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의 출처에 대한 투명한 소통은 결국 우리의 소중한 지구와 인류를 지키고 관리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도배하는 미사여구로부터 정확한 팩트를 가려낼 줄 아는 안목이 절실하다.
수십억 년 전 지구 깊은 곳에서 태어나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지속가능성의 정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여전히 아프리카에서는 수백만 명의 광부들이 하루에 1달러도 벌지 못하고 있으며, 안전장치나 제대로 된 도구조차 만져보지 못한 채 채굴하다 죽어가는 일도 허다하다. 이러한 아프리카의 참혹한 눈물에서 교훈을 얻은 다이아몬드 업계는 다른 산업보다 20년 앞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재정비를 시작했다. 다이아몬드 원석 채굴에서 고용 확대, 조세 수입 증가, 주민 복지 확대로 변환시키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고, 분쟁 다이아몬드의 생산과 유통을 막기 위해 2002년에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공급망에서 차단하는 ‘킴벌리 프로세스’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도적인 맹점 또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우선 ‘합법적인 정부에 대항하는 반란 단체’를 지원하는 다이아몬드 ‘원석(rough)’의 채굴과 유통으로 적용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 또 낱개가 아닌 ‘묶음’에 인증서가 발급되어, 밀수한 다이아몬드 원석이 섞여 있어도 미분쟁 인증서 발급이 가능한 것도 허점으로 지적되어왔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은 경우, 회원사 간의 만장일치로 의결되는 시스템 역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 합치를 이끌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중 유일하게 다이아몬드 폴리싱 워크 숍을 소유, 운영 중인 티파니. 1천5백 명에 달하는 장인들과 함께한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러시아산 다이아몬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원론적인 정의에 따르면 러시아의 다이아몬드는 내전을 일으킨 반군 활동의 자금줄이나 인권 유린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분쟁 다이아몬드라 부를 수 없다. 킴벌리 프로세스에도 관련 규정은 없다. 이에 티파니,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등은 자체적인 윤리 규정을 만들어 거래처에 모든 러시아산 상품 공급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심지어 미국의 브릴리언트 어스(Brilliant Earth, 2021년 나스닥에 상장한 블록체인 기반의 윤리적인 주얼리 기업으로 천연·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모두 취급하고 있다. CEO 베스 거스타인(Beth Gerstein)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기업가 중 한 명이 되었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기업이다)는 웹사이트의 상품 리스트에서 러시아산 다이아몬드를 전량 삭제하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결국 러시아 정부가 33%의 지분을 보유한 광산회사 알로사(Alrosa)는 천연 다이아몬드 위원회(Natural Diamond Council)와 주얼리 산업관행책임위원회(Responsible Jewelry Council, 이하 RJC)에서 잇따라 제명되었다. RJC의 거물급 회원사인 리치몬트와 케어링, 판도라 등이 알로사의 회원 유지에 거세게 항의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한 결과다.
이렇듯 러시아의 전쟁 도발이 불러온 위기와 미분쟁 다이아몬드에 대한 점차적인 수요 증가에 힘입어 다이아몬드의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최근 지정학적 맥락을 반영한’ 윤리적인 다이아몬드의 명확한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주얼리 브랜드들은 현 시점에서 어떻게 윤리적인 이슈에 접근하고 있을까?
드비어스가 운영 중인 남아프리카 크룬스타트의 다이아몬드 광산.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광산 폐기물을 활용한 이산화탄소 저장 기술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티파니, 까르띠에, 부쉐론, 쇼메, 타사키 등 많은 브랜드에서 킴벌리 프로세스를 준수하며, RJC 회원사로서 채굴부터 판매 과정에 이르기까지 환경적, 사회적, 윤리적 규범 확립에 앞장서고 있다. 티파니는 새롭게 채굴해서 세팅하는 0.18캐럿 이상의 모든 다이아몬드의 산지 정보를 공개하는 ‘다이아몬드 소싱 이니셔티브’를 실시하고 있다. 까르띠에도 ‘시스템 오브 워런티즈(System of Warranties)’를 준수하며 공급 업체의 활동과 협력 국가와 관련된 위험도를 면밀히 파악하기 위한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러시아산 다이아몬드와 유색석의 소싱을 중단했고 같은 맥락에서 미얀마 루비와 아프가니스탄 라피스 라줄리의 소싱을 중단한 바 있다. 최신 블록 체인 기술로 다이아몬드 생산에서 유통까지 각 단계에서 보다 쉽고 정확한 추적이 가능해진 것도 정보의 투명성에 한몫하고 있다. 지난 1월 사린 테크놀로지스(Sarine Technologies)와 협력 계약을 체결한 부쉐론은 ‘에투알 드 파리’ 컬렉션에서 다이아몬드의 4C(다이아몬드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 색, 투명도, 커트, 캐럿)뿐 아니라 원산지, 연마, 세팅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드비어스도 ‘트레이서(Tracr) 프로그램’과 ‘코드 오브 오리진(Code of Origin)’을 통해 윤리적으로 채굴한 다이아몬드임을 확인하는 코드를 각인하고 있다. 미국보석감정원(GIA, 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도 조만간 ‘GIA 소스 베리파이(GIA Source Verify)’를 통해 천연 다이아몬드의 산지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제조처까지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브릴리언트 어스는 정확한 원산지 추적이 어려운 멜리 다이아몬드의 경우 현재 가장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노동 관행을 준수하는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 보츠와나,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레소토 산을 우선적으로 소싱한다고 밝혔다. 채광 작업이 종료된 후의 관리도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브릴리언트 어스는 비영리 펀드를 조성하여 경지 환원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타사키는 채굴지에 나무를 심어 다시 숲으로 복원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한편 구매력이 강한 MZ세대를 의식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성장시킨 합성 다이아몬드) 기업들 역시 약속이나 한 듯 친환경이라는 용어를 앞세워 마케팅에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투자한 다이아몬드 파운드리(Diamond Foundry)는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 인증을 받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생산업체임을 강조한다. 드비어스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주얼리 브랜드 라이트박스(Lightbox)도 다이아몬드 합성에 사용되는 에너지의 1/3이 친환경 에너지임을 내세우고 있다. 천연 다이아몬드의 판매 중단을 선언한 판도라 역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컬렉션 ‘판도라 브릴리언스’에 탄소중립 증명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일부 업체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합성 과정이 천연 다이아몬드 채굴보다 반드시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자연환경에 발자국을 남기지만 합성 다이아몬드는 합성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전기가 소요되므로 사례별로 정확한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용어를 남발하거나 ‘녹색 분칠’로 포장하는 행위는 반드시 제재되어야 한다. 2021년 미국의 연방거래위원회(FTC)에서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친환경으로 포장한 8개의 업체에 경고장을 보낸 바 있다.
팬데믹을 겪으며 주얼리 산업 역시 수많은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디지털 역량이 크게 향상되었고 지속가능성과 책임 있는 채굴에 대한 소비자들의 행동 문화도 더욱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물론 작고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로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추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영원할 것이고, 수많은 행복한 순간마다 제 역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탄생의 시작점부터 우리의 손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고민해야 할 시대가 도래한 것은 분명하다. 다이아몬드의 출처에 대한 투명한 소통은 결국 우리의 소중한 지구와 인류를 지키고 관리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도배하는 미사여구로부터 정확한 팩트를 가려낼 줄 아는 안목이 절실하다. 오해와 편견에 대항하고 지속가능한 산업에 동참하고 싶은 기업이라면 현재의 딜레마를 공개하고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지금,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은 소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