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픈런’이란 단어에 “공연 따위의 폐막 날짜를 정해 놓지 않고 무기한으로 하는 일”이란 뜻 외에 “매장이 오픈하면 바로 달려간다”는 사전적 의미가 추가된 계기는 다름 아닌 샤넬 때문이다. 이른바 ‘샤넬 오픈런’. 나 빼고 세상 사람들 전부 부자인가 싶을 정도로 너나없이 1천만원에 달하는 (혹은 그 이상의) 가방을 위해 무려 노력과 노동이 동반되는 ‘줄’이라는 것을 선다. 가격을 인상하면 할수록 되려 ‘문전성시’라는 요상한 현상을 낳은 장본인인 샤넬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1조 2천억 원, 영업이익은 2천4백9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2%, 67% 증가했다고 한다. 즉 서울 한복판에서 샤넬 클래식 백을 마주친 횟수가 삼선슬리퍼 신는 사람만큼 잦다고 느낀 건 단순 기분 탓이 아니었다는 것.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매일같이 새로운 오픈런 대상이 생겨나더니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오픈런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놀랍게도 여전히 열풍이 부는 중이다. 그렇게 ‘샤넬 오픈런’을 시작으로 ‘오픈런’이라는 단어 자체가 현세대의 대표적인 트렌드가 돼버린 것이다. 물건을 사러 줄을 서는 이 현상은 물론 사촌언니처럼 정말 ‘필요’에 의해서도 있지만, 이보다는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가지 못해 갖는 보상심리, 유독 트렌드에 민감한 국민성, 군중심리, 뒤처지면 안 되는 MZ세대의 새로운 트렌드, ‘100개 한정판’ ‘2달간만 판매’ ‘수량 소진 시 판매 중단’ ‘다시 만들지 않겠다’ 등 오늘 아니면 못 산다는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에서 비롯된 아웃컴, 창조경제를 이끄는(?) 리셀러, 리셀러들의 괘씸함만은 피해 정가 구매의 간절함에 따른 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오픈런’ 현상에 대한 해석이다. 지역사회 경제에 이로운 것 빼고는 얼핏 봐도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 이에 따른 질문. 누구를 위한 오픈런인가?
오픈런의 ‘미학’을 깨닫게 된 역설적이게도 이 행위가 주는 ‘소확행’을 발견하고 나서다. 내 주변 사람들 또한 ‘오픈런’ 행렬에 뛰어들었다. 퇴근 후 혼술이 삶의 유일한 낙인 지인은 맥캘란 18년산을 구매하기 위해 새벽같이 홈플러스로 향한다. 빵지순례 세계여행을 꿈꾸는 친구는 최근 새로운 지점을 오픈한 뚜르띠에르 매장을, 감성템 수집가인 친구는 ‘김씨네과일’ 티셔츠를 쟁취하기 위해 이마트 24를, 옆집 초등학생 아이는 밈이 아닌 진정 ‘디지몬’ 애니의 열혈팬으로 엄마 손 꼭 붙잡고 물류 시간에 맞춰 세븐일레븐을 찾아가 디지몬빵 구매를 희망한다. 이제 막 ‘영 컬렉터’ 대열에 입문한 지인은 전국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아트페어를, 패션 인플루언서가 꿈인 대학 동기는 각종 패션 브랜드 팝업 행사를 오픈런 한다.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 하나 가지고 너나없이 ‘끝없는 기다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 모두에게서 반짝이는 눈빛을 보았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애정하는 어느 밴드의 콘서트 티케팅 참패 후 ‘취소 티켓 구매’라는 목표를 갖고 무작정 현장을 찾아간 적이 있다. 여섯 시간 정도 기다린 후 표를 손에 거머쥐게 된 당시의 심정을 어느 마라톤 선수의 말을 빌려 표현해보자면 “힘겨운 사투를 거쳐 피니시 라인에 들어올 때의 그 폭포수 같은 희열”이었달까. 종아리가 살짝 부었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진심’이 동반되었다면 ‘오픈런’은 이로운 현상이다. 그 길고 긴 줄에 서 있는 누군가의 하루의 끝은 분명히 달콤할 것이다. 이들에게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비극”은 반대로 적용되며 멀리서 보면 비극일 수 있으나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승리’를 그 무엇보다 기원한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은 현대사회에서 무척이나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