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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초심자의 감상법

올해 놓쳐서는 안 될 클래식 공연을 모았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5.03.11

초심자의 감상법


“하늘 아래 같은 공연은 없다.” 공연 덕후들에게 통하던 명언이 올해 클래식 음악계만큼 들어맞은 때는 없을 듯. 4인의 예술가가 완성할 공연은 초심자도 놓쳐선 안 되는 기회다. 글을 읽고 예매 계획을 세워볼 것.



가장 현재의 메켈레


클라우스 메켈레의 지휘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정제된 지휘 언어로 깔끔하게 할 말만 한다. 그의 스승이자 수많은 명지휘자를 기른 요르마 파눌라의 가르침 덕이다. 스승은 늘 “덜어내라”고 강조했고, “연주자를 신뢰하고 오케스트라를 방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리허설에서도 핵심만 짚는다. 악보를 이리저리 넘기며 연주자들을 기다리게 하기보다, 원하는 바를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해 주문한다.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메켈레는 세계 메이저 악단 네 곳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줄줄이 꿰찼다. 음악가를 신뢰하는 태도와 효율적인 오케스트라 운용 능력이 입증된 결과다. 인터뷰에서 끝없이 음악 이야기보따리를 꺼내는 그의 반짝이는 눈에 대중도 마음을 내줬다. 누군가는 메켈레의 비상을 보고 때 이른 신드롬이라며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메켈레가 열두 살에 지휘를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결실이 결코 설익은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소년합창단원으로 핀란드 국립 오페라단과 ‘카르멘’을 부른 일곱 살 메켈레는 거대한 음악의 향연에 취해 지휘자를 꿈꾸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학교 끝나고 축구나 게임을 하러 갈 때, 자칭 ‘괴짜’였던 그는 음반을 수집해 듣고 지휘자들을 따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로부터 5년 뒤 제대로 지휘를 배울 기회를 얻었다. 첼로 전공으로 입학한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요르마 파눌라의 지휘 클래스에 선발된 것이다. 메켈레는 레슨 때마다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자신의 모습을 녹화해 개선점을 연구했다. 어릴 때부터 익힌 지휘 언어는 자연스럽게 모국어가 되었다. 메켈레의 음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그가 첫 상임지휘자를 맡은 오슬로 필하모닉이다. 약 20년 동안 악단과 함께한 전 상임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는 오슬로 필하모닉에 굵직한 러시아 음색을 구축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메켈레도 그런 속이 꽉 찬, 힘 있는 소리를 추구한다. 한편, 말러나 쇼스타코비치처럼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한 번씩은 주인공이 되는 작품들을 즐겨 연주한다. 악단의 모든 연주자를 기억하려는 습관은 그의 음악적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파리 오케스트라와는 프랑스 음악을 탐구 중이다. 드뷔시나 파리에서 활동한 스트라빈스키 등 색감과 형상이 가득한 작품들이 메켈레의 주요 타깃이다.


2023년 메켈레는 첫 내한 공연에서 오슬로 필하모닉과 ‘올 시벨리우스’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자국 핀란드의 대표 음악으로 자기소개를 한 셈. 6월,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리는 파리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에서는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 M.68’,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편곡 라벨)’,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공개한다. 오슬로 필하모닉과 파리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임기를 마칠 즈음인 2027년, 메켈레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장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는다. 올 11월 메켈레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 이들의 케미스트리를 미리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On Youtube


Mahler, Symphony No. 3, Oslo Philharmonic


2022년 오슬로 필하모닉과의 말러 교향곡 3번을 담은 영상. 정교하게 다듬고 이어 붙이는 메켈레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Debussy, Prelude a l’apres-midi d’un faune Philharmonie de Paris, Philharmonie de Paris


2023년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2023년 메켈레, 파리 오케스트라는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당시의 짧은 리허설 영상은 6월 있을 내한 공연의 예고편과 같다.



두다멜의 뜨거운 안녕!


구스타보 두다멜의 공연에서는 긴장을 늦추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 자칫 졸다간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주변 관객의 관심을 온몸에 받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두다멜은 지휘대 위에서 모든 에너지를 발산한다. 록스타처럼 머리를 휘젓고 펄쩍펄쩍 뛴다. 가끔은 그의 몸속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다. 두다멜 에너지로 충전된 오케스트라는 폭발적인 힘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두다멜과 LA 필하모닉은 그 에너지 합이 특히 잘 맞는다. 그가 이 악단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15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게 그 증거다. 2007년 LA 필하모닉이 아직 영어도 잘 구사하지 못하던 스물여섯의 베네수엘라 청년을 상임지휘자로 낙점한 건 그만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다멜은 21세기의 새로운 지휘자상을 실현할 인물이었고 로스앤젤레스는 그런 변화를 만들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두다멜과 LA 필하모닉은 함께 많은 일을 해냈다. 클래식 음악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남미 출신 작곡가들을 무대로 불러들였고, 할리우드와 발맞춰 영화음악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실력 있는 젊은 음악가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신작을 위촉 및 연주하며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가꿨다.


아쉽게도 두다멜이 LA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서 내한하는 건 올해 10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공연이 마지막이다. 2026년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안녕을 고하고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클래식 음악계는 두다멜이 뉴욕 필의 전설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업적을 이어갈 인물이라며 큰 기대를 품고 있다. 두다멜의 음악이 큰 사랑을 받은 이유는 역동적인 표현력에 있다. 짧고 강하게 터지는 한 음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두다멜은 말한다. “이 음은 마치 칼로 찔렀을 때 피가 팍 튀는 것처럼 연주해야 해요.” 사랑의 세레나데는 어떨까? “지금은 로봇이 ‘사.랑.해.요.’라고 하는 것 같네요, 귀가 간지러울 정도로 속삭여주세요.” 원하던 음색이 나오면 지휘대를 잡고 흔들며 어린아이처럼 흥분한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해요!” 활기와 열정이 넘치는 젊은 지휘자들은 연륜과 기술을 쌓으며 점차 최소한의 제스처로 악단과 소통한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두다멜은 여전히 젊었을 때의 생기를 내뿜는다. 그 한결같음은 두다멜을 듣는 작은 기쁨이기도 하다.



On Youtube


Tchaikovsky, Symphony No. 4 (Movement IV)


두다멜 음악의 진수를 만나려면 2019년 LA 필하모닉과 연주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의 찬란한 마지막 악장을 감상할 것.


Bernstein, West Side Story 中 Mambo, Sinfonica Simon Bolivar Orchestra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와의 2007년 BBC 프롬스 무대. 베네수엘라 국기가 그려진 점퍼를 입은 이들은 레너드 번스타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맘보’를 연주한다. 음악을 따라 절로 덩실거리는 당신의 어깨에 자유를!



서울시향과 얍 판 츠베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좋은 관계라는 건, 연주를 잘하는 거죠. 같이 휴가나 보내는 게 아니라요.” 갓 취임한 지난해, 서울시향 사무실에서 만난 이 네덜란드 지휘자는 범상치 않았다. 첫 임기 시즌을 보낸 얍 판 츠베덴의 음악에 대한 관객의 평은 다양하다. “오케스트라를 피라미드에 비유한다면 맨 꼭대기에 작곡가, 그 아래 연주자, 그리고 제일 밑에 지휘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그의 말처럼 츠베덴은 오케스트라의 등을 떠밀며 음악이 단 한순간도 처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동력을 제시하는 해석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몇몇 레퍼토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 빠른 해석이다”라고 평했지만, 적어도 그가 임기 내에 정복하겠다고 선언한 말러 교향곡에서는 1번에 이어, 2번과 7번은 성공적으로 완수해낸 듯하다.


올해 츠베덴과 서울시향의 레퍼토리에서는 말러가 압도적인 하이라이트였지만, 남은 기간의 공연도 주목할 만하다. 우선 그가 취임하자마자 언급했던 작곡가 정재일 위촉 신작이 드디어 9월 공개된다. K-컬처를 대표하는 <오징어게임> <기생충>의 OST를 만든 이 작곡가를 츠베덴은 꾸준히 주시해왔기에 그 결과물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날 공연에는 부소니 콩쿠르의 위너 박재홍이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협연할 예정. 6월 19~20일에는 절망을 이겨내고 최고의 연주자가 된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협연의 브리튼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11월 27~28일에는 줄리어드 음악원 교수 이매뉴얼 액스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할 계획이다.


한편 서울시향은 올해 창단 80주년을 맞이해, 10월 27일 미국 카네기홀에서의 무대를 앞두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역임하며 그곳의 생리를 파악하고 있는 츠베덴은 “<뉴욕 타임스>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매체라는 것을 안다. 좋은 리뷰를 받기는 매우 어렵다. 어찌 됐든, 카네기홀에 가서 관객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뛰어난 오케스트라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 중 하나”라고 말했다. 공연에 동행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는 10월 1~2일 한국에서 먼저 공연을 선보인다.


정기 연주회 외에 올해 얍 판 츠베덴과 서울시향의 행보 중 기대를 모으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국립오페라단의 기대작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무대에 오케스트라로 서는 것. 서울시향이 오페라 공연 오케스트라로 나서는 것은 10년 만이다. 무엇보다 얍 판 츠베덴은 그가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홍콩 필하모닉 재직 시절, 바그너의 또다른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 음반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음반을 기억하는 이에게 이번 공연은 충분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On Youtube


Wagner, Tristan und Isolde Prelude and Liebestod, Hong Kong Philharmonic Orchestra


2019년 홍콩문화센터 콘서트홀에서 이루어진 얍 판 츠베덴과 홍콩 필의 조합.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영상.


Rachmaninoff, Symphony No. 2 in E minor, Op. 27


2018년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과 바실리 페트렌코(Vasily Petrenko)의 연주 영상. 10월에 연주될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다른 지휘자 버전으로 들어볼 것.



라벨을 향한 조성진의 응답


지금 조성진은 한 작곡가의 전곡을 꿰뚫어내는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익히 알려져 있듯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라벨. 지난 1월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 음반을, 2월에는 피아노 협주곡 전곡 음반(지휘 안드리스 넬손스, 연주 보스턴 심포니)을 연달아 발매했다.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라벨 탄생 150주년을 맞아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으로부터 전곡 녹음을 제안받았고, 이 작업을 통해 올해를 기리기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에겐 평생 ‘쇼팽’이라는, 무기이자 낙인인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조성진 역시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녹음하며 부지런히 본인의 음악세계를 증명해왔다. 그중 이번 앨범은 탄생 150주년에 맞춰 발매된 피아노 전곡 음반이라는 점에서, 이제 라벨은 쇼팽과 함께 그의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점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음반 발매 후, 유럽에서 투어 일정을 시작한 조성진은 미국 카네기홀, 월트디즈니홀, 링컨센터 등을 거쳐 4~5월에는 다시 유럽의 공연장을 돌며 공연을 한다. 주요 프로그램은 라벨의 피아노 독주 전곡 혹은 리스트, 베토벤, 버르토크, 브람스의 작품으로 구성된 레퍼토리로, 두 가지를 병행해서 진행할 예정. 국내 공연은 6월부터 분주하다. 공연장별 프로그램은 미정이지만, 두 프로그램 모두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아트센터 인천(6월 12일), 서울 예술의전당(6월 14, 17일), 성남아트센터(6월 15일), 김해문화의전당(6월 21일), 대전예술의전당(7월 2일), 천안예술의전당(7월 6일) 외에 대구와 부산에서도 독주회가 예정되어 있고, 7월 4일에는 강릉아트센터에서 강릉시향과 협연 무대도 준비 중이다. 국내 투어 이후, 조성진은 탱글우드 페스티벌, 루체른 페스티벌 등 여름을 대표하는 클래식 축제에 참여한다. 이후 12월에는 국내에서 경기필하모닉과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협연도 예정되어 있다.


라벨 독주 전곡 프로그램을 들으려면 3시간에 달하는 긴 공연 시간을 견딜 각오가 필요하다. 작곡 연도순에 따른 음반에 수록된 순서로 전체 곡을 연주하기 때문. 라벨은 클래식 음악 초심자들이 듣기에는 조금 난해한 작곡가다. 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현된 ‘인상주의’ 대표 작곡가 드뷔시와 라벨의 작품은 미술의 점묘법처럼 선과 면이 아닌 수많은 점들로 그려진 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감상 시 음표 하나하나를 따라가기보다는 지그시 실눈을 뜬 채로 음의 뭉치를 멀리서 바라보는 게 좋다는 뜻이다. 마치 하나의 그림을 감상하듯.


조성진은 이번 음반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와 라벨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고 싶었다. 드뷔시는 자유롭고 추상적인 면이 있어 상상력을 자극한다면, 라벨은 지적이고 완벽주의였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악보에 표기한 사람이다.” 뜻을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장면이 계속되는 것이 라벨 음악만의 매력이다. 빈티지한 색감을 떠올리게 하는 화성, 부서진 샹들리에 아래서 삐그덕거리며 추는 듯한 왈츠의 박자…. 그의 말대로 드뷔시가 아름다운 꿈결 같다면, 라벨의 음악은 빛바랜 추억이다.



On Youtube


Ravel, Le tombeau de Couperin, M. 68 中 1. Prelude


라벨 음반을 녹음한 지멘스 빌라에서, 음반사가 ‘공식’으로 공개한 수록곡 연주. 음반에 담긴 조성진의 섬세함이 엿보인다.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Berliner Philharmoniker


2017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지휘자 사이먼 래틀, 베를린 필하모닉 협연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 실황. 그동안 그의 해석은 어떻게 변했을까?



Credit

  • 글/ 박찬미(음악 칼럼니스트)
  • 글/ 허서현(월간 <객석> 기자) 사진/ 빈체로(클라우스 메켈레), 마스트미디어(구스타보 두다멜), 서울시향(얍 판 츠베덴), 크레디아(조성진) 제공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