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박서보의 '묘법'과 마이키타의 안경이 만났을 때
어떤 유산은 확고한 취향과 만났을 때 뜻밖의 합을 만든다. 고 박서보 화백의 <묘법>과 아이웨어 브랜드 마이키타가 함께한 ‘마이키타 박서보 컬래버레이션 1 OF 0’ 프로젝트가 공개되었다. 예술과 디자인의 교차점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박서보재단의 박지환 디렉터, 마이키타의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모리츠 크루거와 나눈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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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 화백의 작품 앞에 선 박서보재단의 박지환 디렉터와 마이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모리츠 크루거.

세 가지 컬러의 ‘마이키타 박서보 컬래버레이션 1 OF 0’은 각각 3백33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출시된다.
박지환 할아버지께서는 사물의 형태와 기능에 대해 확고한 취향을 갖고 계셨다. 디자인을 고집하는 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고 모든 물건의 마감을 꼼꼼히 살피셨다. ‘Less is more’라는 디터 람스의 철학에 깊이 동의하신 분이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어린 시절 파리 페로탕에서 열린 할아버지 전시에 방문했다가 여느 때처럼 호텔 근처를 함께 걷던 중 한 안경점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 할아버지가 마이키타 안경을 집어 들며 “독일 최고의 안경 브랜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만큼 애착을 가진 브랜드였기에 이번 협업은 서로가 각자의 가치를 들여다보는 시도라 볼 수 있다.
하퍼스 바자 <묘법>이라는 작품을 아이웨어 디자인에 반영할 때 가장 중점에 둔 점은 무엇인가?
모리츠 크루거(이하 모리츠) 박서보 화백의 작품을 보면서, 덜어냄을 통해 내면의 평온함을 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를 디자인 언어에 빗대어보면, 디테일과 장식을 줄이고 본질만 남길수록 영향력이 강해진다는 것과 같다. 가장 먼저 안경 프레임의 내·외부 색을 다르게 만든다는 콘셉트가 정해진 다음부터는 매끄러운 수순을 따랐다. 우리는 작가와 긴밀한 소통 과정을 거쳤다. 하나의 샘플을 완성할 때마다 한국으로 보냈고, 이를 박서보 화백이 실제로 사용해보면서 피드백을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특정한 색을 구현하기 위해 작가가 캔버스처럼 직접 안경 프레임에 색칠을 더하기도 했다. 이를 다시 독일로 보내주면 다양한 안료를 조합하며 완성해나갔다. 프레임 외부는 샌드로 문질러 매트하게 처리했고, 안쪽은 정확한 색을 구현하기 위해 힌지의 금속 소재까지 동일한 색조를 유지하는 재료를 찾아야 했다.
하퍼스 바자 검정, 빨강, 노랑. 협업 과정에서 작품의 세 가지 색을 추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박지환 할아버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색이다. 블랙은 처음 <묘법>의 개념을 창시했을 때부터 사용하셨던 색이라 빼놓을 수 없다. 노란색은 일상에 예술이 친밀하게 자리 잡길 바라셨던 바람이 잘 반영된 색이다. 생전 할아버지께서 김창열 선생님과 대화하던 중 와인에 곁들인 올리브를 보고 구현한 색이기도 하다. (웃음) 레드 컬러는 <묘법>이라는 작품을 접할 때 가장 상징성을 지닌 색이라 생각한다. 2000년 후쿠시마에서 전시를 마치고 해 질 무렵, 반다이산의 단풍이 바람에 흔들릴 때 미묘한 붉은빛을 내는 광경을 보고 무척 놀라셨다고 한다. 어떨 때는 형광빛을 띤 빨강이다가, 어떤 때는 어두운 적갈색으로 변하는 걸 보고 색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지니게 되셨다고. 그렇기에 정확한 색을 구현하는 게 중요한 과제였다.
하퍼스 바자 박서보재단의 전시 큐레이션과 협업을 진행하는 디렉터이자 아티스트 원오브제로(1 OF 0)로서 전시 공간인 피크닉에서 영상을 선보이고 루이 비통과 협업하는 등 여러 프로젝트를 성사시켜왔다. 이런 협업을 통해 박서보 화백의 유산을 이어가는 일은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보나? 특히 협업 과정에서 작가가 강조한 원칙이 있다면?
박지환 할아버지께서는 무척 개방적이셨기 때문에 과정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무엇이든 해보라며 가능성을 열어주셨다. 줄곧 할아버지가 만든 고유한 패턴을 경계 없이 확장시키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선입견을 깨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디지털화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셨던 것 같다. 무수한 정보가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하지 않을까, 우려하시곤 했다. 피크닉에서 영상을 선보인 것은 일반적으로 작품은 벽에 거는데 그 고정관념을 버리고 바닥에 설치해본 시도였다. 막상 결과를 보시고선 무척 만족해하셨다. 또 평면에서만 작품을 전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셨는데, 세르주 무이 조명과 협업할 때 이를 비튼 시도를 하기도 했다. 고유한 정신은 유지하되 새로운 매체를 탐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퍼스 바자 마이키타는 라이카, 마르지엘라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왔는데 예술가와의 컬래버레이션은 어떤 경험이었나?
모리츠 우리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 ‘responsible design’은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어떠한 로고도 없는 디자인, 90% 이상 재생가능한 아세테이트 소재를 사용하는 점, 모든 제작 공정을 직접 관리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은 종국에 영속성을 지닌 디자인을 추구하는 일환이다. 10년 후에 제품을 보았을 때 2024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 하우스와 작업할 때도 이 원칙은 동일하다. 그런 점에서 수행적인 자세로 영원성을 지닌 작품을 만드는 작가와의 이번 협업은 매우 유기적인 과정 속에서 진행된 아름다운 파트너십이었다.
하퍼스 바자 박서보 화백의 예술적인 유산을 경험할 수 있는 이번 협업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발견하길 바라나?
박지환 할아버지께서는 비움의 미학을 실천한 작가라 알려졌지만, 지근거리에서 바라본 내 눈에 그것은 타인을 위한 비움뿐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비움, 수신을 위한 개념이기도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늘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크셨기에 내면의 열망을 잠재우는 행위로 예술을 해오셨다고 생각한다. “채워져 있는 사람이기에 비워야 한다”라고 말씀하셨고. 누구든 자신을 다듬어갈 수 있는 수신의 태도를 생각해본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매일 일상에서 활용하는 제품을 곁에 두고 작품의 정신을 떠올려보면서.
모리츠 우리는 모든 게 너무나 복잡하고 산만한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나. 인공지능의 발전과 날마다 이뤄지는 개발 소식을 들으면 나는 이 현실이 비현실적이게 느껴진다. 작가가 통과해온 시대는 지금과 다르기에, 우리는 그의 작품 안에서 일종의 치유와 평온을 얻을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하기에 더욱 현대적인 작업이 아닐까. 작품의 리얼리티를 보존하면서 동일한 영감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마이키타 박서보 컬래버레이션 1 of 0'은 지오코퍼레이션이 수입 및 유통을 담당한다.
Credit
- 사진/ 이소정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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