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 작가 최경주가 고래에 꽂혔을 때
의류 브랜드 네이더스와 판화 작가 최경주가 손을 잡았다. 2월 셋째 주 일요일. 세계 고래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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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고래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의 현실을 알리고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날로, 매년 2월 셋째 주 일요일로 지정한다. 이 날을 기념해 매년 캠페인을 벌이는 브랜드도 있다. 편집숍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전개하는 의류 브랜드 ‘네이더스(NEITHERS)’다. 범고래처럼 자유로이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이들을 조명한 ‘For All Orcas’ 캠페인을 진행하는가 하면, 불법 포경의 심각성을 알리는 단편 영화 <꿈과 숨>을 제작해 연희동 라이카 시네마에서 상영회를 연다. 네이더스는 앞으로도 고래의 현실을 알리고 보호하는 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생각이다.
올해는 판화 작가 최경주의 프린팅 레이블 ‘아티스트 프루프(Artist Proof)’와 함께 전시를 열었다. 지난 2월 15일부터 23일, 슬로우스테디클럽 안국점에서 진행된 전시 ≪AP (AT) SSC /W NETITHERS≫에서 티셔츠, 블랭킷, 가방, 파우치 등 고래에서 영감 받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푸른 바다의 수평선 위로 솟은 거대한 고래의 꼬리에서 메인 패턴의 영감을 얻고,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과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영화 <더 웨일>을 지나 실은 고래에게 닥친 위기가 우리 모두의 위기라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작가 최경주에게 이번 작업은 고래와 환경에 대해 또 한 번의 경각심을 느낀 시간이었다.

사진/슬로우스테디클럽
작가 최경주에게 기업과 브랜드, 아티스트와 협업한 사례는 많았다. 네이더스와 함께한 이번 전시 프로젝트는 어떤 점에서 달랐나?
전시는 네이더스의 새로운 프로젝트 ‘Reimagined’에서 시작됐다. 작가가 네이더스의 옷을 재해석해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보는 장기 프로젝트인데, 브랜드에게는 지속 가능한 가치와 현실적인 선순환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고 작가에게는 옷으로 재미있는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다. 나는 네이더스의 지난 시즌 의류를 받아 실크스크린 작업으로 각기 다른 그래픽이 찍힌 티셔츠를 제작했다. 버려질 샘플은 이리저리 해체해 블랭킷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주고받다 제45회 세계 고래의 날을 기념해 고래를 주제로 작업을 확장해보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네이더스와의 협업은 이번이 네 번째인데, 한 브랜드와 꾸준히 관계를 이어왔다는 점에 뿌듯함을 느낀다. 크고 거창한 계획 대신, 작가와 브랜드가 서로의 행보를 응원하며 지속적으로 관심사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들이라 더 만족스럽고 소중하다.
고래를 주제로 한 작업인 만큼, 고래와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을 것 같다. 그중 메인이 된 고래 패턴을 만드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
고래에 대한 자료를 찾다 푸른 바다 수평선 위에 거대한 고래의 꼬리가 솟아있는 사진을 찾았다. 메인 패턴은 바로 그 이미지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어느 날은 네이더스의 상징인 범고래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이어가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떠올렸다. 여기에 최근 다시 본 영화 <더 웨일>에서 주인공 찰리의 딸 엘리가 쓴 모비 딕에 대한 에세이가 오버랩 되면서 고래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세계 고래의 날’이 지정된 연유부터 무분별한 상업 포경으로 멸종 위기에 놓인 혹등고래 이야기, 점점 심각해지는 바다 쓰레기, 해수 온도의 상승,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는 기후 위기까지. 리서치는 물흐르듯 이어졌다. 그리고 깨달은 건, 고래의 문제는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번 협업이 남긴 건 물성을 띤 결과물도 있지만, 고래에서 파생된 경각심도 크다. 앞으로도 고래와 환경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더 찾아볼 계획이다.

최경주 작가(@artistproof_studio)가 NEITHERS(네이더스)를 상징하는 고래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판화 작업으로 재탄생시킨 블랭킷

최경주 작가가 네이더스를 상징하는 고래에서 영감 받아 판화 작업으로 재탄생시킨 긴팔 티셔츠

네이더스와 협업한 에코백

고래에서 영감 받아 판화 작업으로 재탄생한 스트링 백

고래에서 영감 받은 AP 파우치

네이더스와 협업한 블루 컬러 반다나
당신의 작품에는 형광색이 많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블랭킷, 반다나, 가방, 파우치 같은 패브릭 작품은 차분한 색감이 주를 이루는데.
형광색은 내 정체성을 반영한 색이다. 타지에서 이방인이 되었던 유년시절의 심상이 무의식 중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발현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형광색은 그중 하나다. 그 때 느낀 이질적 감정을 대변한 것이다. 한 때는 형광색이 다른 색과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을지 고민했던 시기도 있었다. 요즘에는 그보다 삶과 작업의 균형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튀는 색감보다 톤 다운된 색이 많이 쓰인 것을 보면 그 고민이 작품에도 반영된 것 같다.
고래를 주제로 한 작업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순간을 꼽자면.
블랭킷을 만들 때. 입는 옷의 기능을 하기 위해 제작된 섬유가 덮는 이불이 될 때 살리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디테일을 구현해내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전시를 오픈한 뒤 네이더스와 이번 협업을 확장시킬 방향에 대해 신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조만간 새로운 협업을 도모할 수 있을지도!

전시 ≪AP (AT) SSC /W NETITHERS≫ 전경
이번 작업은 의류 브랜드와의 협업이라는 특성상, 패브릭 재료의 작업 위주였다. 과거 작업을 보면 나무나 점토, 러그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보는 데도 거침이 없는 것 같다. 한 때는 실리콘에 빠져 있다 밝히기도 했었는데.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재료는 무엇인가?
물성에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패브릭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워낙 종류가 방대한데다 소재가 유연해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 무궁무진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패브릭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최근 스페이스 카다로그에서 진행한 개인전 ≪메아리≫에서 시멘트로 만든 오브제를 선보였다. 그 전시를 계기로 시멘트에 재미를 붙였는데 조만간 무언가를 더 만들게 될 것 같다.
올해 아티스트 프루프는 어떤 작업을 더 보여줄 계획인가?
이번 네이더스와의 협업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10월 말쯤에는 안국에 위치한 전시공간 택트(TACT)에서 작가 최경주와 레이블 아티스트 프루프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Credit
- 사진/슬로우스테디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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