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하자면, 윤지영에 대한 관심은 TRPP를 향한 애정의 발로다. 세기말이라 불리던 1990년대, 십대 시절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의 냄새를 2021년 데뷔한 한국의 인디 밴드에게서 감지한 것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니까. 젊은 날의 빌린다 부처(Bilinda Jayne Butcher)를 연상시키는 엘리펀트 999가 실은 싱어송라이터 윤지영의 부캐라는 추측(?)이 나돌면서 그렇게 나는 십대처럼 그녀의 행보를 좇게 되었다.
윤지영의 지난 EP 〈Blue Bird〉는 “조금은 뻔뻔해져 보자, 우리의 지난날 어지러움은 어쩔 수 없었던 거다”로 끝이 난다. 나는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사이 세계는 끝 모를 전염병을 겪었고 음악가의 무대는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나고 있으며 그녀의 나이는 이십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윤지영의 첫 정규 앨범 〈나의 정원에서〉는 그런 스물일곱 살 여성 뮤지션이 기록한 사적인 타임라인이다. ‘어쩔 수 없음’에의 인정을 넘어서 이제 그녀는 “시퍼렇게 외친 그 말에 따른 자유도 잠시, 미숙한 나를 인정한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성숙해지고 싶어졌다”고 노래한다.

넌 마치 원래 날아가버리려고 태어난 것 같았어 / 대답을 듣진 못했지 그때 인사라도 했어야 했는데 / 어디서도 구름 뒤에 숨은 널 찾을 비행기는 없더라고 / 어디서든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 조금은 웃음이 나더라고.
“너무 사적인 이야기라 패스하고 싶다.” 나머지 8개의 트랙엔 모두 담백한 곡 설명을 들려주던 그녀가 유독 이 트랙에서는 입을 다문 이유를, 나는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앨범이 발매하면 나는 지빌레 바이어(Sibylle Baier)와 윤지영의 앨범을 같은 칸에 꽂아둘 것이다. 누군가의, 그리고 나의 스물일곱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 윤지영의 〈나의 정원에서〉는 4월 22일 18시에 발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