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파친코>, 윤여정과 이민호의 만남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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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파친코>, 윤여정과 이민호의 만남

새로운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파친코>는 한일 강제병합의 어두운 발자취를 탐구한다. 한국계 미국인 혹은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제작진과 배우들은 그들 각자의 역사와 직면하고 맞서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에 투신했다.

BAZAAR BY BAZAAR 2022.03.12
 
(왼쪽부터) 윤여정이 입은 케이프, 재킷, 스커트는 모두 Chanel. 전유나가 입은 재킷, 셔츠는 Bonpoint. 진하가 입은 재킷, 셔츠는 Fendi. 이민호가 입은 재킷, 셔츠, 팬츠는 모두 Louis Vuitton. 김민하가 입은 코트는 Rosetta Getty. 블라우스는 Adam Lippes.

(왼쪽부터) 윤여정이 입은 케이프, 재킷, 스커트는 모두 Chanel. 전유나가 입은 재킷, 셔츠는 Bonpoint. 진하가 입은 재킷, 셔츠는 Fendi. 이민호가 입은 재킷, 셔츠, 팬츠는 모두 Louis Vuitton. 김민하가 입은 코트는 Rosetta Getty. 블라우스는 Adam Lippes.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는 80년이 넘는, 4대에 걸친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가장인 순자는 1910년대 부산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로 이주한다. 이들 가족은 차별과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재일동포, 자이니치다. 순자네 가족이 운영하는 오락실 도박 게임의 이름에서 제목을 따온 소설 〈파친코〉는 2017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톱 10에 이름을 올렸고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이기도 했다. 영화 제작자 수 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한국계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것을 한동안 망설였다. “여러분 중 일부는 이 책을 펼치는 것이 두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엔 지난 1백 년 동안 집단이 경험한 고통과 세대 간의 트라우마가 담겨 있거든요”. 런던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그는 마침내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소설 도입부에 순자의 어머니 양진이 쌀장수에게 쌀을 팔아달라고 구걸하는 장면이 나온다. 순자의 결혼식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딸 순자에게 흰 쌀밥을 먹이고 싶었다. 상인은 망설인다. 일제 강점기 한국에서 흰 쌀은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다. 상인은 고민 끝에 결국 양진에게 쌀을 조금 팔았다.
 
“비행기에서 그 장면을 읽다가 울부짖고 싶더라고요. 슬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이었어요. 1930년대를 살아보진 않았지만 양진이 쌀장수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마치 제가 뼛속까지 그 일을 체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 순간, 휴는 자신이 이 소설을 영상화할 것이라 직감했다. 올봄 윤여정, 이민호, 진하, 김민하가 출연하는 8부작 드라마 〈파친코〉가 애플 TV+에서 공개된다. 휴는 공동 각본 외에도 감독 저스틴 천, 코고나다와 함께 총괄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3개의 언어로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의문의 여지가 없었어요. 언어가 식민지화의 일부이기 때문이죠. 언어를 제외하고 식민지에 대한이야기할 수는 없을 거예요. 우리는 3개 국어를 하지 않고는 결코 이 이야기가 나아갈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제작자 수 휴
 
재킷, 셔츠는 FENDI. 스커트는 SACAI. 슈즈는 GUCCI.

재킷, 셔츠는 FENDI. 스커트는 SACAI. 슈즈는 GUCCI.

이 책은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파친코〉를 읽기 전에 일제 강점기 한국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된 건 위키피디아를 통해서였다. 학교에서는 그런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다. 가족들이 술을 몇 잔 마신 뒤 은근히 일본을 헐뜯는 발언을 하거나 ‘라멘’이 아니라 ‘라면’이고 ‘노리’가 아니라 ‘김’이라고 강조했던 일화에서 약간의 암시를 느꼈을 뿐이었다. 일제 치하의 현실을 묘사한 이 책은 나의 조부모와 증조부모의 삶이 어땠을지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해 한국어 번역본을 구매했고 비로소 어머니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파친코〉는 그 시대가 오늘날까지 어떻게 많은 한인들을 ‘괴롭히고’ 있는지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
 
〈파친코〉는 픽션이지만 깊이 있는 연구와 조사가 담겨 있다. 이민진 작가는 수십 명의 재일동포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자신이 그들의 경험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작가는 “재일 교포는 역사의 피해자이지만 실제로 그분들을 만나면 그들 중 누구도 단순히 그 한 단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삶을 사셨다. 훨씬 더 복잡하다.”라고 서문에 썼다. 그리고 휴는 더 늦기 전에 재일교포 여성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서 정확한 역사를 듣고 싶었거든요. 그들의 나이는 이제 90세에서 많게는 104세입니다. 구술로 그분들의 증언을 받았어요. 그들도 이 드라마의 일부입니다.” 
 
전유나가 입은 원피스는 Bonpoint. 이민호가 입은 수트, 셔츠는 Louis Vuitton. 슈즈는 Jimmy Choo.

전유나가 입은 원피스는 Bonpoint. 이민호가 입은 수트, 셔츠는 Louis Vuitton. 슈즈는 Jimmy Choo.

이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가 ‘정’이다. 한국인들 사이의 친족감,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는 안정감,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곳에서도 서로를 보살핀다는 이해심. 도서관 카페든 대도시 식료품점이든 오사카 파친코 업소든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고국을 떠난 한국인들은 서로를 찾는다.  
 
역사적 정확성을 추구하는 노력은 출연진의 연기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배우 진하는 이 드라마에서 일본에서 자란 한국 남자 백솔로몬 역을 연기했다. 그는 이 드라마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영어로 쓰여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내내 일본어와 한국어로 말한다. 그는 “만약 영어권 관객에게 익숙한 방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면, 영어와 외국어를 구분하기 위해 우리는 극 중에서 모호한 악센트가 있는 영어로 연기했을 거예요. 그러면 저도 근사한 장면을 찍을 수 있었겠죠.” 그러나 이 작품은 언어학적으로 정확한 연출이 중요했다. “제가 과연 이 작품을 해낼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어요.” 오디션을 보기 전, 진하는 일본어를 하는 아버지에게 대사를 보냈다. 이걸 소리 내서 읽고 녹음해달라는 거였다. 그의 아버지는 녹음본과 함께 한글로 발음을 적어 보내주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번역해준 한글을 제가 다시 영어로 변환하는 방법으로 연습했어요.” 진하는 그 방법을 이용해 셀프테이프를 만들었고 결국 배역을 따냈다. 캐스팅이 확정되고 난 뒤 본격적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일본어로 설득력 있게 연기하는 법을 연습했고 심지어 여러 상황에서 쓰이는 현실 방언도 배웠다. “휴가 저에게 ‘실제와 더 비슷하게 해볼 수 있을까?’라고 질문할 때마다 저는 항상 ‘Yes’라고 대답했어요. 제가 이 유서 깊은 공동체를 잘 대표하려면 정확하고 진실되게 최선을 다해 표현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연기는, 특히 이 작품이 미국 제작사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혁신적으로 느껴진다. 휴는 이렇게 말했다. “3개의 언어로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의문의 여지가 없었어요. 언어가 식민지화의 일부이기 때문이죠. 언어를 제외하고 식민지에 대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거예요. 저는 3개 국어를 하지 않고는 결코 이 이야기가 나아갈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김민하가 입은 원피스는 Bottega Veneta. 윤여정이 입은 재킷, 스커트는 Chanel. 슈즈는 Sportmax.

김민하가 입은 원피스는 Bottega Veneta. 윤여정이 입은 재킷, 스커트는 Chanel. 슈즈는 Sportmax.

여러분 중 일부는 이 책을 펼치는 것이 두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엔 지난 1백 년 동안 집단이 경험한 고통과 세대 간의 트라우마가 담겨 있거든요.- 제작자 수 휴
 
이 작품에는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 출연진이 섞여 있다. 2009년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이민호는 일본의 범죄 조직 야쿠자와 연관된 수산업자 고한수를 연기한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오디션을 본 적이 없지만, 이 대본이 한국의 최근 역사를 되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에 끌렸다고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많은 시간을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보낸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과거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죠.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역사인 거죠.”




어린 순자 역을 맡은 전유나는 연기를 통해 자신의 증조할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연기를 하면서 할머니가 겪었던 고통과 어려움을 체감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너무 참담해서 울 수밖에 없었죠.” 역사를 알게 된 그녀는 일본군의 만행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어머니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10대 순자 역을 맡은 김민하 역시 역할을 준비하며 그녀의 할머니가 해준 말들을 참고했다. “그런 시대에 소녀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저에게 설명해주셨어요.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결코 제 캐릭터를 찾을 수 없었을 거예요.”
 
영화 〈미나리〉에서의 연기로 지난해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은 나이 든 순자 역을 맡았다. 그는 심지어 한국인들도 이 드라마를 통해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나 자신조차도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얼마나 고통받았는지에 대해 새롭게 배웠어요.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그들을 기리고 싶어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딱 공감 가는 장면이 있었다. 솔로몬은 미국의 투자자를 연기한다. 극중에서 그는 자신의 승진을 위해서, 중년의 한국 여성이 그녀가 가진 도쿄의 땅을 팔도록 설득해야 했다. 자신도 한국계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나 역시 한국인들의 이 ‘감정’에 대해 알고 있다. 특히 고국을 떠난 한국인들의 놀라운 이해심에 대해서. 나는 농경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조지아 대학을 다녔다. 1학년 가을, 도서관 카페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한 무리의 한국 학생들이 몇 개의 테이블을 붙이고 한국 음식들을 차리기 시작했다. 김치와 콩나물, 절인 야채와 고구마, 불고기, 잡채, 파전 그리고 쌀밥. 나는 그들이 그것을 나눠 먹는 것을 보면서 군침을 삼켰다. 한식을 먹어본 지 몇 달이 지난 때였다. 그 작은 마을에는 한국 식당도 한인 마트도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건 마요네즈와 겨자 소스를 섞은 ‘옐로 소스’와 안주를 파는 테이크아웃 ‘일식’ 식당이었다. 나는 그 작은 마을에서 ‘집밥’과 단절된 채 굶주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한국의 명절 ‘추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리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실례지만, 그건 어디서 났나요?” 그들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한국인이고 한국 음식을 먹어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요.” 내가 혼혈이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은 내가 정체성을 설명할 때까지 바로 알아보지 못한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들은 음식을 담을 접시를 건네주었다.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는 물론 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목록까지 받고서 나는 전보다 조금 덜 혼자가 된 기분을 안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이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정’이다. 한국인 사이의 친족감, 우리는 함께하고 있다는 안정감,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곳에서도 서로를 보살핀다는 이해심. 도서관 카페든 대도시 식료품점이든 오사카 파친코 업소든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고국을 떠난 한국인들은 서로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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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사진/ Shayne Laverdiere
    글/ Alex Sujong Laughlin
    헤어/ Christopher Deagle(Sisley Paris)
    메이크업/ Maria Walton(Ilia Beauty)
    스타일리스트/ Nariman Janghorban
    프로덕션/ Sophie Meyer
    번역/ 백세리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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