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을 좋아하세요?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장국영을 좋아하세요?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때에도, 영화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BAZAAR BY BAZAAR 2020.12.11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때에도, 영화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어쩌면 장국영이 그 답을 알려주었는지도 모른다.
 
 

장국영을 좋아하세요?

 
장국영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비정전〉 중에서.

장국영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비정전〉 중에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묻고 싶다. 당신은 장국영을 좋아하는가? 영화라는 것을 좋아하게 된 이후에 장국영을 만난 내 입장에서, 이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장국영 그 자체인지, 아니면 그가 출연한 영화인지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장국영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장국영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란 사실이다. 많은 이들에게 장국영은 그런 존재다. 장국영으로 인해 영화에 깊게 빠져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장국영으로 인해 홍콩을 사랑하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장국영을 좋아하냐는 질문이 유효한 것은, 바이러스가 많은 것을 무효화시키고 있는 2020년에도 장국영이 어딘가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장국영의 매직이 펼쳐진 그곳은 바로 부산이다. 지난 10월 21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부산국제영화제는 팬데믹 사태에 대응하여 규모를 대폭 축소하였다. 먼저 영화제의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개·폐막식을 비롯한 야외 무대인사 행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각종 토크 프로그램을 전부 취소했다. 국내외 유명 감독과 스타 배우들을 한자리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영화제의 가장 큰 메리트를 포기한 것이다. 대신 부산이 집중한 것은 영화제(film festival)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film) 상영 그 자체이다. 물론 방역을 위하여 상영관은 기존 서른여 개에서 여섯 개 관으로, 영화 편수는 약 3백 편에서 1백92편으로 줄었다.(영화관 내 거리두기를 위해 유효 좌석 중 25%의 자리만이 허락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한 영화 당 오직 1회만 상영한다는 원칙은 영화제 참여자들에게 극한의 선택을 요구하게 하였는데, 그 상영작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두 편의 ‘옛날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장국영이 주연을 맡은 〈아비정전〉(1990)과 〈창왕〉(2000)이다.
 
‘장국영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주제로 프로그래밍된 두 편의 영화는, 장르가 다를 뿐만 아니라 장국영이 맡은 캐릭터의 성격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 영화다. 먼저 〈아비정전〉은 왕가위 감독의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영화 애호가들의 인생 영화 리스트에 숱하게 꼽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장국영은 이 영화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하는 남자 ‘아비’로 분하여, ‘가수 출신 배우’ 혹은 ‘얼굴만 잘생긴 배우’라는 이미지를 넘어 연기파 배우로 평가받게 된다. 말 그대로 ‘인생 캐릭터’를 만나게 된 이 영화에서 그는 때로는 흰 러닝셔츠 차림으로 맘보춤을 추며, 때로는 자신의 시계를 1분 동안만 같이 보자는 멘트를 날리며 관객을 유혹한다.
 
이전까지 국내에서 상영된 적 없는 장국영의 미공개작 〈창왕〉의 한 장면.

이전까지 국내에서 상영된 적 없는 장국영의 미공개작 〈창왕〉의 한 장면.

 
반면 국내에서 단 한 번도 상영된 적이 없는 나지량 감독의 〈창왕〉은 누군가를 유혹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영화이다. 대신 볼 수 있는 것은 ‘살인의 즐거움’에 유혹당해버린 한 명의 총잡이다. 〈해피 투게더〉(1997)를 끝으로 자신의 연기 인생의 클라이맥스라고도 할 수 있는 시기를 만들어준 왕가위 감독과 작별한 장국영은, 다소 고착화되어가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고민을 하던 시기에 한 살인마 캐릭터를 만나게 된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살인마가 되어버린 한 인물을, 장국영은 선악의 판단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그만의 연기로 관객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며 또 한 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
 
이 두 편의 영화를 이어주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장국영의 얼굴이다. 한 번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얼굴. 그것이 바람둥이든 살인마든. 범죄자 형을 둔 경찰이든(〈영웅본색〉) 귀신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든(〈천녀유혼〉) 역사에 휩쓸리는 경극 배우든(〈패왕별희〉). 우리에게 그가 연기한 인물들과 출연했던 영화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던 장국영. 〈창왕〉의 한 장면에서 장국영은 영화가 한창 상영되고 있는 영화관에 숨어드는데, 그가 스크린을 가리고 서자 영화 속 관객들이 장국영을 향해 비키라며 소리를 지른다.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그 어떤 배우보다 특별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그(장국영)를 관객이 알아보지 못하는 이 장면은 그 어떤 장면보다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 같아 슬프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걸어 나오는데 아직 영화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나도 참 좋았다며 끼어들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만 먹었다면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그것이 영화제니까. 지금 이 시기에도 불구하고, 장국영을 보러 이곳에 왔으니까. 그러므로 필요한건 딱 한마디였을 것이다. “장국영을 좋아하세요?”
 
 
※ 올해 상영 예정이었던 장국영이 직접 연출한 〈연비연멸〉은 저작권 문제로 아쉽게 상영이 무산되었다. 다음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함께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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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글/ 김철홍(영화평론가)
    사진/ 2020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웹디자이너/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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