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는 하루에 플라스틱을 얼마나 쓸까?
<그저 플라스틱 쓰레기를 기록했을 뿐인데> 저자이자 전 에디터, 현 환경보호 노력가와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환경보호 초심자가 나눈 플라스틱에 관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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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우연히 집은 책 <그저 플라스틱 쓰레기를 기록했을 뿐인데>로부터 시작되었다. 9명의 다양한 셀럽들이 9일 동안 쓰레기를 기록하고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인터뷰집은 후루룩 쉽게 읽혔고,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도 한번 해볼까'였다.


1일차 | 배달을 줄이려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두지만 필연적으로 플라스틱이 발생한다. 러닝 후에 마시는 이온 음료와 소화(?)를 위해 장복 중인 야쿠르트 병도 꾸준히 나오는 플락스틱 쓰레기.
2일차 | 고급 김을 선물 받았는데 받침 외에 뚜껑도 있더라. 처음 봐서 충격.
3일차 | 쓰던 로션이 마침 딱 떨어졌다. 스킨케어 용기 역시 주기적으로 나온다. 용기에 신경 쓰는 브랜드가 몇 있지만 알레르기 피부를 지닌 나에게는 대체가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오랜만에 안 하던 짓. 간소하게 살자는 마음으로 가챠를 줄였는데 너무 귀여운 게 있어서 하나 뽑았다. 때문에 나온 플라스틱 캡슐.
4일차 | 술이나 마셨지 카페는 즐기지 않았지만 집에서 일하는 데 한계를 느끼는 프리랜서에게 카페는 이제 필수가 되었다. 빨대 없이도 마실 수 있지만 재료를 섞기 위해 빨대를 사용했다(머듈러 없음 이슈).
5일차 | 어떤 플라스틱 쓰레기도 안 나온 날!
6일차 | 고통받는 세면대를 위해 배관 청소액을 샀다. 새삼 용기가 무척 단단하고 부피가 크다고 느꼈다.
7일차 | 생일 파티의 잔해. 무지막지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8일차 | 기자간담회에서 나눠준 간식. 이미 생산된 것은 먹으나 안 먹으나 쓰레기라 맛있게 먹었다.
9일차 |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의 선물. 부드러운 디저트를 감싸기 위한 받침이 한 개 나왔다.
9일간의 체험을 마치고 난 소감은 “나 의외로 플라스틱 많이 안 쓰나?”였다. 교만한 인간의 기준으로는 그랬다. 하루도 플라스틱을 쓰지 않은 날도 있다니! 커피를 안 마시며 집 밖으로 매일 나갈 일 없는 나의 성향과 상황 때문이겠지만 내 패턴에 맞게 플라스틱 사용을 조절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이번에는 9일이었지만 꾸준히 일기처럼 기록하면 더 줄이자는 욕심도 생기겠지?
체험을 마치고 저자에게 연락을 했다. 같은 직업군을 경험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작가 박현민
하퍼스 바자 동네가 조용하니 좋네요.
박현민 00동, 00동에 살다가 결국 이쪽으로 왔어요.
하퍼스 바자 제가 지금 00동에 살거든요. 조용하긴 한데 근처에 있던 편의점 마저 공사 중이라 일상 생활에 불편한 점이 많아요. 되도록 음식 배달을 안 시키려고 장을 보긴 하는데 재래시장이 멀고 차도 없어서… 결국 마트앱에서 식재료를 사면 어느 정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더라고요.
박현민 저도 책을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박준우 셰프와 나눈 얘기에서 저희끼리 결론을 내렸거든요. 재래시장이 없다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찾아 갈 수는 없다, 대부분의 식재료가 로컬 음식이라고 보기에는 많은 유통 과정을 거쳤기에 상황에 맞게 생활하자. 생업과 밥벌이는 중요하다! 환경운동가도 직업의 하나 아닌가? 그들이 노력하는 만큼 우리 같은 초심자들도 노력할 수 있는 부분에서 노력을 하겠다로 귀결되었죠.
하퍼스 바자 어떤 계기로 환경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거예요?
박현민 한때 홈리스 자립을 위한 매거진 빅이슈코리아의 편집장이었어요. 특성상 인권, 동물권, 환경 문제를 많이 다뤘는데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달았던 게 있어요. 인권을 포함하는 게 동물권이고, 동물권을 포함하는 게 바로 환경이라는 거. 결국 환경은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핵심이더라는 거.
하퍼스 바자 방송과 매거진을 통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언어나 캠페인, 책이라는 형태로 나온 거군요.
박현민 편집장으로 일하면서도 늘 부족함을 느꼈고, 더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근데 성인이 되면 '모른다'는 걸 인정하고 새롭게 배우기가 쉽지 않지 않잖아요. 특히 생업에 쫓기다 보면 그런 시간조차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배운 걸 알려야겠다, 어떻게든 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환경 단체들의 콘텐츠를 보면서 고민도 생기더라고요. 그린피스, WWF, 녹색연합 같은 단체들은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풀어갔어요. 환경에 관심 있는 나조차도 따라가기 버거운데…. 그래서 '보통 사람들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요구하기보다, 한 발, 두 발 천천히 보폭을 늘려가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하퍼스 바자 방송인 파비앙, 셰프 박준우,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감독 한민수, 영화감독 김의석, 아티스트 솔비처럼 대중들에게 익숙하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어 흥미로웠어요.
박현민 책 <그저 플라스틱 쓰레기를 기록했을 뿐인데>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을 몸소 체감해보자는 취지였어요. 9명의 다양한 셀럽들이 9일 동안 쓰레기를 기록하고,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했거든요. 아주 큰 결과물을 바란 건 아니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이 단순히 "분리수거 잘해야지"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길 바랐어요. "이 물건 정말 필요했나?", "이것도 플라스틱이었어?"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계기가 되길 원했던 거죠. 다행히 여러 목소리를 모아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내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뿌듯했던 건 독자들이 직접 실천한 인증글이 SNS에 올라오는 거였어요. 누군가는 9일 동안 자기가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꼼꼼히 기록했고, 또 누군가는 이 과정을 환경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도 했더라고요. 내가 바랐던 작은 변화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걸 보는 순간들이었어요.
하퍼스 바자 저 같은 초심자들이 환경에 관한 실천으로 가장 손쉽게 생각하는 게 텀블러 쓰기, 에코백 들기, 분리수거인데 책에서 에코백을 130번 이상 써야 플라스틱백을 대체할 수 있다는 걸 보고 살짝 망연자실 되더라고요.
박현민 10년 동안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가 환경 문제에 깊이 고민하게 된 시기에 과감히 차를 처분하고 5~6년간 뚜벅이 생활을 했어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최대한 자동차 없이 살아보려 노력했는데 최근에는 업무적으로 차가 꼭 필요한 상황이 많아져서 불가피하게 다시 차를 사게 됐지만요. 전기차와 수소차도 알아봤는데 배터리 화재 이슈와 충전 인프라 문제 때문에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 과정에서 깊이 고민했어요. "환경을 위해 차 없이 사는 게 정말 최선일까?" 사실, 모든 사람이 무조건 자동차를 포기하는 게 답은 아니죠. 중요한 건 각자의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을 찾는 것. 단순히 "환경을 위해 차를 안 산다"는 극단적인 실천보다는 이동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거나 카셰어링을 활용하고, 점진적으로 친환경 대안으로 전환해가는 식으로 균형을 맞추는 게 더 지속가능하다고 느껴졌어요. 결국 "완벽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핵심 아닐까요?
하퍼스 바자 저 또한 책을 읽고 짧은 경험을 하면서 개인적인 변화의 욕구를 크게 느꼈어요. 동시에 일터에서 촬영하는 동안 쏟아지는 일회용 쓰레기를 보면서 문화가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필요성을 느꼈고요.
박현민 동감해요. 2021년 상반기에 한 프로젝트 'Kstars4climate'는 K-팝 아이돌 31명이 참여한 기후변화 캠페인이었어요. 지금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많이 알려졌지만 그때만 해도 대중에게는 생소한 주제였거든요. 책을 내고 다음 프로젝트로 '9일 동안 9인의 탄소발자국 기록'을 기획했는데 진행하면서 난관에 부딪혔어요. 탄소발자국을 정확히 측정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더라고요. 여러 환경 단체와 논의해봤지만 개인의 일상 행동들을 탄소배출량으로 수치화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이걸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앱이 있으면 좋겠다!' 하루 동안 한 행동을 입력하면 탄소 배출량으로 환산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마치 먹은 음식을 입력하면 칼로리를 계산해주는 앱처럼 말이죠. 나는 개발자가 아니라 직접 만들진 못하지만 이런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녔어요. (혹시 이런 기능의 앱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꼭 알려주세요!) 같이 환경을 위한 도구를 만들 개발자나 연구자와도 언제든 협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퍼스 바자 요즘 국내외적으로 워낙 큰 이슈들이 많다 보니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팬데믹 때 생겼던 경각심과 관심이 거의 사라져버린 것 같은. 환경 상점들도 거의 문을 닫았고요.
박현민 경제 불황, 국가 간 전쟁, 계엄 같은 변수들이 터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쏠리는 건 이해해요. 나조차도 최근엔 환경 관련 책을 덜 읽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책에서 파비앙이 말했던 것처럼 “경제를 비롯한 사회 문제와 환경은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제를 살리고 나서 환경을 돌볼 게 아니라 애초에 함께 가야 하는 거다.” 이 말이 지금 시대에 중요한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이런 시대에 환경에 대한 목소리를 어떻게 키워갈 생각인지.
박현민 매번 하는 말이 있어요. "나는 환경 운동가가 아니다." 그냥 남보다 조금 더 환경을 생각하는 '콘텐츠 업자'일 뿐이다. 법과 제도를 바꾸거나 직접 환경 보호 활동을 주도하는 역할이 아니라, 환경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어요. 누군가는 정책으로, 누군가는 기업 차원에서, 또 누군가는 개인적인 실천으로 영향을 줄 수 있잖아요. 중요한 건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천해보자는 거.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 나를 다잡게 된 것 같네요. 올해는 새로운 환경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은데...혹시 함께할 사람, 손!
*박현민 작가
스포츠조선, CJ ENM, OSEN, 빅이슈를 거치며 20년 가까이 콘텐츠 관련 일을 해왔다. 현재는 우주웍스와 우주북스 두 브랜드를 운영하며, 삼느(느릿·느긋·느슨한)의 삶을 추구하는 일중독자로 살고 있다. 어느 포털에서든 검색하면 첫 번째로 뜨는 '1번 박현민'을 유지하는 것이 인생의 소박한 목표. 글을 쓰고, 가끔 강연과 방송도 한다. 저서로는 『K-콘텐츠로 보는 현대사회』, 『K-콘텐츠의 맥락: 숨겨진 메시지』, 『나쁜 편집장』, 『그저 플라스틱 쓰레기를 기록했을 뿐인데』 등이 있다. 유튜브 '관계자에 따르면'을 기획·진행 중이며, 한국콘텐츠진흥원 평가위원·자문위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과 창업진흥원의 평가위원으로 활동하며 세금으로 낸 우리의 돈이 '눈 먼 돈'이 되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Credit
- 글 / 박의령
- 사진 / 우주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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