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나의 관종력은 얼마나 될까? 관종 체크리스트!

나는 왜 관종이 될 수 없을까

BYBAZAAR2021.01.29
나도 인기 얻고 싶고 나도 사랑 받고 싶다. 근데 왜 안될까? 그 소름 끼치는 이유에 대해 최대한 냉철하게, 최대한 이성적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여다봤다.
 
대단한 사실 하나를 먼저 발표하려고 한다. 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겨우 340명, 트위터 팔로워는 초라한 33명이다(아무나 다 팔로해주는 청와대와 국회의원 3명을 빼면, 정확한 팔로워 수는 29명이 맞겠다). 누가 봐도 이 시대에 적응한 사람의 sns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시대에 온 몸으로 저항하고 sns를 경멸하며 관종 인간들을 개탄하는, 안티 디지털 인간인가 싶을 거다. 미안하지만, 아니다. 나는 sns에 중독돼 있으며, 이 시대에 저항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디지털 디톡스 같은 건, 감옥에나 갇혀야 가능한 초현실적인 얘기로 들린다. 휴대폰 사용을 거부하고 sns 계정을 만들지 않은 〈뽀빠이〉 전 편집장 타카히로 키노시타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의 작가 프랜 리보위츠처럼 대단한 철학이나 고집이라도 있으면 멋있기라도 할텐데….. 그런 것도 아니다. 내 근원적 고통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난 내가 세상의 관심 따위 필요 없는 고고한 작가 성향의 인간인 줄 알았다. 마크 주커버그와 케빈 시스트롬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개발하기 전까진 말이다. 그 인간들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관심과 주목을 받고 싶은 공짜 심보가 내 안에서 점점 커지며 괴물을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았다. 현대판 철학자나 심리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들은 인간 본성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파악했다. ‘(사실은) 누구나 관심 받고 싶어한다’는 것. 그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내 본성인지,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교묘한 sns의 등장으로 갑자기 생겨난 것인지, 내가 디지털 세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관종의 인기와 명예를 보며 배가 아파 갑자기 증폭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그 관종의 선두 대열에 나갈 수가 없다는 거다.
 
놀랍게도, 난 대부분의 시간을 인스타그램에 올릴까 트위터에 올릴까, 아니 올릴까 올리지 말까를 고민하는데 쓴다. 관종의 시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써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해보니, 그게 어마어마하게 귀찮은 일이라는 걸 알았다. ‘노력의 대가’, ‘성공의 조건’, ‘계급의 파괴’’라며 관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대는 건 미덕이 아니’라는 유교 사상의 찌꺼기 때문에 부끄럽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난 내 경험, 내 의견, 내 인맥, 내 지식, 내 감성(만약 그런 게 있다면 말이다)을 공유하고 싶은 걸까, 자랑하고 싶은 걸까? 소심한 사람의 주요 특징인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아니 사실은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일’에 대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도 관종의 시대에 발맞춰 가지 못하게 내 발목을 잡았다. 레스토랑의 센스 없는 음악 취향, 연예인의 시대착오적 발언, 브랜드의 비도덕적 마케팅 방법 등등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엄청나게 신랄한 나는 디지털 세계에만 들어오면 쥐 죽은 듯이 얌전해지고 조용해진다.  
 
누가 이 의견을 보고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사랑 받고 싶은 나의 속마음을 들키면 어떡하지? 내가 잘난 체한다고 생각할까? 내 취향이 구리다고 생각할까? 해시태그를 달면서도 내 내면의 가장 깊숙한 마음까진 들키지 않았으면 했다. 정치, 사회적 발언을 하면서도 내 멘션이 리트윗돼 시끄러워지진 않길 바랬다. 게다가 sns의 가장 놀라운 기능 중 하나는, 아무리 쭈글쭈글한 마음을 내비쳐도 사랑 받고 싶은 관종으로 보이게 한다는 거다. 심지어 나는 친구들과 힙한 레스토랑을 다녀온 후 게시물을 올리려다가도 지난번에 여기 오자고 했던 친구가 삐치면 어떡하지? 같은 고민도 한다(쓰고 보니 너무 한심해서 봐줄 수가 없다). 이런 바보 같은 생각에 한번 사로잡히다 보면 너무 지쳐서 ‘다 됐고 넷플릭스나 보자’의 마음이 된다. 그리고 튼 영상 속에서 코미디언 아지즈 안사리는 말한다. 
 
아무 소식도 못 듣고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요. 그래서 ‘바쁜가?’ 했는데 커피 사진 올린 걸 보죠. ‘대체 뭐 하는 거야?’
 
 역시, 안 올리길 잘했어.
〈스타워즈〉의 제다이처럼 관종은 되고 싶다고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노력과 근성과 부지런함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 유명세에 따라오는 온갖 공격을 감내할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다. 문제는 이게 운전면허 시험처럼 특별한 테스트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어서 끄덕하면 ‘언제든 나도 될 수 있을까?’라는 헛된 꿈과 희망을 꾸게 된다는 거다. 직장인의 2대 꿈이 유튜버와 틱톡커라는 말에 웃지만은 못하는데다가. 시대가 이렇게 바뀌었는데 여전히 이런 소극적인 태도로 살아도 괜찮을까, 대단한 인기와 명예는 못 누리더라도 이렇게 나를 드러내지 않은 채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관심은 화폐라는데 그럼 난 빈털터리에 가까운 걸까, 라는 불안한 마음도 든다. 나에게도 미약하나마 어떤 좋은 점이 있을 텐데, 내가 가진 장점마저 고리타분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최악은, 삐뚤어진 마음이다. 유명해져 인기와 커리어를 잘 쌓아가는 사람을 보면 우울해지고, 나도 모르게 그들을 자꾸 깎아내리려 한다는 거다. 허영과 분노가 같은 원인에서 출발한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엄청난 내적 갈등과 고통스러운 혼돈의 과정을 거친 후, 궁색하게 결론을 내리긴 내려봤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봐달라고 외치는 이 시대에서 누군가는 봐주고 들어줘야 하진 않을까? 세상 모든 사람이 유명인이 될 순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인터뷰이가 될 순 없는 것처럼 말이다. 즐겁고 원만한 대화 자리를 떠올려보면, 언제나 좋은 인터뷰어가 있었다. 누군가 그림자 같은 인터뷰어 역할을 한다면 사회는 더 잘 돌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눈에 띄지 않는 일을 하고 싶을 테고, 누군가는 차분한 상태로 삶을 유지하고 싶을 거다. 1명의 관종 뒤에는 수십 명의 조용한 일꾼이 있다. 성공한 관종이 될 수 없다는 자각을 한 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서 구글의 디자인 윤리학자로 일했던 트리스탄 해리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괜히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우린 5분마다 한 번씩 사회적 인정을 받도록 진화하지 않았어요. 우린 그런 걸 감당할 수 없다고요. 
 
인류는 관심과 함께 진화하고 있는 걸까, 후퇴하고 있는 걸까? 관종의 시대에 피로를 느낀 나머지, 모두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절대적인 무관심 시대가 오는 건 아닐까?
얼마 전 친구가 카톡으로 이런 질문을 해왔다. “나대는 인싸 vs. 안 나대는 아싸 중 하나를 선택하시오.” 친구는 ‘노력하지 않는, 수줍은 인싸’가 되고 싶다고 했고, 난 ‘느낌 있는 아싸’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린 동의했다. 둘 다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남의 시선과 인정을 이렇게까지 갈구한 적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말인데, 이 글 역시 적당히 공감은 얻으면서, 대단한 화제는 안됐으면 좋겠다.  

 
 

관종이 되고 싶으나 사실은 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체크 리스트

A. 괜찮은 음식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면 의자에서 일어나 서서, 식탁 위를 탑뷰(top view)로 찍을 수 있다.
B. 같이 간 일행이 저렇게 행동한다면 좀 창피할 것 같다.
 
A. 사람이 아무리 많은 곳이라도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면 30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다.
B. 사람이 많은 곳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A. 10만 구독자만 보장된다면, 유튜브 컨텐츠를 몇 시간 동안 찍고 밤새 편집해서 올릴 수 있다.
B. 졸린 눈 비비며 유튜브를 편집하느니, 유튜브에서 ‘몇 년간 이별한 적도 없는데 이별 감성 촉촉하게 채워주는 멜랑콜리 플레이리스트’나 듣는 게 낫다.
 
A. 1년간 운동해서 멋진 복근을 만들었다. 사진을 올려 자랑한다.  
B. sns에 올리면 사람들이 관종이라고 할 것 같으니, 아쉽지만 혼자 간직한다.
 
A.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는 브랜드인데 내 sns에 물건 사진을 올려주면 비용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바로 올려준다.
B. 사람들이 나를 속물로 보면 어쩌지 싶어, 쉽게 결정하지 못하겠다.
 
A. 지금 사람들이 sns에서 가장 많이 하는 얘기에는 나도 한 마디 보태야 직성이 풀린다.
B. 모두가 관심 갖는 문제라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공개적인 언급은 피하고 싶다.
 
A. 이 글을 읽으면서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나보다 작다는 사실에 놀랐다.  
B. 이 글을 읽으면서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나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A.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B. 모르는 사람에게 공격 당하느니 사람 없는 암자에 조용히 파묻혀 지내는 게 낫다.
 
결론: B가 더 많이 나왔다면, 당신이 인기 유튜버나 틱톡커가 되는 건 다음 생에나 가능할 듯하다. 모든 항목에 B가 나왔다면, 관종 되긴 글렀으니 그냥 마음 편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