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란 뭘까?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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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도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란 뭘까?

“어떻게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을 수 있죠?” 저자는 가난을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엄마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BAZAAR BY BAZAAR 2022.02.11
20대인 나와 60대인 엄마가 여전히 ‘뭘 하고 먹고살까’라는 같은 고민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럽다고 생각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세끼 밥 해 먹으면서 하루 보내는 게 너무 좋아. 매일 해도 질리지가 않아.” 엄마가 말간 얼굴로 말한다. 
 
나는 위대한 김 여사의 딸로 자라오며 밥을 굶어본 적이 없었다. 동시에, 그녀가 일을 쉬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우리는 천장이 없는 곳에서 살거나 구멍 난 옷을 입거나 보리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생일이면 케이크 촛불을 불고 공휴일에는 공원으로 놀러 다녔으며 가끔 영화관에도 갔다. 다만 늘 남의 집을 빌려 살았고 헌 옷을 샀으며 사교육을 받지 않았고 외식을 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일을 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9시가 되면 엄마 아빠의 이부자리까지 펴 놓고 혼자 잠자리에 들고는 했다. 그 일에 어떤 쓸쓸함도 없었다.
 
그런 엄마의 마지막 일터는 동대문의 작은 공장이었다. 4평 남짓한 셋방을 재봉틀로 채우고 이모와 둘이서 재봉틀을 돌렸다. 작은 사업을 시작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둘 다 너무 늙고 느리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엄마가 평생 몸담았던 봉제산업은 날이 갈수록 극단적이고 까다로워졌다. 어떤 날은 일이 없었고 어떤 날은 미친 듯이 많았다. 새벽에 나가서 새벽에 집에 돌아왔다. 식당에 갈 시간도 없어서 앉은 자리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한 번 앉으면 열 시간에서 열다섯 시간까지 미싱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내 주변에 어떤 열성적인 젊은 일꾼도 이들의 초과근무 시간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것은 2020년대의 이야기이며 둘은 예순을 훌쩍 넘은 나이였다. 어떻게 그렇게 일할 수 있냐고 묻기도 애석한 일이었다. 엄마는 그 일을 시작한 열세 살 때부터 쭉 그렇게 일해왔으니까. 퇴근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언제나 미싱 소리가 났다.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번에 UN에서 청년 연령 기준을 20살부터 65살까지로 정했대. 엄마 나랑 같은 청년이야, 회춘 축하해.”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뭐? 이씨, 언제까지 일을 시켜먹을 작정이야?”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자주 오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우리의 위치가 바뀐 것은 아닌가. 평생 일해온 엄마는 왜 여전히 저렇게 일해야 할까. 왜 그럼에도 계속 일할 수밖에 없을까. ‘나’와 ‘노동’은 누구도 대신해서 구원할 수 없고 침범할 수 없는 삶의 가장 중요한 관계다. 엄마는 그 관계 앞에서 한 번도 딴청을 피운 적이 없다. 늘 정직하게 마주 보았다. 그 자세가 그녀를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계속 일하는 것이 삶에 무슨 의미를 가질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이제 도시라면 지긋지긋해. 공장도 싫고." 
그렇게 그녀는 지금까지 번 돈을 긁어모아 시골에 작은 집을 지어 내려갔다. 온종일 그 조용한 곳에서 뭐 할래, 묻자 “나도 이제 빛 좀 쬐어보자.” 한다. 마치 동굴에서 살다 나온 사람처럼. “나만큼 느리고 나만큼 불편한 곳이라면 내가 할 일을 뭐든 찾을 수 있겠지.” 그 말은 책상 모퉁이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유리병 같아 보였다. 그저 그녀의 말대로 되기만을 바라며 손을 모았다. 그런 그녀는 요즘 매우 행복해 보인다. 전화를 걸면 늘 달뜬 목소리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오늘 뭐 했어? 물으면 아침부터 마을 아줌마들과 처녀까지 여섯이서 목욕탕에 다녀왔다고, 젊은 처자들도 냉온욕 맛을 보더니 매일 따라나선다고 까르르 웃는다. 마을의 텅 빈 목욕탕에서 한 무리의 여자들이 냉·온탕을 우르르 오가는 장면을 떠올린다. 개운하게 씻고 집에 오면 마당에 난 풀도 뽑고 햇볕을 쬐며 조금 쉬다가 밥때가 되면 한 집에 모인다. 한 사람당 반찬 두 개만 가져와도 어느새 상이 부러지는 10첩 반상이 된다.
 
국제 정세에 관심이 많은 이 아주머니들은 화요일에는 줌으로 아프가니스탄 세미나를 듣고, 금요일에는 동네 한의원 선생님이 여는 건강 세미나를 듣는다. 다음 주부터는 도자기 수업도 시작한다. 엄마는 특히 건강 세미나가 무척 좋은가 보다. 거기선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는, 그러니까 병원 없이도 건강할 수 있는 일상을 주제로 가르치는 모양이다. 고기와 해산물 없이 대체 무슨 상을 차리냐며 내게 따져 묻던 엄마가 이번에 갔을 때는 채식으로만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 냈다. 청국장으로 만든 산뜻한 샐러드, 갖가지 버섯 조림과 장아찌, 아몬드 드레싱으로 만든 샐러드와 된장 덮밥이 상에 올랐다. 근래 먹은 밥상 중에 최고였다. 나도 질 수 없어서 몇 가지 요리를 해 올렸다. 필요한 재료를 말하면 엄마는 집을 뛰쳐나가서 몇 분 뒤 흙이 잔뜩 묻은 채소를 들고 돌아왔다.
 
잠깐 씻고 나온 사이 엄마가 쿨쿨 잠들어 있었다.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밤마다 불면에 시달린다고 알고 있었다. 새벽까지 드라마를 틀어놓고 동이 틀 때야 잠이 든다고 했다. 다음 날도 잠시 시선을 뗀 사이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엄마 말로는, 팔이 무거워진다, 팔이 무겁다, 다리가 무거워진다, 다리가 무겁다, 그러면 바로 잠이 든댔다…. 나의 경우 그녀의 집에 갔을 때야 가까스로 수면제 없이 잠이 드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도 새벽 늦게야 겨우 가능했지만 말이다. 대신 매일같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악몽 메들리에 시달렸다. 아침에 악몽을 꿨다고 말하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어쩜 좋니. 마인드 컨트롤 해.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엄마는 발아현미를 씹어 먹으며, 해가 떨어지는 동시에 곯아떨어지며, 10첩 반상을 먹고 햇볕을 쬐며, 여섯 이웃과 목욕탕을 오가며 몸과 마음을 컨트롤하고 있는 듯했다. 나의 집은 낡아서 물도 단수되고, 나는 일어나서 다시 잠들 때까지 혼자고, 밤이면 수면제 없이는 잠이 들지 못하고, 열심히 차려봐야 2첩 반상을 먹는데. 하지만 뭐. 마인드 컨트롤 좋다.
 
마을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누군가 뜬금없이 노래 한 소절을 흥얼거리면 옆 사람이 알아서 다음 소절을 부르고, 그 옆 사람이 따라 부르다 끝내 합창으로 이어졌다. 며칠 동안 한 곡만 반복해서 부른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 동네는 지금 아이유의 ‘러브 포엠’과 김광석의 ‘기다려줘’에 심취해 있다. 나는 약간 소름이 돋았다. 마지막까지 절대 노래 부르기에 동참할 수 없었다. 도시인의 이상한 자존심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노래를 함께 이어 부른다는 것은 진정으로 함께 어울리는 것일까 하고 다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할 일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귀촌한 시골 동네에서 엄마는 일 년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 갈수록 귀도 들리지 않고 행동도 굼뜨고 다리도 불편해져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언제든 취직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근처의 공장에서도 그녀를 채용해주지 않았다. 가지고 내려갔던 얼마간의 목돈을 생활비로 야금야금 소진하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집 팔고 다시 서울 올라갈까?” 평생 처음으로 시골 땅뙈기에 자기 집이라는 것을 가져본 엄마가 마치 그런 것 따위는 해 뜨면 녹아 없어질 것처럼 말한다. 평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서, 계속 이렇게 살고 싶으면서 그렇게 말한다. “무슨 소리야, 찾아봐야지.” 나는 정말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20대인 나와 60대인 엄마가 여전히 ‘뭘 하고 먹고살까’라는 같은 고민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럽다고 생각하며. “아무 일도 안 하고 세끼 밥 해 먹으면서 하루 보내는 게 너무 좋아. 매일 해도 질리지가 않아.” 엄마가 말간 얼굴로 말한다. 좋은 꿈을 꾸고 일어난 사람처럼.
 
“가진 돈 다 쓰고 나면 그냥 죽지 뭐. 오래 살아서 뭐 해. 버는 데 아등바등하면서 구질구질하게 사는 거 싫어. 죽고 싶을 때쯤 사람들 모아놓고 인사 잘하고 죽을래.”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밑을 받치고 있는 얇은 종이 한 장만 쓱 빼면 와르르 무너지는 트럼프 카드 성 같다고. “전 세계에서 단 6개국만이 허용하고 있는 안락사를 우리나라에서 합법화하려면 엄마가 곱게 늙어 죽은 후에도 한참이 걸릴걸.” 엄마는 말한다. “그럼 그 스위스인가 어딘가 가서 합법으로 치르면 되지 뭐. 아, 그럴 돈이 있으면 그냥 살려나.” 우리는 웃는다. 아니면 울었나.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발견한다. 
 
거실 창밖으로 내리기 시작한 눈발을. 우리는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지금 세상은 눈이 내리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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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글/ 양다솔(스탠드업 코미디언, 작가)
    일러스트/ 오하이오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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