진다. 산 정상에 인공 잔디가 깔려있어 어디에서나 주저앉아 전망을 즐기기 쉬운 반면, 화장실이나 벤치 등 편의 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산등성이와 동해를 배경으로 유영하는 패러글라이딩의 근사한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TIP] 포항에서 뭐 먹지? 어쨋든 물회다.
자연산 생가자미만 취급하는 영일대 태화횟집(054-251-7678)의 물회는 현지인의식당 추천에 언제나 1순위로 꼽히는 곳. 달큰한 배가 들어간 태화횟집의 물회 양념은 독보적이다.
구룡포 조포네생아구(054-276-1219)는 김연욱 사장님이 매일 새벽 경매장에서 자연산 아구를 손수 들여오는 식당으로 밑반찬과 물회, 매운탕 등 어느 하나 빠지는 솜씨가 없다. 정갈하고 정직한 상차림으로 현지인 단골이 많은 곳.
죽도시장 할매실비횟집(054-242-0585)의 박순복 사장님은 제철 횟감과 매운탕 재료까지 ‘알아서’ 푸짐하게 포장해 준다. 죽도시장 상인회 회장답게 포항의 제철 수산물에 관한 어떤 질문에도 명쾌한 답을 해주고 말이다.
포항의 토속 요리가 궁금하다면 구룡포시락국수(0507-1330-2576)에서 시락국수를 먹어보자. 꽁치를 뼈째 다져서 만든 완자를 넣고 끓인 생선 요리로 모리국수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