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장국영'을 쓴 '성덕'을 만났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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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장국영'을 쓴 '성덕'을 만났다

그 시절 어떤 날은 장국영과 함께여서 더 찬란했다. 장국영이 좋아서 중문학 교수가 된 오유정이 그리움이 짙게 밴 조각기억 모음 <아무튼, 장국영>을 펴냈다.

BAZAAR BY BAZAAR 2021.06.08
 매번 주제와 저자가 바뀌는 〈아무튼, OO〉 에세이 시리즈의 41번째 작가다. 어떤 계기로 책을 쓰게 됐나?  
작년 4월 초 방산시장의 ‘그래서’라는 서점에 갔을 때다. 거기서 ‘아무튼’ 시리즈를 처음 펴보았는데, 동행한 친구에게 “장국영에 대해 써볼까?”라고 말한 게 집필의 시발점이 됐다. 그날 이후 코난북스의 이메일 계정으로 책을 쓰고 싶다는 내용을 보냈다. 사실 나는 장국영의 20주기인 내후년에 책이 나왔으면 하고 바랐다. 한데 출판사 대표님이 “그땐 ‘아무튼’ 시리즈가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면서 집필을 부추기더라.  
 
‘본캐’는 가톨릭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이다. 학생들은 책 출간 소식을 알고 있나?  
직접 알린 적은 없다. 농담조로 그 이유를 말하자면 학생들에게 나름 엄한 편이라. (웃음) 사실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다. 불안정한 현 상황과 활동의 제약으로 인해 학생들이 고민이 많은데, 그들에게 이런 내가 너무 순진하고 희망찬 모습으로 비춰질까 봐. 한데 언젠가는 소식을 접하겠지.
 
책을 보면 종종 학생들에게 장국영의 노래가사로 중국어를 가르치거나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여주던데.  
장국영의 팬이라는 사실을 티내고 싶어서는 아니다. 학생들이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중화권 문화에 관심을 갖고, 그러면서 보다 재미있게 공부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학창 시절에 장국영의 팬이 되면서 자연스레 중국어에 흥미를 붙인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학생들에게 오우삼 감독의 〈종횡사해〉를 보여주었다. 그 시절의 홍콩 영화는 〈영웅본색〉으로 대표되는 홍콩 누아르의 오우삼, 〈아비정전〉 〈화양연화〉 등에서 화려한 미장센과 은유를 선보인 왕가위, 〈황비홍〉 시리즈와 같은 전통무협액션의 서극 감독으로 설명되지 않던가. 그 중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가볍게 볼 수 있고 웃음이 많고 장난기가 가득한 장국영이 등장하는 점을 고려해 〈종횡사해〉를 골랐다.
 
책을 쓰기 위해 긴 역사를 돌이켜보며 울컥할 때가 많았겠다.  
매일 울었다. 그래서인지 글을 읽은 어떤 친구는 글에 물기가 어려 있다고 하더라. 어떤 점에서는 유난스러웠고 어떨 때는 과하게 순진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특히 그렇다. 사인회나 공항, 여하간 장국영이 등장하는 어느 곳이든 쫓아다니던 시절을 회상하자니 애틋하고 애잔한 마음이 들더라. 책을 쓰고 나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쯤 흘렀을 때 그에게 쓴 편지도 찾았다. 그걸 읽을 때 또 울컥했다. 거기에 ‘뚜이부치(미안해)’라는 말만 백 번 정도 쓰여 있더라. 책에 쓴 대로 열심히 사느라, 그리고 다른 재미있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그에게서 조금 소홀해진 것이 미안했었나 보다. 그런 사이에 그는 떠나버렸으니까.  
 
장국영의 단골 딤섬집을 비롯해 그의 추억이 묻은 장소를 찾아다닌 이야기들도 애틋하더라.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나?  
홍콩 바다와 와이탄 강변에서 야경을 보고 싶다. 과거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는 지난 세월의 흔적들을 그리느니 늘 그대로인 바다가 좋겠다. 장국영이 종종 들러 책을 보고 사진집 촬영도 했던 ‘한원서점’에도 다시 가보고 싶다. 그도 나처럼 그곳의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했을 것 같다. 한데 가게가 없어져버렸다. 당시의 주인이 다른 곳에서 운영 중인 카페로 장국영 관련 자료 중 일부를 옮겼다는 얘기는 들었다. 어쨌거나 많은 곳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곳을 찾아가고 싶은 욕심은 없다. 공간 자체의 의미를 잊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장국영이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음… 그는 ‘어나더 월드’에 있는 사람, 한마디로 우상이었다. “이 사람하고 결혼할래!” 이런 로맨스적 판타지를 배경에 둔 적은 없다. 한데 고등학교 때 쓴 소설에 내가 그의 부인으로 등장하긴 한다.(웃음)
 
나름의 ‘성덕’으로서 자랑거리를 꼽자면? 
교수라는 직업이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 사람 하나만 보고 열심히 살았더니 이런 성과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 장국영한테 두 번이나 사인 받았어. 장국영이 내가 접은 종이 백합 꽃다발도 들고 다녔다니까?” 이런 스토리보다 그의 연기를 보고, 노래를 듣고, 그의 통역사가 되겠다며 중국어를 공부한 내가 더 자랑스럽다. 나와 그의 주변 사람들이 본 그는 남에게 관대했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했고, 자존감이 높았다. 평화주의자에 일을 잘할 때 희열을 느꼈고. 나는 그런 태도를 사랑했고 닮으려고 애썼다. 그가 떠난 뒤 새로이 배운 삶의 태도도 있다. “곁에 있을 때 잘하자.” 그래서 주변인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만약 장국영의 시간이 멈추지 않았다면 당신과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어떻게든 한 번은 장국영의 통역사로 일했을 것 같다. 어떤 방법이든 총동원해서, 심지어 그를 직접 찾아가서라도.(웃음) 그런 다음에는…. 지금처럼 중국과 관련한 어떤 일을 했겠지. 덕질을 열정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만 현재로선 흥미가 전혀 없는 SNS 활동을 했겠지. 그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야 하니까. 그는 바라던 대로 영화감독이 되었을 거다. 종종 객관적으로 이상한 영화를 만들어서 악평을 모을 테고, 또 어떤 날에는 좋은 노래로 상을 받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미련이 샘솟는다. 그저 평범하게, 각자의 삶을 잘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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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글/ 김수정(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코난북스(표지),ⓒ오유정
    웹디자이너/ 한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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