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ILITY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신작 '플래닛 아쿠아'를 통해 하고 싶은 말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신작 <플래닛 아쿠아>를 내놨다. 그와 4백6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사이에 두고 두 시간에 걸쳐 나눈 길고 방대한 대화의 요점은 하나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하기 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발 딛고 사는 지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대지가 아닌 물의 행성으로서의 지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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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리프킨 기후변화와 미래 연구에 몸담은 지도 50년이 다 되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지구라는 행성을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하다고 느낍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전제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인류가 땅의 행성에 살고 있다는 전제 말입니다. 우리는 대지가 아닌 물의 행성에 살고 있습니다. <플래닛 아쿠아>는 이 사실이 전부인 책입니다. 폭염과 한파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상기후부터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 이야기까지. 모두 지구가 물의 행성이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생명의 원천인 물을 고갈시키고 굴복시키는 대신, 지금의 물의 흐름에 인간이 적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퍼스 바자 책은 점점 따뜻해지는 지구에서 ‘수권(水圈,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물)’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북극과 남극의 해빙, 잦아지는 가뭄과 홍수, 폭염의 장기화, 산불의 확산은 모두 수권이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요.
제레미 리프킨 그렇습니다. 인터뷰에 답을 하는 지금만 해도 미국 남부가 5일째 물에 잠겨버린 상태예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도시와 마을 전체가 차례대로 붕괴되고 있죠.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물은 인간의 상상 이상으로 힘이 셉니다. 홍수, 가뭄, 열파와 같은 물이 초래한 재해는 앞으로 훨씬 강력하게 찾아올 거예요. 달아오른 지구의 물은 재분배되어 세계 곳곳에서 이상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 변화에 결코 익숙해지면 안 됩니다.
하퍼스 바자 기후 난민 12억 명을 바라보고 있을 2050년 즈음을 상상하며 제안하신 개념들이 흥미롭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팝업 도시’인데요. 인류는 살기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물을 찾아 주기적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 해체 및 재조립할 수 있는 건축물로 만들어진 팝업 도시가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보셨습니다. 약 20년 뒤 인류가 유목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쉽게 와닿지는 않는데요.
제레미 리프킨 이 주제가 바로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당신처럼 모두가 믿지 않고 회피하고 싶어하는 주제이고요. 아마 유목 생활을 난민 캠프를 떠도는 삶으로 인식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말한 팝업 도시는 최첨단 3D 프린팅 기술로 세울 수 있는 도시입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머물다가 떠날 때에는 모든 자재들을 재활용할 수 있어야 하죠. 기온이 다른 지역의 2배 이상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지중해의 상황이 우리 미래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지중해 지역에는 5억 4천만 명이 살고 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져 더 이상 작물도 자라지 않는 지경이에요.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지중해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기 위해 목숨을 건 여행을 하고 있죠. 중남미 지역의 거주민들도 멕시코와 텍사스를 거쳐 북쪽을 향해 모든 것을 걸고 이동 중이고요. 아랍에미리트(UAE)는 2030년까지 새로운 건축물의 25%를 3D 프린팅 기술로 세울 것이라 발표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5천억 달러를 3D 프린팅 건물에 투자하겠다 밝혔습니다.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대이동은 필연적이라는 얘기입니다.
하퍼스 바자 그렇다면 인류의 잦은 이동으로 인해 배출되는 탄소는 어떻게 상쇄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제레미 리프킨 일단 화석연료 사용을 최대한 빨리 중단해야 합니다. 2019년부터 태양광 및 풍력 발전 비용이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기반한 발전 비용보다 저렴해졌습니다. 원자력보다도요. 이러한 대체에너지를 처음 연구하기 시작한 1970년대에만 해도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기 1와트를 생산하는 데 72달러가 들었지만, 지금은 43센트 정도예요. 컴퓨터 칩처럼 점점 더 저렴해지고 있는 것이죠. 화석연료를 고수하려는 일각에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자원으로의 전환 대신 기존 연료를 개발시켜 판을 키울 생각까지 하고 있더군요. 저에게는 인류의 멸종을 앞당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퍼스 바자 현실감 없기로 따지면 곤충 산업의 전망을 이야기하는 대목도 빠질 수 없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육류 소비를 대신해 곤충을 주식 삼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어떤 근거가 있습니까?
제레미 리프킨 1960년대엔 미국에 스시 바가 단 한 군데밖에 없었어요. 이 사실이 믿어지나요? 그때만 해도 날생선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는 얘기예요. 지금은 어린이들도 초밥을 즐겨 먹죠. 식재료로서의 곤충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입니다. 식충성(entomophagy), 즉 인간이 곤충을 음식으로 소비하는 행태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지금도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약 20억 명 인류의 식단에는 곤충이 포함되어 있어요. 저도 소고기를 좋아하지만, 축산업에만 지구 면적의 23%가 사용된다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육류를 생산하는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메탄 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하고, 기온 상승에도 악영향을 미치니까요. 무엇보다 물을 많이 쓰죠. 인간이 생산하는 전체 곡물의 35~40%가 소의 사료로 쓰이는데, 이를 재배하는 데 들어가는 물이 어마어마해요. 곤충은 동물보다 단백질 함량도 높고, 물의 소비도 적다는 등 장점이 많습니다.

제레미 리프킨 책에서는 챗GPT-3가 약 50개의 질문에 응답을 할 때 500밀리리터의 물을 소비하고, 컴퓨터에 사용되는 칩 하나를 만드는 데 30리터의 물이 사용된다는 것을 예시로 들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실패작이 될 것이며 온라인 세계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가 인공지능 혁명의 초기 단계에 접어든 지금, 적어도 이 사실을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메타버스를 성장시키기 위해 지금도 부족한 담수를 얼마나 더 희생시켜야 할지를요. 6개월 전부터 유럽연합에서 ‘그린 딜’과는 별개로 담수 및 해양 자원을 보호하고 다양한 물 위기에 대응하는 ‘블루 딜’을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는 12월부터 새 유럽연합 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의 임기 시작과 함께 이 사안을 다룰 예정이에요. 위기 속에서도 인류는 계속해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하퍼스 바자 금융 자본보다 ‘생태 자본’, 효율성보다 ‘적응성’, 생산성보다 ‘재생성’ 등. 지난 저서들에서 꾸준히 강조해온 개념이 있습니다. 50년에 걸친 연구를 집대성했다는 <플래닛 아쿠아>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유일한 개념이 있다면요?
제레미 리프킨 책의 제목이죠. 이 개념은 제가 임의로 지어낸, 단순히 마케팅을 위한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ESA(유럽우주국)와 NASA(미항공우주국)는 이미 지구를 ‘플래닛 아쿠아’로 새로이 명명했어요. 지구를 플래닛 아쿠아로 리브랜딩하는 것이 이 책을 쓴 이유입니다.
하퍼스 바자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비전을 제시합니다. 보다 미시적 관점에서, 우리가 매일 눈을 떠 작게라도 실천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제레미 리프킨 일상생활의 실천에 앞서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물의 행성에 살고 있고,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며, 우리가 각자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사는 것 말이에요. 이 모든 것이 체화되었을 때 새로운 관점의 정책과 교육 시스템이 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ESG나 플라스틱 줄이기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속한 지구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퍼스 바자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되며, 반도체를 주요 산업으로 삼는 한국 사회에는 어떤 역할을 기대하십니까?
제레미 리프킨 불교, 힌두교, 유교 등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 그 자체입니다. ‘일부’가 아니죠. 동양에서도 수권을 길들이기 위해 댐 같은 인프라를 만들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철학은 동양의 문화에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굉장한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서양도 부지런히 뒤따라오고 있습니다. 19세기 유럽에서 생태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했고, 20세기 미국은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 국립공원을 제정했죠. 1960년대에 들어서 미국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쓴 책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필두로 환경주의와 지구의 날 같은 개념이 활발하게 거론되기 시작했고요. 동양과 서양이 언젠가는 같은 지점에서 만나 서로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를 고대하지만 아직까지는 동양과 유럽이 조금 앞서 있다고 봅니다.
하퍼스 바자 현 체제를 비판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날 선 말 뒤엔 언제나 인류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고 계신 건가요?
제레미 리프킨 저는 이 인터뷰를 읽고 있을 청년들에게서 희망적인 시그널을 봅니다. ‘Fridays for Future’라는 운동을 아십니까?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중심으로 1백41개국에서 수백만 명의 청소년들이 환경을 위해 평화적으로 파업(학교 불출석)을 하며 기후 비상사태 선언을 종용하는 운동이에요. 최근 밀라노에서 이 시위에 참여한 고등학생 3명을 만나고서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스스로를 위기종이라고 여기고, 다른 생명체를 동등한 개체로 여기는 최초의 세대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죠. 이건 세계의 역사를 바꿔줄 전환점이나 다름없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인류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어요. 당신들이 이 시대를 보는 관점 자체가 이미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을요. 그러니 방관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하퍼스 바자 눈앞의 생존과 건강한 삶이 위협받을 때에야 비로소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인간에게, 글로 설파하는 주장들이 어떤 변화를 촉구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제레미 리프킨 저는 굳이 쉽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책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겠지요. 궁극적으로 책을 통해 전 세계의 교육 체계까지 변화하는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에요. 그러려면 단순화하는 것보다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니까요. 저는 교수들로부터 다양한 관점을 배우는 학제 간 학습 이외에도, 자연 속에서 임상적인 학습이 이루어지는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방향은 네모난 모니터 화면을 떠나 자연의 품을 더 가까이 하는 것이고요. 20~30분이라도 밖으로 나가자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등산이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는 말을 듣고 아주 반가웠습니다. 1마일(1.6km) 정도만 산책을 해도 몸의 상태가 바뀐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인간의 생체 리듬은 주변 자연환경에 맞춰져서 그렇습니다. 느릿한 자연의 리듬을 따라가면 두려움, 불안 같은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이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은 곧 자연입니다. 자연을 멀리할수록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Credit
- 번역/ 이진명
- 사진/ Getty Image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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