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하는 포켓몬의 이름을 줄줄 외던 스태프에게 포켓몬빵의 맛을 물었더니 답은 짧았다. “딱, 삼립 빵 맛요.” 유튜브나 네이버에 ‘포켓몬빵 맛있게 먹는 레시피’ 같은 추천이 왜 인기인지 더 선명해졌다. 2030세대의 추억 여행, 컬렉터의 마음에 불 싸지르는 1백59종의 띠부띠부씰, 코로나 시대의 길고 잦은 격리 생활로 인한 소통과 놀이 부재, 끊임없이 인정욕구를 표출하는 현 세대의 특징,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레이블링 게임(labeling game)을 즐기는 이들의 또 다른 레이블링 현상, 국진이빵 스티커와 치토스 따조의 수명 연장, 뉴트로의 최신 버전 등 이 열풍의 근원을 설명하는 수많은 해설 중에 ‘맛’은 딱히 없다.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는 편의점 음식이라는 특징만 남았을 뿐이다. 포켓몬빵의 열풍은 빵의 열풍이 아니라 포켓몬빵이라는 밈(Meme)의 소비 열풍에 가깝다.
‘먹을 것에 진심’이라는 표현이 있다. ‘푸드 파이터’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서 웃으며 기억해뒀던 이 표현은 어떤 면에선 K-컬쳐에 딱 어울리는 말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진다. 정말 요즘은 모두가 먹을 것에 관심이 높고, 넓고, 깊다. 지난 2008년 매거진에서 ‘음식과 술’ 에디터로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 해를 거듭할수록 먹을거리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맹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먹방’이 생겼고, ‘맛집 블로거’의 영향력이 커졌고, 파인다이닝으로 대표되는 미식 문화는 물론이고 프랜차이즈 음식의 비상과 부상도 거셌다.
사람들이 훨씬 더 쉽고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스낵과 디저트류로 영역을 옮겨가면, 사회적·대중적 유행은 훨씬 잦고 빨랐다. 기억을 더듬어 흐름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2014년에는 허니버터칩이 편의점을 휩쓸었다. 허니버터칩 한 박스가 진주목걸이 선물처럼 귀하게 여겨졌던 기억이 난다. 벌꿀 아이스크림(2013년), 대만 카스텔라(2016년)처럼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이끄는 새로운 맛의 유행도 심상치 않았다. 너무나 빠른 성장, 생계와 오해, 돈과 욕심이 뒤엉키며 재빠르게 퇴장한 상처 가득한 음식이기도 하다. 뚱카롱으로 진화한 마카롱의 열풍, 스낵류까지 점령한 ‘마라 맛’의 침투력 등은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느새 서서히 트렌드의 입지를 넓혀갔다. 2018년부터는 샤인머스캣이 고급 과일이자 새로운 디저트로 부상하면서 한국에서 재배되는 포도의 지배 품종까지 바꿔가고 있다. 2019년, 흑당 버블티로 시작된 흑당의 열풍은 음료과 과자 등 단맛이 나는 모든 것으로 옮겨붙었다. 코로나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달고나 커피의 제조법과 유행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까지 뻗어나갔고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크루아상과 와플의 결합인 ‘크로플’은 카페 디저트 메뉴를 크게 흔들었다. 빵의 영역으로 가면 앙버터빵, 소금빵 등 다 열거하기도 힘든 다채로운 유행의 갈래가 그 흐름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2021년에는 민트 초코 맛의 열풍과 공포가 동시에 불어닥치며 제과업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최근엔 노티드 도넛과 누데이크 케이크처럼, ‘힙’력을 추가한 스몰 브랜드의 먹을거리 앞에도 엄청난 관심이 쏟아져 이제는 길고 긴 줄을 뚫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포켓몬빵이 단종되고 다시 출시되기까지의 23년 간, ‘먹을 것에 진심’인 한국인들의 기질은 이렇게 진화하고 발전해왔다. 그러니 다시 등장한 포켓몬 빵의 열풍 앞에서 사람들은 도저히 대충일 수가 없다. 게다가 그 사이 ‘덕질’과 ‘오픈런’, ‘밈 문화’가 한층 심화됐기에, 포켓몬빵의 열풍은 문화 소비 현상으로 커지고 있다. 때론 지나치게 과열돼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포켓몬빵을 실은 물류 유통 차량을 노리는 ‘물류런’까지 일어나고 있으니, 마냥 웃고 넘길 수는 없게 된 것이다. ‘빵’은 뒷전으로 밀리고 ‘씰’에 초점이 과하게 맞춰지면서 ‘먹을 것’의 영역을 넘어가는 것도 문제다.
누구나 맛있는 것을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누구나 맛에 대해 평가할 수 있고, 비싸고 귀한 몇몇 식재료가 아니라면 다행히 맛있는 음식에는 많은 사람이 비교적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맛집 추천이나 음식 칼럼을 써오면서 이 점은 가장 강력한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해왔다. 사람들의 현재 관심사를 파악해 기사를 쓰면 그 기사를 보고 즐기고 저장하고 활용하는 사람은 늘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물론 반대 의견, 지적, 욕설을 섞은 가르침 등도 많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는 일은 자명한 즐거움이고, 먹거리를 둘러싼 현상을 즐기는 일 자체가 행복이 된다는 점도 명백히 깨달았다. 최근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시리즈 〈베이킹 임파서블〉을 보면서 ‘먹을 것에 진심’인 콘텐츠는 정말 뭘 해도 통한다는 새로운 깨우침마저 얻었다. 케이크에 공학을 더하고 실험과 요리의 영역을 마구 섞었는데도, “재밌다. 먹고 싶다. 더 보고 싶다. 빨리 다음 편”이라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들의 유행은 쉬지 않고 등장할 것이다. 부디 다른 진심이 끼어들어 망쳐버리는 일만은 없기를, 촬영 후 아무에게도 나눠주지 않은 포켓몬 씰에 붙은 먼지를 떼며 되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