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길 따라 떠나는 군위 여행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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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길 따라 떠나는 군위 여행

짧아서 더욱 아쉬운 봄의 끝자락에서 군위의 봄을 만난다. 영감을 주는 공간과 사유의 길 위에서.

BAZAAR BY BAZAAR 2022.05.10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수목원, 사유원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전망대, 소요헌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전망대, 소요헌

청록숲 사이에서 잠망경처럼 툭 튀어나온 알바로 시자의 전망대 ‘소대’와 마주친다면 사유의 공간에 거의 다다른 것이다. 사방 산등성이로 둘러싸인 깊은 숲에는 흔한 낮은 건물 하나 눈에 띄지 않고 작은 산새들이 새초롬하게 날아다닐 뿐 인공의 소리가 허락되지 않는다. 팔공산, 도봉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 한가운데 있으니 그럴 법하다. 치열한 예약에 성공한 관람객은 지도와 물병, GPS 추적이 가능한 목걸이를 받고 붉은 코르텐강으로 설계한 치허문을 가로지른다. 마치 외부와 차단된 비밀의 정원 같다. 
소요헌 (c) 사유원

소요헌 (c) 사유원

10만 평에 이르는 너른 부지는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이 15년이 넘도록 일구고 있는 수목원, 사유원이다. 승효상, 최욱, 일바로 시자, 박창열 건축가와 카와시기 마츠노부, 정영선 조경가, 석공 윤태중과 조명가 고기영 등이 함께 의기투합했다. 수목을 향한 유 회장의 지극한 마음과 오랜 열정이 낳은 정원과 그 사이에 자연의 일부처럼 툭 놓인 건축은 어느 작은 부분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을 만큼 고유의 풍경으로 아름답다.  
사유원 북쪽에서 만난 사유 공간, 명정

사유원 북쪽에서 만난 사유 공간, 명정

사유원에서 만나는 공간으로 가려면 꼬부랑길, 비나리길, 쉼자리길 등 수목으로 빼곡한 오솔길을 지나야 한다. 구불구불한 오르막길, 주변이 탁 트인 능선길을 걷다 보면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 건축가 승효상의 ‘현암’ 등이 불쑥 나타난다. 이곳에 오래 뿌리내린 건물에는 바람과 소리가 드나들고, 빛이 역동하며, 새가 둥지를 튼다. 고요한 사색의 공간이면서, 매 순간 변하는 생동하는 자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떨어지는 빛을 응시하고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오래 머문다. 
모과나무 108그루가 있는 풍설기천년

모과나무 108그루가 있는 풍설기천년

모과나무 108그루가 있는 ‘풍설기천년’에서는 연신 ‘와’ ‘와~’하는 탄식이 여기저기에서 메아리친다. 유 회장은 한 직원에게서 일본으로 밀반출되는 모과나무 이야기를 듣고 모과나무를 매입하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그가 평생에 걸쳐 모은 모과나무가 있다. 서리가 내리기 전 초겨울이 오면 이곳에 샛노란 모과가 주렁주렁 매달릴 것이다. 

 

사유원의 생태 화장실

사유원의 생태 화장실

드넓은 사유원에 흩어져 있는 생태 화장실 7곳을 경험하는 것도 특별하다. 콘크리트와 코르텐강으로 설계한 현대적 감각의 생태 화장실이 낯설다. 일반 화장실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해결하지 못하고 나오는 사람들도 본다. 최소한의 자연 훼손을 실천하는 용기는 자연을 향한 확고한 태도를 보여준다.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근사하고 멋진 생태 화장실임은 분명하다.  
 
5개의 연못이 있는 명상과 기도의 공간, 오당_와사오당_와사의 내부건축가 승효상의 새를 위한 수도원, 조사
한국정원 ‘유원’, 5개의 연못이 있는 명상과 기도의 공간 오당/와사, 야생동물이 새벽에 물을 마시고 가는 사담, 북쪽 봉우리 끝자락의 사유의 풍경 ‘명정’ 등 총 9개의 건축과 느티나무 정원 ‘한유시경’, 새들의 수도원 ‘조사’ 등의 정원과 전망대를 구석구석 걷다 보면 순식간에 한나절이 사라진다. 다행히 3시간만 주어지던 관람 시간이 5월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로 연장되었다. 모든 곳을 둘러보려 애쓰지 말고 마음을 흔드는 공간 몇 군데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보자. 덜어내고 침묵하는 시간은 영적 마음을 채우고 내면의 풍경 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소요헌 내 카페, 요요빈빈아름다운 사연이 깃든 채플, 내심낙원
입장료 화~금요일 5만 원, 토요일 6만 9,000원. 런치와 디너 포함 11만 원부터.
예약 sayuwon.com 
 

영원하게 우아하게, 군위삼존석굴암

‘제2석굴암’으로만 불려진다면 억울할 것이다. 경주 석굴암보다 1천 년이나 앞선 700년경에 만들어진 것이 말이다. 1920년대에 세상에 알려지면서 ‘두 번째 석굴암’이라 불리게 되었지만, 거대 바위 벼랑에 뚫린 신비로운 석굴 풍광과 빛의 움직임은 독보적 웅장함을 자랑한다. 지상에서 20m 높이의 절벽 석굴 안에는 가부좌한 모습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 관세음보살, 오른쪽 대세지보살이 마치 아미타불을 수호하는 모습으로 서있다. 우리나라 석조불 대부분이 암벽에 새겨져 있는 것과 달리 군위삼존불은 거대 자연 암벽에 구멍을 뚫어 불상을 안치한 독특한 구조다. 
팔공산과 비로봉을 바라보고 있는 삼존불은 해가 서서히 뜨고 질 때 그 모습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시력이 좋으면 높이 2.88m의 아미타불 머리에 있는 무수히 가늘고 얕은 음각의 선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수많은 염원이 빛을 따라 석굴암 삼존불에 닿았을 것이다. 석불교를 건너면 석굴암으로 올라갈 수 있는 인공 다리가 있지만, 문화재 보존을 위해 출입은 금지한 상태다. 흙벽돌을 쌓아 만든 모전석탑 앞에서 삼존불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양면한 자리에 앉아 이루고자 하는 일을 발원하고 절벽 계곡을 따라 올라가 보자. 팔공산 산신각과 용왕단으로 가는 귀여운 산책길이 이어진다.
주소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하늘 아래 높은 동네, 화산마을

곡예처럼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파른 경사가 뒤따른다. 초보운전자라면 일찍이 운전대를 숙련자에게 넘기는 편이 낫다. 방향을 안내하는 작은 안내 푯말을 놓친다면 협소한 길에 마주 오는 차량 앞에서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만큼 공포심을 줄 만큼의 아찔한 경사면이 줄기차게 이어지는 두메산골이다. 조금은(?) 불친절한 안내를 충분히 감내할 만큼 끝내주는 경관이 기다리고 있으니 불만은 금세 사라지게 될 것.
해발 800m 고랭지밭이 펼쳐진 고산마을은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알려지기 전만 해도 관광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깊은 산골 마을이었다. 농경지로 개간한 밭 사이로 오두막 같은 작은 집들이 박혀 있고,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풍차 전망대에 서면 화산마을 전경과 멀리 군위호가 산속에 담긴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마을 산책을 하다가 화산산성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편한 하이킹을 하거나, 산꼭대기 너와집 ‘자연닮은치유농장’에서 하루를 보내자. 군위호를 바라보는 ‘바람이좋은저녁’ 캠핑장에서 야영하는 것도 화산마을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청정한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을 감상하고, 발아래 미끄러지는 끝내주는 운무를 보는 새벽 시간을 놓치지 말자.  
주소 화산마을 경북 군위 고로면 화산길 6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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