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샌더스의 긍정, 김심야의 짜증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하루 중 스무 시간을 ‘기꺼이’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프로듀서 디샌더스와 ‘어쩔 수 없이’ 작업하러 나간다는 래퍼 김심야. 이토록 다른 두 사람이 믹스테이프를 만든다. | 음악,디샌더스,김심야,이센스

프로듀서 디샌더스(D.Sanders)와 래퍼 김심야와의 인터뷰는 점심 메뉴를 고르면서 시작됐다. 켄드릭 라마, 스쿨보이 큐 등이 소속된 미국의 블랙 뮤직 레이블 TDE(Top Dawg Entertainment)의 프로듀서, 디샌더스가 선택한 건 김치볶음밥과 만두. “한국 음식을 사랑해요! 엄마가 대구 사람이라 어렸을 때부터 한국 음식을 먹고 자랐어요. 생일 때마다 미역국을 끓여주셨어요.(웃음)” 하긴, 인스타그램 아이디로 한국 이름인 ‘손대현(@sondaehyun)’을 사용 중인 그다. 때문에 그를 “대현이 형”이라 부르는 김심야가 한마디 툭 던진다. “피자 좋아할 줄 아셨죠? 대현이 형 때문에 일주일 삼시세끼를 한식만 먹었어요. 아이고.”한국적 정체성을 유지한 채 L.A. 사운드를 만드는 흑인 프로듀서. 디샌더스의 음악엔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돼 있다. TDE의 슈퍼 루키 래퍼 아이재아 라샤드(Isaiah Rashad)의 EP 와 첫 번째 정규 앨범 에서 보여줬듯 붐뱁과 트랩 힙합, 재즈, 뉴에이지 사이를 자유로이 오간다. 그의 곡을 듣다 보면 재물 자랑하는 여느 힙합 뮤지션과는 다르게 무척 내성적이고 약간은 우울하며 상상력이 풍부한 소년이 떠오른다. “내 성격이 정말 그래요. 특별한 스타일을 구축하려고 하지 않는 것도 음악으로 진짜 내 자신을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드레이크나 켄드릭 라마 타입의, 그러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비트를 만들려고 하는 게 하니라 기분 내키는 대로, 그때그때 본능적으로 쏟아내는 거죠.”그렇다면 최근 공개된 두 곡, 김심야와 함께한 ‘Chamber’와 이센스의 ‘손님’의 경우는? 극도로 상반된 분위기의 두 곡을 듣고 막연히 두 래퍼의 성향을 고려했으리라 예상했었다. “전혀 아닙니다. 그저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면 래퍼들이 선택하는 방식이에요. 물론 두 사람은 다른 타입의 래퍼입니다. 이센스는 스타일이 뚜렷해요. 공격적이면서 레이-백(Lay-Back, 반 박자 뒤로 미는 랩 스킬) 플로 같은 시그너처가 있어요. 반면 심야는 지금 자기 스타일을 찾아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때문에 조금 더 플로의 변주를 즐기고 그 세계를 점점 확장시키는 중이죠.”디샌더스가 말하는 김심야의 세계란 어쩌면 ‘짜증’일지도 모른다. 프로듀서 프랭크와 함께 한 XXX의 앨범 "KYOMI'에서 보여준 그의 랩을 생각해보자. 자유로운 플로, 기계음을 연상시키는 음색과 미시적인 화법,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짜증 섞인 톤이었다. 지난 2016년 6월호 와의 인터뷰에서 역시 “짜증도 잘 내고 집착도 많이 하고 피해망상도 큰 편인데, 가사 쓰는 부분에선 이런 성격이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나. “제게 짜증은 중요한 저력이에요. 그런데 계속 한 가지 문제에 대한 짜증만 파다 보니까 어느 순간 이제 짜증을 내지 말자, 이런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더라고요. 그랬더니 가사가 안 나와서.... 지금은 다른 짜증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어요.(웃음)”'KYOMI'가 클럽에서 벌어지는 특정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면 이번 믹스테이프에선 좀 더 대중적인 한국풍 감성을 저격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때보단 좀 긍정적인 상태예요. SNS에 많이 올라오는 ‘여자는 이런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여자친구를 만드는 법’ 같은 게시물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오히려 우리나라 특유의 수목드라마 같은 느낌, 발라드 뉘앙스를 따라가보려고 했어요. 이런 감성을 얘기할 거면 우리처럼 해라, 라는 뜻으로.”아직 앨범 타이틀조차 정해지지 않은 믹스테이프를 유추해보자면 L.A. 사운드 위에 지극히 한국적인 감성이 더해질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이 예측 불가능한 조합은 두 사람의 캐릭터에서 출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어찌나 다른지, 어떤 질문을 던져도 정반대의 답이 돌아왔다. 작업 과정에 대해서 디샌더스가 "심야는 페인터고 나는 캔버스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통해서 그의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거죠."라고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김심야는 보다 날것의 속내를 털어놓는 쪽이다. "프랭크 형이랑 할 때가 더 편하긴 해요. 프랭크 형은 랩이 들어갈 자리가 없게 비트를 만들어서 가사를 조금만 써도 됐는데, 지금은 랩을 엄청 많이 써야 하거든요.(웃음)"음악을 하는 이유는 또 어떤가. “파산을 하거나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음악을 할 거예요."라는 디샌더스의 바른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심야가 “아무래도 돈이 가장 중요하죠.”라고 진지하게 답하는 식이다. 긍정과 냉정, 이상과 현실, 어떻게 이토록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해나갈 수 있을까? 김심야가 답했다. "제가 100% 진심인 것처럼 대현이 형이 말하는 것도 모두 진 심이에요. 극단적으로 다른 진심이 한 바퀴 돌아 반대편에서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인터뷰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드디어, 두 사람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이 정체불명의 믹스테이프가 결국 보편의 이야기를 다루게 될 거란 사실이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예요. 그 관계라는 게 연인, 부모, 친구는 물론이고 음식과 인간의 관계일 수도 있어요." 디샌더스의 말에 공감하며 김심야가 덧붙였다. "수목드라마의 뻔한 뉘앙스를 가지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힙합을 안 듣는 사람들이 좋아했으면 해요. ‘힙합도 괜찮네’가 아니라 ‘괜찮은 음악이네’ 이런 느낌으로. 뭔가 예를 들고 싶은데, 아직은 예를 들 만한 것이 없네요." 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람, 음식과 인간 등 모든 관계에 대한 쇼트 스토리이자 힙합 같지 않은 힙합? 마지막까지 미스터리한 단서만을 남기고 두 사람은 스튜디오로 떠났다. 디샌더스는 기꺼이, 김심야는 어쩔 수 없이, 둘 다 먹다 남은 만두와 김치볶음밥을 잔뜩 챙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