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사실 하나를 먼저 발표하려고 한다. 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겨우 340명, 트위터 팔로워는 초라한 33명이다(아무나 다 팔로해주는 청와대와 국회의원 3명을 빼면, 정확한 팔로워 수는 29명이 맞겠다). 누가 봐도 이 시대에 적응한 사람의 sns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시대에 온 몸으로 저항하고 sns를 경멸하며 관종 인간들을 개탄하는, 안티 디지털 인간인가 싶을 거다. 미안하지만, 아니다. 나는 sns에 중독돼 있으며, 이 시대에 저항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디지털 디톡스 같은 건, 감옥에나 갇혀야 가능한 초현실적인 얘기로 들린다. 휴대폰 사용을 거부하고 sns 계정을 만들지 않은 〈뽀빠이〉 전 편집장 타카히로 키노시타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의 작가 프랜 리보위츠처럼 대단한 철학이나 고집이라도 있으면 멋있기라도 할텐데….. 그런 것도 아니다. 내 근원적 고통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역시, 안 올리길 잘했어.
〈스타워즈〉의 제다이처럼 관종은 되고 싶다고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노력과 근성과 부지런함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 유명세에 따라오는 온갖 공격을 감내할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다. 문제는 이게 운전면허 시험처럼 특별한 테스트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어서 끄덕하면 ‘언제든 나도 될 수 있을까?’라는 헛된 꿈과 희망을 꾸게 된다는 거다. 직장인의 2대 꿈이 유튜버와 틱톡커라는 말에 웃지만은 못하는데다가. 시대가 이렇게 바뀌었는데 여전히 이런 소극적인 태도로 살아도 괜찮을까, 대단한 인기와 명예는 못 누리더라도 이렇게 나를 드러내지 않은 채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관심은 화폐라는데 그럼 난 빈털터리에 가까운 걸까, 라는 불안한 마음도 든다. 나에게도 미약하나마 어떤 좋은 점이 있을 텐데, 내가 가진 장점마저 고리타분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최악은, 삐뚤어진 마음이다. 유명해져 인기와 커리어를 잘 쌓아가는 사람을 보면 우울해지고, 나도 모르게 그들을 자꾸 깎아내리려 한다는 거다. 허영과 분노가 같은 원인에서 출발한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인류는 관심과 함께 진화하고 있는 걸까, 후퇴하고 있는 걸까? 관종의 시대에 피로를 느낀 나머지, 모두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절대적인 무관심 시대가 오는 건 아닐까?
얼마 전 친구가 카톡으로 이런 질문을 해왔다. “나대는 인싸 vs. 안 나대는 아싸 중 하나를 선택하시오.” 친구는 ‘노력하지 않는, 수줍은 인싸’가 되고 싶다고 했고, 난 ‘느낌 있는 아싸’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린 동의했다. 둘 다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남의 시선과 인정을 이렇게까지 갈구한 적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말인데, 이 글 역시 적당히 공감은 얻으면서, 대단한 화제는 안됐으면 좋겠다.
관종이 되고 싶으나 사실은 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체크 리스트
」B. 같이 간 일행이 저렇게 행동한다면 좀 창피할 것 같다.
A. 사람이 아무리 많은 곳이라도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면 30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다.
B. 사람이 많은 곳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A. 10만 구독자만 보장된다면, 유튜브 컨텐츠를 몇 시간 동안 찍고 밤새 편집해서 올릴 수 있다.
B. 졸린 눈 비비며 유튜브를 편집하느니, 유튜브에서 ‘몇 년간 이별한 적도 없는데 이별 감성 촉촉하게 채워주는 멜랑콜리 플레이리스트’나 듣는 게 낫다.
A. 1년간 운동해서 멋진 복근을 만들었다. 사진을 올려 자랑한다.
B. sns에 올리면 사람들이 관종이라고 할 것 같으니, 아쉽지만 혼자 간직한다.
A.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는 브랜드인데 내 sns에 물건 사진을 올려주면 비용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바로 올려준다.
B. 사람들이 나를 속물로 보면 어쩌지 싶어, 쉽게 결정하지 못하겠다.
A. 지금 사람들이 sns에서 가장 많이 하는 얘기에는 나도 한 마디 보태야 직성이 풀린다.
B. 모두가 관심 갖는 문제라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공개적인 언급은 피하고 싶다.
A. 이 글을 읽으면서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나보다 작다는 사실에 놀랐다.
B. 이 글을 읽으면서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나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A.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B. 모르는 사람에게 공격 당하느니 사람 없는 암자에 조용히 파묻혀 지내는 게 낫다.
결론: B가 더 많이 나왔다면, 당신이 인기 유튜버나 틱톡커가 되는 건 다음 생에나 가능할 듯하다. 모든 항목에 B가 나왔다면, 관종 되긴 글렀으니 그냥 마음 편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