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여권! 이들이 인스타그램을 지운 이유는?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Lifestyle

소셜여권! 이들이 인스타그램을 지운 이유는?

모두가 SNS 아이디를 보유하는 시대에 계정을 없앤 별종들의 이야기

BAZAAR BY BAZAAR 2023.02.01
 
‘DM 확인 부탁드려요(합장하는 손 이모지)’, ‘Check DM, Please(체크 이모지)’. 아트 컬렉터, 가오픈한 와인 바 사장, 네덜란드 과학자….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디엠 보내기는(정확히 말하면 섭외 메시지 확인 차 댓글을 남기는) 에디터 일을 하면서 시작됐다. 고민 많던 1~2년 차엔 종종 자괴감이 들곤 했지만, 이제는 별생각 없다. 단지 속으로 두 마디 읊조린다. “팔로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렇다. 나는 파리에 사는 에밀리가 아니다. 만나서 인사를 나눈 적 없는 사람과 ‘맞팔’하기엔 소심했고, 모르는 이의 ‘하트’를 받는 일에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될 만큼 촌스러웠으며, 무엇보다 완벽한 타인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는 일을 통해 충족됐다. 그저 지인들의 근황을 살펴보고, 전시와 맛집 소식 정도 알고 싶을 뿐인데. 내 계정은 인플루언서 지향인과 은둔형 비공개 계정 사이에서, 오늘도 애매해지는 중이다.
어느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인스타그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셜 여권’. 나를 포함한 동시대 직장인들은 그 목적이 비물질적이고 사적인 욕구(친목이나 유명세)든,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든 사회적 동물로서 능력을 발휘하며 인스타그램을 한다. 창작자의 경우도 비슷하다. 원로 작가가 아니라면 출간 전 출판용 계정을 새로 개설하는 작가가 흔하고, 예술계라면 신디 셔먼이 셀피 피드로 만든 태피스트리를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세상이니까. Z세대들은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쓰기도 하더라. “인스타그램 안 하는 남자 어떤가요? 이상한지, 주관 뚜렷해서 멋있는지 댓글 달아줘.” 두 해 전쯤, SNS 회사 내부 관계자들이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의 원리에 대해 폭로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가 화두가 된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의 요지는 이렇다. IT 기업의 목적은 ‘당신의 시간을 1분이라도 더 빼앗는 것’이며, 엄지손가락을 내리면 새 소식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된 앱의 ‘무한 스크롤’ 기능을 포함해 모든 기능이 마치 카지노 슬롯머신을 당기는 행위처럼 인지심리적 욕구를 자극하도록 설계됐다는 것. 이때까지는 내 얘기가 아니라 생각했다. 나는 계정을 고이 뒀다가 마감을 패스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있으니. 하지만 지난달 독감에 걸려 나 홀로 꼬박 5일을 앓으며 타미플루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한 일이라곤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피드를 본 일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생각했다. ‘지워야겠다.’ 일을 하거나, 외출하지 못하는 긴 시간 동안 누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연말이라 파인 다이닝 코스 사진이 한 장씩 이어졌다), 누구와 만났는지, 어디로 떠났는지 수백 장의 사진을 봤다. 처음으로 아득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왜 굳이 캐릭터 버전의 나를 만들어야 하죠?” 〈글래머〉 UK와의 유튜브 인터뷰에서 배우 리지 올슨은 왜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그녀는 스스로 모든 사안에 발언할 ‘자격이 있는’ 사람처럼 느끼는 자신이 두려워, 계정을 삭제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일론 머스크 역시 인스타그램 옹호론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사진을 찍기 위해 밝은 곳을 찾고, 수십 장의 사진 중 한 장을 고르면서 현실의 자아를 보정하는 시간이 결코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라며. 유튜브에 ‘인스타그램’, ‘Quit’, ‘Left’를 검색하자, 전 세계 10~20대들의 간증 영상이 무수히 떴다. 가장 예민한 시기에 가장 유능하고 보기 좋은 모습으로 꾸며진 타인의 삶을 보며 우울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안타깝다가도, 조금 더 나이 든 나도 일정 부분 곤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우쳤다. 인스타그램을 지우면 어떻게 될까? DM으로만 예약 받는 성수동의 핫 플레이스들은 못 가는 건가? 섭외는? 망설이던 나는 앱을 삭제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싶었다. 지인의 지인, 한 다리 이상은 건너야 찾을 수 있는 이 같은 별종들의 이야기를 관찰해봤다.
 
극내향인의 지옥
MBTI ‘E’ 성향이 가득한 광고회사 AE 가운데 홀로 ISFJ인 나는, 이미 업무 시간에 하는 대화만으로 나의 소셜 라이프에 한계를 느낀다. 동료들의 텐션에 따라가기도 벅찰뿐더러 소심한 탓에 매일 집에 오면 이불 속에서 그날 나눈 대화를 복기하며 발길질하기 바쁘다. 사회생활과 함께 시작한 인스타그램은 소프트한 버전의 소셜 훈련소와 같았다. 직업 특성상 트렌드를 관찰하기 위해, 클라이언트와 팀원들과 잘 지내기 위해, 남들 다 하니까,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했다. 애쓸수록 몇 명이 내 스토리를 봤는지, 하트는 누가 눌렀는지 더 신경 쓰였고, 아침에 눈을 뜨면 즉시 앱을 켰다. 뱁새가 황새를 쫓던 나날을 보내던 중 인스타그램을 안 하기로 마음먹은 건, ‘내 스토리 숨기기’ 기능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동료들과 점심을 먹던 중 팀원 누군가 “A씨 스토리 봤어?”라며 대화를 이어갔는데, 나는 한 번도 그의 스토리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 또 B팀장은 항상 팀원들의 스토리를 보고 DM을 귀찮을 정도로 자주 보낸다는데, 내 스토리는 한 번도 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지만, 사실 상처받았다. 후유증은 꽤 오래갔다. 괜스레 자주 울적해져 심리 상담도 받았다. 의사는 내게 방어기제가 높은 편이라며 성향과 맞지 않는 SNS를 스스로의 감정을 억압하면서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그날로 정신 건강을 위해 앱을 삭제했다. 이후 놀랍게도 우려하던 나의 사회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업무상 알아야 할 밈이나 인기 콘텐츠는 유튜브를 보면 그만이고, 누가 물어보면 재미가 없어 안 한다고 말하면 그뿐이다. 이불킥하는 시간이 줄자 여유 시간은 늘어났다. 남는 시간에 명상 앱을 켜거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여행지에 가도 폰 카메라를 드는 대신 가만히 풍경을 보는 일이 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나와 같은 ‘ISFJ’들 중 SNS를 안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 틱톡하는 10대들이 20대가 되면 언젠가 싸이월드처럼, 인스타그램을 떠나는 이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단지 내 성향과 맞지 않아 나는 조금 일찍 떠났을 뿐이다. ‐ 윤환희(광고회사 AE)
 
참을 수 없는 피드의 가벼움
매일 글을 쓴다. 퇴근하고, 저녁을 챙겨 먹고, 잠깐 운동을 한 뒤 책상에 앉으면 9시. 그런 다음 약 3시간 동안 쓴다. 가슴 한편에 신춘문예 등단의 꿈이나 웹소설 작가로 대성하겠다는 포부를 품은 것은 아니다. 그저 판타지 소설 덕후일 뿐. 어릴 적부터 화장실에서 샴푸통 뒤 글자를 읽던 활자인간인 내게 인증샷이 주를 이루던 초기 인스타그램은 별 재미를 주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건 카드뉴스 같은 온갖 명언 계정들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방구석 철학가들이 “내가 →→→하는 이유”, “→→→에 대한 고찰” 같은 타이틀로 온갖 짤막한 글을 업로드하자, 나라고 못할 것 없겠다 싶었다. 지인들 몰래 서브 계정을 하나 파서 휴대폰 메모장에 글을 쓴 뒤 캡처해 그날그날 생각나는 주제나 책에서 본 문구들을 업로드했다. 꾸준히 글을 올리자 팔로어도 하나둘 늘어났고, 1년 정도 운영하니 한눈에 그간의 결과물을 볼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비밀 계정을 아는 절친에게 연락이 왔다. 계정이 해킹 당했다고. 프로필 사진은 외국인 여성으로 바뀌었고, 모든 게시물들은 삭제됐다. 브라질 해커에게 당한 것이다. 그후 보안에 취약한 구조에 실망해 인스타그램과 자연히 멀어졌다. 이후 취미생활은 훨씬 생산적인 방식으로 변했다. 적당한 익명성과 자기표현의 욕구. 나는 SNS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 두 가지 이점을, 웹소설 플랫폼을 통해 충족하게 됐다. 문피아, 노벨피아, 조아라 등 요즘은 작가 인증을 받지 않아도 진입장벽 없이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이 많고, 고심해 쓴 이야기를 통해 받은 ‘추천 수’는 인스타그램 하트 버튼보다 뿌듯하다. 혹시 사진보다 활자에 익숙한 이라면 시도해보길. 앞서 말한 셋 중 내가 어떤 플랫폼을 쓰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 앞으로도 무덤까지 내 필명은 공개할 생각이 없으니까. 원래 취미는 몰래 할 때 제일 재밌다. ‐ 김영민(변호사)
 
‘좋아요’라는, 신기루
페이스북을 켜는 일이 허기를 채우는 일보다 중요한 시절이 있었다. 고백하건대 난 페이스북 중독자였다. 철학과 정치에 관심이 많던 20대 초반 시절, 쉼 없이 포스팅을 했다. “반값 등록금 찬성하시나요?” 같은 주제로 학내 정치를 진단하는 글을 레포트보다 열심히 썼고, ‘좋아요’를 누르는 이들을 내 의견에 대한 강력한 지지자들이라 여기며, 매일 정치인의 기분을 대리만족했다. 게임이나 도박처럼 행위중독을 유발하는 그 어떤 일보다 짜릿했다.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대이동이 이루어지던 시기, 인스타그램을 깔았지만 일주일 만에 지웠다. 오피니언을 올리는 정치인에게 인스타그램은 맞춤 정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독을 끊게 된 건, 총학생회 선거에 낙마를 하게 되면서부터다. 그 많던 ‘좋아요’ 지지자들은 내게 표를 주지 않았고, 그 순간 나는 SNS의 허상을 깊이 깨달았다. 쓰린 패배감과 함께 그간 썼던 모든 글을 비공개하며, 페이크 정치인의 삶을 끊어냈다. 그 과정은 마약 금단현상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무척 혹독했다. 생각을 계속 업로드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나는 패배자의 신세였고, 더 이상 ‘좋아요’ 버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간은 흘렀고, 20대인 나는 30대가 되었다. 종종 인스타그램을 왜 안 하냐는 질문을 받지만, 한번 중독을 경험해본 나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 후 SNS를 하지 않고,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사람이 됐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저자 칼 뉴포트의 의견을 철저히 따른달까. 여전히 왁자지껄한 모임을 좋아하지만 보고 싶은 친구들과는 직접 소식을 물으며 약속을 잡고, 트렌드는 뉴스를 보며, 오피니언이 궁금하면 책을 읽는다. 해외 컨퍼런스에 참여할 때면 외국 학자들과 인스타그램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들도 많지만, 나는 꿋꿋이 메일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펜팔하듯 20세기 감성을 느끼며 진심으로 서로의 근황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낭만도 느낄 수 있다.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인스타그램 유혹에 시달리는 이들이라면 디지털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단 일주일, 그런 다음 한 달로 늘려가며 살아보길 추천한다. 뜬금없이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는 이벤트부터 시작해보길. ‐ 구한민(도시공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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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안서경
    사진/ Getty Images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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