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자 에디터들이 가고 싶은 영화 속 장소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바자 에디터들이 가고 싶은 영화 속 장소

영화 그리고 휴식의 몽상

BAZAAR BY BAZAAR 2020.07.12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수다쟁이다. 유작이 된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서 작정한 듯 작품과 영감에 대해 쏟아놓는다. “해변은 영감의 장소이자 정신의 풍경이에요. 3대 요소가 모두 있죠. 하늘, 바다, 땅. 바슐라르의 책들이 기억나요. 소르본에서 이 철학자의 강의를 들었죠. 〈물과 꿈〉 〈공기와 꿈〉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 꿈, 몽상, 공상, 휴식, 다 좋아하는 거네요.” 바르다는 해변을 거닐며 수다를 이어가다 새와 아이들을 불러낸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꼬마들은 종이새를 해변에 풀어놓고 재주를 넘으며 꺄르르 웃는다. 바르다는 자신의 이름이 쓰인 디렉터스 체어에 앉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디론가 갈 수 없게 된 후로 종종 그 해변을 생각한다. 멈춰진 우리는 영화 속으로 가는 짧은 꿈을 꾸었다.
-박의령(〈바자〉 피처 디렉터)
 

 

CAMPO,  MEXICO

〈와일드〉 장 마크 발레
장 마크 발레의 최고작은 〈데몰리션〉일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일까. 언젠가 술자리에서 이 화두를 던졌다가 느닷없이 신년 백분토론이 벌어졌다.(나는 가자!더불어데몰리션통합당이다.) 요는, 누구도  〈와일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거다. 〈와일드〉는 그의 필모 중 졸작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영가 떠오른 건 언젠가는 PCT를 완주하는 것이 내 오랜 꿈이기 때문이다. 20대에 산티아고 르 푸이 길을 1500km나 걸었으니 30대가 가기 전에 PCT 4300km 트레일쯤은 종주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상의 확증편향을 머릿속에만 담아둔 채로 매일 아침 도보 1km가 귀찮아서 택시로 출퇴근을 한 지 수년째.
 
어쩌겠나. 어느 노래 가사처럼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몽상하는 버릇은 어린 시절부터의 내 나쁜 습관인 것을. 그때부터 나는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의 삶에 매료되었지만 알래스카로 떠나는 대신 책장을 덮고 착실하게 독서실로 향했더랬다. 어쩌면 내가 〈인투 더 와일드〉를 사랑하고 여전히 10년 전 산티아고 길을 그리워하는 건 대단한 자연주의자라서가 아니라 태생부터 대도시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를 꿈꾸는 월터 미티랄까.
 
그런 의미에서 〈와일드〉는 내게 일종의 체험 문학이다. 귀엽고 또 혐오스러운 서울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이면 나는 종종 이 영화의 셰릴 스트레이드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산속에서 내려온 곰이 내 텐트를 툭툭 치고 간다든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자연경관을 발견한다든가 한밤중에 수상한 사람을 마주친다든가 걷다가 서서히 미쳐버린다든가 길을 잃는다든가 고립되어 죽어가는 상상 같은 것들. “무언가를 고치기 위해선 일단 그걸 부숴야 한다”는 〈데몰리션〉의 전복적인 메시지를 좋아한다. 하지만 내겐 망치를 들고 일상을 허물 용기도 힘도 없다. 한번씩 꿈꾸어볼 뿐이다. 폐허가 되어 무너져버린 와중에 결국엔 가장 살고 싶을 테니까.
-손안나(〈바자〉 피처 에디터)
 

 

LOS ANGELES, USA

〈라라랜드〉 데이미언 셔젤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아니지만 L.A란 도시는 내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살면서 딱 두 번 갔던 L.A에서의 추억이 낭만적이었냐 묻는다면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내게 L.A는 ‘멀미’의 도시로 기억되곤 했으니까. 도시가 컸던 탓에 유명한 관광지 사이를 오가려면 우버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 교통체증에 갇힌 차에 타고 있노라면 절로 멀미가 도졌다. 그런 내가 L.A를 꿈과 사랑의 도시로 그리게 된 데엔 영화 〈라라랜드〉의 영향이 컸다. 말하자면 일종의 ‘기억 조작’인 셈이다.
 
보랏빛 하늘 아래 펼쳐진 풍경에 담긴 것은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는 진로와 인간관계에 대부분의 고민을 쏟아부었던 23살의 휴학생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를 사랑하며 각자의 꿈을 꾸었다. “당신의 꿈이잖아.” 꿈을 이루기 위해 파리행을 고민하던 미아에게 세바스찬은 말한다. “난 여기 남아서 내가 계획했던 걸 해야지.” 그렇게 둘은 사랑 대신 꿈을 택하며 멀어진다. 5년 후, 꿈을 이룬 둘은 우연히 재회하지만 미아는 이미 다른 연인을 만나 가정을 꾸린 채다. 둘이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진부한 로맨스 서사는 없었다. 영화는 두 사람이 그때 꿈이 아닌 사랑을 택했다면 벌어졌을 수도 있을 미래를 가정법으로 풀어내 진한 여운을 남긴 채 끝이 난다.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순간,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면 일어났을 것이라 상상하는 일과 그로 인해 바뀌었을 미래가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만약’이라는 가정 아래서나 존재하는 허구일 뿐이다. 가끔은 그 달콤함에 속아 택하지 않은 길에 미련이 생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선택이 마냥 후회된다거나 슬프게 다가오지만은 않는 까닭은 다른 선택을 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또 다른 값진 삶을 지금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수많은 가정 중 하나만이 현실이 될 수 있고 아무것도 잃지 않는 선택은 없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일 년이 지난 후 다시 방문했던 L.A는 여전히 멀미를 일으켰고 〈라라랜드〉 촬영지라는 명성을 얻은 재즈바는 나 같은 관광객들로 붐벼 미아와 세바스찬 같은 낭만을 즐기지도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또 하나의 큰 결정을 내려야 했던 내게 있어 그때의 방문이 좋은 자극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혜준(컨트리뷰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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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박의령
    사진/ 알토미디어,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사진/ 판씨네마(주),(주)미로스페이스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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