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의 주말은 작고 귀엽다. 일주일에 고작 이틀. 노동과 휴식이 5대2. 인간의 유희적 본성에 반하는 가혹한 비율이지만 어쩌겠는가. 주어진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해서 노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생을 마감, 아니 주말을 마감할 테니까. 주말농장 1일 체험, 삼시세끼 떡볶이 먹방, VR 게임장 투어 등…. ‘어레인지 병’ 말기 에디터는 일종의 ‘휴식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7월의 첫 번째 일요일을 친환경적인 하루로 정한 건 이유가 있다. 마침 요며칠 테슬라의 전기차를 체험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새 10만 킬로를 달린 뒤 이제 그만 놓아줄 때가 된 나의 첫 차를 대신할 새로운 녀석을 찾고 있다. 가장 눈에 들어온 차종이 테슬라의 모델3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 시장에서 외면당했던 테슬라는 올해 상반기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핫한 차로 떠올랐다. 모델3 덕분이다. 롱레인지 기준 6천만원대의 가격, 안정적인 자율주행 시스템, 섹시한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전기차라는 이점 때문이다. 유지비도 아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죽어가는 야생동물을 보면 가슴이 아파도 여전히 일회용품을 완전히 끊지 못하고, 환경보호를 위해 텀블러를 샀지만 그렇게 찬장을 꽉 채운 텀블러를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전기차를 탄다는 것은 일말의 죄책감을 씻어낼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이다.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30% 이상이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배출된다. 아파트 주변도로, 지하주차장 등 도심을 떠도는 배출가스는 1군 발암물질로 지정되기도 했다. 전기차를 사용하면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하며 한 대로 연간 CO2 2톤을 감축할 수 있다.
테슬라 오너 카페 게시판에 반드시 달리는 댓글이자 유행어가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전기차를 구입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반대 의견이리라. 정말 그럴까? 전기차의 미래는 스마트폰에서 예측할 수 있을지도. 어차피 훗날엔 대부분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차나 수소차로 바뀔 것이다. 10여 년 전 스마트폰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듯 아주 빠른 속도로 어느 날 갑자기. 국내 주유소의 10%만 전기차 충전소로 바뀌어도 도심에 파란 번호판을 단 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다. 누구나 짐작하는 미래, 다만 그때가 언제인지를 모를 뿐. 아, 이래서 내가 주식을 못 한다.

일요일 한낮의 강변북로는 생각보다 한산했지만 내가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앞에 디젤차가 내뿜는 매연 때문이었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탈 땐 신경 쓰이지 않던 매연이 이렇게 거슬릴 수가 없다. 마치 비흡연자인 내가 길에서 담배 연기 테러를 당했을 때의 불쾌감과 비슷하달까.
매연을 뚫고 도착한 곳은 메가박스 성수점이다. 지난 7월 4일과 5일에 서울환경영화제 출품작을 상영했다. 2004년부터 영화를 통해 세계 각국의 환경 이슈를 다뤄온 서울환경영화제는 종이 인쇄물 같은 부자재를 줄이고 폐품을 재활용하는 등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기 위해 노력해왔다. 코로나가 창궐한 올해엔 아예 상영 방식을 디지털로 전환했다. 바이러스 감염도 막고, 탄소 절감에도 효과적인 방식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디지털 상영관(seff.kr)에서 상영되었고 주말 동안 사회적 거리가 지켜지는 선에서 몇 편의 출품작을 극장에 올렸다.
다큐멘터리 〈나무의 숨겨진 삶〉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페터 볼레벤은 우리나라에서도 〈나무수업〉, 〈숲 사용 설명서〉 등의 저작물로 만나볼 수 있는 독일의 숲 전문가다. 지루할 것만 같은 페터의 책들은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고 그는 어딜 가나 사람들이 알아보는 유럽의 유명인사다. 감독 외르크 아돌프가 볼레벤의 뒤에서 카메라를 고정하고 산림감독관 즉 ‘Forester’로서 그가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담담하게 보여준다. 볼레벤이 나무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 상식과는 사뭇 다르다. 영화 속 표현에 따르면 “바위보다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는” 그래서 때론 살아 있다고 체감하지 못하는 나무를 그는 한 명의 사람처럼 대한다. 이를테면 그는 벌목되어 도심 곳곳에 강제로 심긴 나무를 ‘거리의 아이들’이라 표현한다. 벌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해야 할 나무가 있고 하면 안 되는 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무분별한 벌목을 몰아붙인 것이 뉴스거리였다. 돈 주고도 못 사는 아마존의 천연림이 무참히 파괴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우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소용없다. 먼저 고통받는 건 나무들, 그리고 나중에 고통받는 건 인간이리라. 그리하여 이들은 간곡히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 세대에도 벌목할 나무를 남겨줘야 하지 않겠어요?”.

두 시간 내내 스크린 너머로 너도밤나무 숲을 구경한 터다. 문득 극장 앞 서울숲이 그리워졌다. 장비부터 갖추기로 했다. 1인분에 2만원을 내고 피크닉 용품 한 세트를 예약했다. 지정한 시간에 맞춰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피크닉 바구니를 픽업했다. 바구니 안엔 돗자리, 접이식 협탁과 테이블보, 커피잔 두 개, 아메리카노가 담긴 보온병, 컵 받침, 디저트 커트러리와 접시 그리고 노란색 튤립이 딸려 왔다. 요즘 인스타그래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피크닉 놀이는 시각적으로도 그럴듯하지만 꽤 친환경적인 아이디어다. 망원한강공원, 서울숲, 양양해수욕장 등 어지간한 핫플레이스엔 이런 대여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아마존의 천연림만큼은 아니겠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이만큼의 피톤치드를 들이켤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리라. 그런데 서울의 나무들은 안녕한 걸까? ‘거리의 아이들’이 어쩌면 그리 건강한 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앞으론 길가의 나무들을 좀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될 것 같다. 머릿속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만큼 한적한 서울숲도 오랜만인지라 잔디밭에 누워 조금 더 초록을 만끽하기로 했다.
주말의 끝, 마스크를 하고 숲으로 모인 사람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나무그늘 아래 캠핑 의자에 앉아 독서하는 여자, 캐치볼을 하는 아빠와 아들, 휠체어를 밀고 숲길을 걷는 노부부까지. 전기 충전으로 자동차가 자율주행하는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역병을 앓고 있고 여전히 자연이 고프다. 이런 시국에 친환경을 논하는 것이 태평무도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볼레벤이 평생에 걸쳐 해온 노력이 선진국 시민의 사치나 허영이 아니듯 지속가능성이야말로 누구보다 우리가, 어느 때보다 지금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주제다.
내일은 다시 출근할 것이다. 여전히 미세먼지를 내뿜는 내연기관 차를 타고, 줄곧 a4 용지를 쓰고, 자주 텀블러를 깜빡해서 일회용 잔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지만. 지난주의 나보다 이번 주의 내가 조금이나마 지구에 덜 미안한 존재가 되지는 않았을지, 그런 바람을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