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디자인으로 가득한 영감의 도시, 비엔나에 가다

비엔나 디자인 위크 2024에서 에디터가 만난 것들

프로필 by 손안나 2024.10.28
 비엔나 디자인 위크 2024 본부 Copyright eSeL.at ― Joanna Pianka, Vienna Design Week.

비엔나 디자인 위크 2024 본부 Copyright eSeL.at ― Joanna Pianka, Vienna Design Week.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2007년부터 개최된 비엔나 디자인 위크는 4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독일 문화권 최대 디자인 축제다. 해마다 산책하기 가장 좋은 초가을이면 도시 전역이 디자인으로 가득 찬 영감의 성지가 된다. 이들은 매년 거점 지역을 바꾸는데 주로 철거되거나 개조될 예정인 부지를 임시로 사용해서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한다. 올해는 비엔나 3구에 건설 중인 대규모 신축 건물을 본부로 활용했다. “공사장 한복판으로 보여도 놀라지 마. 힘껏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공간이 나타날 거야”라고 귀띔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맨 바닥과 흰색 벽은 소박했지만 그 안에서 만난 작품들에는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가장 흥미로운 건 신구의 협업이었다. 로브마이어는 1823년 유리공예가 요제프 로브마이어(Josef Lobmeyr)가 비엔나에 작은 유리가게를 연 이래 오늘날까지 6대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브랜드다. 젊은 디자이너 플로라 레히너(Flora Lechner)는 로브마이어의 유리 제작 기술을 활용해 ‘Tamed Imbalance’라는 새로운 샹들리에를 만들었다. 조명은 바람 같은 미세한 자극에 반응하는 모빌 형태로, 균형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인다. 디자이너가 균형과 불균형을 통해 전통적인 샹들리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듯, 어쩌면 이번 비엔나 디자인 위크는 오스트리아의 전통 기술과 현대 디자인의 접점을 탐구하는 시도에서 그 미덕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비엔나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공방 세 곳을 둘러보며 이런 나의 가설은 확신이 되었다.
유리 공방 스튜디오 컴플로이(Studio Comploj)는 마치 힙한 라운지 카페 같다. 폴라무어(Folamour)의 일렉트로닉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곳에는 작업에 열중하는 젊은 장인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일에 깊은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작업장 곳곳에 널려 있는 ‘프로토타입’은 이곳을 운영하는 유리공예가 로버트 컴플로이(Robert Comploj)가 왜 유리공예계의 혁신가로 불리는지 짐작케 한다. 이탈리아의 무라노, 덴마크의 코펜하겐, 미국의 코닝을 돌아다니며 기술을 익힌 로버트 컴플로이는 베네치아 유리 공예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유리를 소재로 색상과 형태에 대해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레드, 블루, 브라운, 옐로 등 강렬한 색상과 복잡한 레이어의 유리 질감이 그의 디자인의 특징. “뜨거울 땐 무엇이든 자유로운 모양이 되고 차가울 땐 그대로 굳어버리는 점, 그게 유리의 매력”이라고 말하는 로버트 컴플로이는 아식스 스니커즈나 바나나 껍질에 뜨거운 용융 유리를 붓는 영상으로 이미 유명한 인스타그램 스타이기도 하다. 유리는 그에게 고루하거나 까다로운 소재가 아닌 실험의 도구이자 창작의 장이다.
한편 이 기간 동안 비엔나가구박물관(MAK)에서 열린 «Iconic Aub¨ock»는 20세기 오스트리아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카를 아우뵈크 2세를 조명한 전시다. 아우뵈크 가문은 1900년대 초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공방을 통해 수공예 제품을 제작해왔다. 특히 카를 아우뵈크 2세가 바우하우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브론즈를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전환한 것은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다. 2024년 현재 아우뵈크 공방(Werkstaette Carl Auboeck)을 운영하고 있는 카를 아우뵈크 4세(Carl Auboeck IV)가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1백 년 가까운 공방 기물부터 먼지가 쌓인 창고 안에서 숨 쉬고 있는 진귀한 오브제를 하나하나 꺼내 보여준다. 이 작은 공간에서 초현실주의와 산업디자인의 경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여전히 현대적이라는 사실. “지금도 이 디자인이 현대적일 수 있는 건 미적인 요소를 줄였기 때문일 겁니다. 모든 미적 요소를 극도로 절제했고 그래서 미니멀해요. 이를테면 바로크 디자인이나 건축은 수다스럽죠. 하지만 이 작품들은 침묵합니다. 저는 이게 재즈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맨 처음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을 듣다 보면 그 몇 개뿐인 멜로디가 잘 와닿지 않죠. 하지만 자꾸 듣다 보면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좋은 디자인은 언제나 기능을 따르며, 좋은 디자인은 언제나 좋은 정신을 따른다고 덧붙였다.
로브마이어와 협업한 디자이너 플로라 레히너. Copyright eSeL.at ― Joanna Pianka, Vienna Design Week.

로브마이어와 협업한 디자이너 플로라 레히너. Copyright eSeL.at ― Joanna Pianka, Vienna Design Week.

카를 아우뵈크의 테이블 램프 ‘Nun’.

카를 아우뵈크의 테이블 램프 ‘Nun’.

실용성을 강조하는 파이네딩게의 심플한 도자기 화병.

실용성을 강조하는 파이네딩게의 심플한 도자기 화병.

스튜디오 컴플로이의 유리잔 오브제.

스튜디오 컴플로이의 유리잔 오브제.


도자기 디자이너 산드라 하이슈베르거(Sandra Haischberger)도 그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그녀가 2005년에 설립한 브랜드이자 도자기 공방 파이네딩게(Feinedinge)는 모든 도자기를 100%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의 도자기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기능성을 결합한 것이 이들 디자인의 특징이다. “수납장이나 장식장에 관상용으로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사용할 수 있는, 심지어 식기세척기에도 넣고 돌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당신이 이걸 매일 사용할 수 있고 매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디자인일 거예요.”
우리는 왜 어떤 물건을 좋아할까. 왜 어떤 물건에 마음을 뺏길까. 누군가는 무용함의 우월함에 대해 설파하겠지만 “디자인은 언제나 기능을 따른다”는 카를 아우뵈크 4세의 단호한 덧붙임이 꽤나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의 말대로 디자인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Credit

  • 사진/ © WienTourismus, ⓒ Griesbacher―TafnerStudio, ⓒ Studio Comploj, ⓒ Werkstaette Carl Auboeck
  • 어시스턴트/ 조서연, 정지윤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