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가난의 시대가 도래하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우아한 가난의 시대가 도래하다

우아함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의 것이다.

BAZAAR BY BAZAAR 2020.07.24
우아한 가난의 시대
  
2020년 화제의 키워드는 단연 '우아한 가난'이다. 이 핫한 단어의 선구자이자 최근 발간된 에세이집〈우아한 가난의 시대〉의 저자 김지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알려주세요.
2018년 겨울 〈바자〉에 게재했던 칼럼 ‘우아한 가난의 시대’가 계기가 됐어요. “우리는 왜 이렇게 돈이 없을까” “이번 달 카드값은 또 얼마나 나왔나” “이 직장에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그 후에는 뭘 해 먹고 살아야 하나” 이런 이야기들은 술자리의 흔한 레파토리잖아요. 친구들끼리 낄낄거리며 나눈 자조적인 이야기들로 꾸린 칼럼이었는데, 공감 하는 분들이 있었는지 SNS 상에 공유 되며 출판으로까지 이어졌어요.  
 
처음에는 대책없이 소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인줄 알았는데 읽을수록 삶을 진정으로 향유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비에 대한 에세이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모아 놓고 보니 소비에 대한 이야기와 반소비에 대한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저는 옷이나 화장품에는 돈을 거의 안 써요. 그럼에도 먹고 마시다 보면 카드값은 언제나 예상보다 많이 나오죠. 그렇다고 해서 옷이나 화장품에 돈을 쓰면 사치스럽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요. ‘포기할 수 있는/포기할 수 없는’ 각자의 항목이 있는 거죠. 이 항목을 만들어 보는 건 꽤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하기엔 돈도 시간도 모자라기에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데, ‘어떤 항목에 돈과 시간을 쓸 것인가’는 결국 ‘삶에서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와 맞닿아 있더라고요.  
 
제목을 〈우아한 가난의 시대〉라고 지으신 이유가 있나요? '가난’과 ‘우아’라는 단어가 한 문장에 들어가 있다니, 처음엔 낯설었지만 책을 읽을수록 납득 가는 조합입니다.  
가난과 우아함을 처음으로 조합한 것은 제가 아니에요. 비슷한 시기에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과 〈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읽었어요. ‘우아한 가난의 시대’는 이 두 권의 책에서 영향을 받아 쓰게 된 글이에요. 조르주 페렉은 현대의 힙스터와 비슷한 양상으로 살아 가는 젊은이들의 삶을 건조하게 묘사함으로서 1960년대의 사회 분위기를 보여 줘요. 귀족 집안 출신이지만 본인의 세대에 이르러 가난해진 폰 쇤부르크는 스스로를 ‘몰락의 전문가’로 칭하며 가난한 삶 속에서 터득할 수 있는 우아함의 기술을 이야기 해요.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며 2020년대를 살고 있는 이들을 떠올렸어요.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지키려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우아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가난이라는 단어는 좀 더 조심스럽게 사용 되어야 하죠. 제가 묘사한 것은 가난이 아니라 빈곤감에 가까울 거에요.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에서 “요즘 너무 가난해”라는 말을 흔히 쓰고 있기에, 이 경솔한 언어를 그대로 살리고 싶었던 마음은 있었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고, 책에 담긴 것은 그 중 일부분일텐데 책에 담을 내용을 선택하신 기준이 있나요?  
스스로의 정체성을 편집자에서 찾는 편이라, 글 쓰는 과정 또한 편집에 가까워요. 일 하다 만났던 사람들의 유의미한 말들, 책을 읽다가 귀퉁이를 접어 두게 만들었던 구절들, 주변인들의 상징적인 일화들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맥락을 한번쯤 이어 붙여 보고 싶었어요. 그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험들을 선택했어요. 패션 잡지사에서 일하는 이들과의 일화가 가장 많죠. 저와 가까운 친구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소비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직업적으로 럭셔리를 탐구하는 동시에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사적인 럭셔리에 대한 생각을 정립해 가고 있는 사람들이죠.  
 
작가님에겐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흔들리지 않는 독자적인 삶의 양식’이 있나요?
책의 말미에 “유행이 아닌, 나 만의 무언가를 찾아야 할 때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고 적었는데, 이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거창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누구에게 말하기도 민망한 시시콜콜한 것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삶의 양식이 만들어 지죠. 그런데 그 시시한 것들을 선택할 때도 유행, 다른 사람의 시선, 세상의 기준이 개입 되니까 어렵죠. 누가 좋다고 하면 써 보고 싶고, 어느 나이 때쯤에는 집이 있어야 할 것 같고, 어느 날에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가 괜히 울적해 지고… 이 속에서 엄청나게 흔들리면서도 계속해서 ‘찾으려 한다’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의 기억 속 최고의 경험이 궁금합니다.  
기억력이 워낙 나쁜 편이라, 특정 사건은 잘 기억 하지 못 해요. 특정 시기를 뭉뚱 그려서 기억하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어요.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시기가 좋겠다/싫겠다 정도로요. 월세 계약 만료를 걱정하면서도 최고의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는 이 시기도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그리 나쁠 것 같진 않아요.    
 
우아한 가난을 향유한 뒤엔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아한 가난의 시대 이후엔 어떤 시대가 온다고 생각하시나요?
책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 중에서는 ‘그러다 늙어서 후회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더라고요. ㅎㅎ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좀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거시적인 흐름을 정의하긴 어렵지만, 미시적인 변화는 매일 매일 체감하는 바가 많아요. 이 책을 쓰고 있을 때 한 후배가 〈물욕 없는 세계〉라는 책을 보내 줬어요. 일본의 편집자 스가쓰케 마사노부가 쓴 책인데, 그는 물질적 욕망에 지친 사람들이 점점 더 시간이나 경험 같은 비물질적 가치를 쫓게 될 것이라고 말해요. 제 주위에도 자신 만의 풍요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 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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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문혜준
    사진/ 언유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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