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가난의 시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가난과 우아한 삶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 세상에서 품위 있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 가난

얼마 전 조르주 페렉의 소설 을 우연히 펼쳤다가 큭큭거리며 완독하게 됐다. 진지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웃기는 지점들이 있었던 이유는 등장인물의 행동 양식이 매우 친근했기 때문이다. 그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들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들이 부자일 줄 안다고 믿었다. 그들은 부유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바라보고, 웃을 줄 알았을 것이다. (중략) 그들의 즐거움은 강렬했을 것이다. 걷기를 좋아하고, 빈둥거리고, 고르며 음미하기를 즐겼을 것이다. 삶을 누렸을 것이다. 삶은 하나의 예술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상황은 쉽지 않았다.” 이런 삶을 한 타래쯤 안다. 가난하지만 부유한 생활을 즐기고, 그럼에도 결코 타고난 부자처럼은 살 수 없는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삶에도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다. 내 주위에 무수히 많은 잡지 인간들은 돈 쓰는 방법 하나는 귀신같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옷 쪼가리’ 하나 사는 데 어마무시한 돈을 지불하고, 한 끼를 먹어도 최고로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하며, 조금 더 좋은 뷰를 가진 방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내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가성비에 갇혀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세계가 있다고 자부하면서. 이건 비단 내가 놓여 있는 환경의 특수성만은 아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쳐도 일단 눈앞의 케이크를 황홀하게 탐닉하는 것이 우리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언젠가 엄마가 지금껏 살면서 택시를 타본 일이 손에 꼽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얘기를 듣고 크게 놀랐다. 21세기의 서울에서 어떻게 택시를 안 타고 생활이 가능한 걸까? 오랜 세월 동안 사회생활을 하고, 경제적으로도 나보다 여유로울 엄마가 오로지 돈을 아끼려고 택시를 안 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오늘 아침에도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는 사실을 알면, 엄마는 뭐라고 할까? 우리 세대가 집단적으로 망각하고 있는 것은, 가난이다. 사실 우리는 돈이 없다.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이 ‘팩트’는 일 년 내내 심해에 잠겨 있다가 연말 정산을 할 때쯤에나 슬그머니 수면 위에 떠오른다. 원룸 라이프에 고가의 오디오를 끼워 넣고, 1:1 요가 클래스에 다니며, 프리미엄 식료품점을 단골 삼고 있으니 미래에는 더욱 더 돈이 없어질 예정이다. 이미 망했거나, 서서히 망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동세대의 삶을 인정사정없이 날카롭게 분석하는 소설가 김사과는 “삶은 호텔 같았고 매일매일은 호텔의 욕실에 놓인 일회용 샴푸 같았다.”고 쓴 적이 있는데(그녀의 입장은 ‘이미 망했다’ 쪽이다), 빌린 집의 계약 기간이 만료될 즈음이 되면 문득 생각나는 문장이다. 그러게나 말이다. 일시적 풍요를 다 누리고 나면, 그 다음에는 어떤 날들이 펼쳐지는 걸까?우리 세대가 집단적으로 망각하고 있는 것은, 가난이다. 우리는 돈이 없다. 이 사실은 일 년 내내 심해에 잠겨 있다가 연말 정산을 할 때쯤에나 슬그머니 수면 위에 떠오른다. 원룸 라이프에 고가의 오디오를 끼워 넣고, 프리미엄 식료품점을 단골 삼고 있으니 미래에는 더욱 더 돈이 없어질 예정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의 사치는 내리막 세상에서 터득한 생존 감각인지도 모른다.우리 세대의 미래는 블로 처리한 사진과 같다. 지금 내 주위에 자기 삶의 미래의 형태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장 10년 후에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앞으로 남은 몇 십 년의 삶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 거다. 삶의 상당 시간 동안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더 사라지고, 삶의 상당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여전히 남아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망각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의 사치는 앞이 조망되지 않는 내리막 세상에서 터득한 날카로운 생존 감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러한 삶의 방식은 누군가가 비웃거나 설교할 만한 것이 아니다. 오르막 세상에서 내리막 세상으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인 것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적은 돈으로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해온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고, 우리는 이들의 팁을 전수받을 필요가 있다.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의 언론인 알렉산더 폰 부르크는 이 분야의 전문가다. “몰락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 집안은 이미 몇백 년 전부터 가난해지는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노하우가 있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가난해지면서도 부유하다고 느끼며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건넨다. 1. 편안함에 대한 생각을 조금 포기할 경우, 작은 집이 고층 건물 옥상의 아주 넓고 천박한 집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 편안함은 소파 세트를 요구하고, 우아함은 벽에 세워진 의자를 지정한다. 편안함은 늘어놓는 것을, 우아함은 치우는 것을 사랑한다. 편안함은 비좁음을, 우아함은 공간의 여백을 사랑한다. 고상한 취향을 가로막는 최대의 방해꾼 중 하나는 썰렁함에 대한 두려움과 여기에서 유래하는 충동이다. 2.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동차 운전이 실용적인 이유에서뿐 아니라 이론적인 이유, 아니 심지어는 미학적인 이유에서도 불합리한 것이라고 더욱 절감하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자동차를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결국에는 자동차를 증오한다고 믿게 되었다.3. 이미 오래전 학문적인 연구 결과는 거의 모든 사람이 휴가 여행을 떠난 때보다 조금 더 아둔해져서 돌아온다고 증명했다. 정신적으로 깨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3주일 동안 휴가를 보낸 사람의 지능지수는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약 3퍼센트 낮은 것으로 입증되었다. 제트족들이 일 년에 10번 휴가 여행을 떠났다고 치자. 그러면 도대체 그들의 지능 상태는 얼마나 열악하단 말인가. 4. 아무리 통장이 적자 상태이고 집이 협소하더라도,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사람은 식사에 손님 초대하는 기회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음식은 대화를 나누기 위한 사건이며, 그 사건의 중심은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다. 집에 들이는 돈이나 집이 위치한 동네가 아니라 손님들을 맞아들이는 자연스러움을 통해서 집은 아름다워진다.요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흔들리지 않는 독자적인 삶의 양식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좋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취향과 안목, 그리고 약간의 용기가 있다면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할 수 있다. 한 선배는 회사를 그만둔 후에 오히려 좋은 유기농 식재료들을 구입해서 요리를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서 식재료의 가치를 존중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큐레이터는 볼 때마다 같은 블랙 코트를 입고 있는데, 그 모습이 초라하기는커녕 너무나 우아하여서 그 코트에 얽힌 이야기가 듣고 싶어질 정도다. 부자가 조망 권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에서 전망 좋은 방을 찾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많은 친구들은 부동산 업자에게 말하기에도 민망한 시시한 조건들, 이를테면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작은 공간, 오피스텔에 달린 반쯤 열리는 창이 아니라 완전히 열리는 창, 한 그루의 나무라도 보이는 전망, 그러니까 낭만 혹은 아름다움의 영역에 속하는 무언가를 찾아 끝없이 유랑하는 중이다. 이 아름다움은 역세권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