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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나일강의 죽음'이 영화로 나온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중 가장 관능적이라고 평가받는 <나일강의 죽음>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오리엔탈 특급 살인>의 감독이자 에르퀼 푸아로로 열연했던 케네스 브래너가 이번에도 연기와 연출 두 가지 영역에서 재능을 뽐냈다. 한국에서 영국으로. 푸아로 탐정과 나눈 한밤의 전화 인터뷰.

BYBAZAAR2020.10.21
 
 
1978년작 〈나일강의 죽음〉과 비교하자면 이번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요? 원작에서 얻은 영감으로 새로운 캐릭터들을 등장시켰어요.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나왔던 부크가 이번에도 나옵니다. 역시 톰 베이트먼이 맡았고요. 푸아로의 조수이자 조력자로서 가슴 아프면서도 치명적인 플롯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네트 베닝이 맡은 마담 부크도 등장해요. 그리고 용의자의 숫자를 원작보다 줄였어요. 용의자 숫자가 적어야 캐릭터들의 비중이 늘어 관객에게 좀 더 깊이 보여질 수 있으니까요. 음악적으로도 새로움을 추구했는데요. 소피 오코네도가 맡은 살로메가 부르는 시스터 로제타 사프의 노래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아주 강렬하고 대담한 사운드를 영화 한가운데에 넣어서 70년대 버전과는 다른 느낌을 표현했어요.
올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첫 작품 출간 100년을 맞이하는 해죠. 그녀의 작품이 이렇게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익숙하면서도 쉽게 감정이 이입되는 인간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나일강의 죽음〉 같은 경우는 삼각관계 이야기인데, 애거서 크리스티가 개인적으로 겪은 고통과도 관계가 있는 듯하고요. 그녀의 첫 번째 결혼이 고통스럽게 끝났죠.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 갑자기 배신하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그런 비극적인 사랑은 인간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이 영화에는 주인공들 말고도 관객들이 쉽게 감정을 이입할 만한 캐릭터들이 나와요. 이를테면 갤 가돗이 연기한 리넷의 주변 인물들이 그렇죠. 그들은 젊음과 돈, 여행을 즐길 만한 건강 등 모든 걸 다 가진 듯하죠. 하지만 그런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기가 어렵고 나쁜 생각을 품기도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에요. 단순하면서도 친숙한 상황에서 인간이 느끼는 기본적인 감정과 사랑에 빠질 때의 경험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그녀의 작품은 영리한 퍼즐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요즘 시대에 맞게 남녀의 균형이라든가 캐릭터의 복합성, 다양성 같은 요소를 고려했나요? 영화를 하면서 항상 동시대를 고려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특히 〈나일강의 죽음〉이나 〈오리엔트 특급 살인〉 같은 작품을 배타적인 영화로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초호화 열차와 유람선, 이국적인 이집트 배경 등을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돈과 물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일단 제 자신이 별로 흥미가 없고 또 유익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1937년 당시의 사회적 계급을 영화에서 재현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죠. 물론 그런 것을 깡그리 무시해서 몰입을 깨뜨리면 안 되지만요. 저는 이번 영화에서 인간의 감정을 최대한 직접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아까 말씀드린 시스터 로제타 사프의 새로운 노래는 영화에 소울풀하면서 직접적인 느낌을 더해줘요. 물론 시스터 로제타 타프는 타계했고 그녀가 직접 만든 음악은 아니지만 그녀가 아니라 노엘 카워드나 어빙 벌린 등 당시에 활동한 다른 가수들의 음악을 넣었다면 아마 똑같은 느낌을 살리진 못했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 변화를 준 거죠. 직접성과 관능성, 강렬함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시대의 족쇄에서 벗어난 거니까요. 여기에서 ‘강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건, 감정과 즉시성이 가득하기 때문이에요.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는데, 어떤 시대를 직접적이거나 구체적으로 그려내려고 하면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전반적으로 캐릭터들의 말투라든가, 당시의 사회적 관습, 사회적 계급, 민족적 혹은 사회적 장벽 같은 것에 제한받지 않는 방법으로 접근했어요. 감정적인 면에서 마치 지금 이 시대 배경인 것처럼 표현하려고 노력했죠. 모든 걸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요.
리넷 역에 갤 가돗, 사이먼 역에 아미 해머 그리고  누구나 탐낼 만한 캐릭터 재클린 역에 에마 매키를 캐스팅했어요. 재클린 역으로 신선한 얼굴을 원했던 건가요? 아주 익숙하고 매력적이고 많은 기대감을 주는 배우들과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는 배우들이 섞여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클린 같은 캐릭터가 특히 그렇죠. 적어도 초반에 가장 불안해 보이는 캐릭터가 재클린이니까요. 원작에서 푸아로가 말하듯 재클린은 열정이 지나치게 강해요. 항상 한쪽이 더 많이 사랑하게 되어 있죠. “사랑은 안전하지 않다”고 푸아로가 말합니다. 재클린의 사랑은 안전하지 않은 사랑이에요. 푸아로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사랑의 위험함을 이야기하기도 하죠. “나도 한때 당신처럼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그녀를 잃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라고. 이렇게 불안정한 캐릭터를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내쉬는 모든 숨결에서 기쁨과 고통, 원한, 질투, 신랄함이 느껴져야 했어요. 무모하지만 어느 정도 공감을 일으킬 수 있어야 했고요. 에마 매키는 캐릭터의 이런 부분을 전부 다 이해했고 비극적인 분위기까지 뿜어냈죠. 지적이고 감정 표현까지 뛰어난 배우라 어려운 캐릭터를 잘 소화해주었어요.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에르퀼 푸아로의 콧수염이 굉장히 화려해서 강한 인상을 남겼죠. 심지어 이번엔 콧수염 스타일링과 콧수염 메이크업에 더 신경을 썼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콧수염을 가면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신경을 썼어요. 극 중에서 살로메 오터본이 말하듯 수염은 푸아로가 감정을 숨길 수 있는 가면 같은 것이거든요. 물론 〈오리엔트 특급 살인〉 때처럼 여전히 강박적일 정도로 콧수염에 신경을 많이 쓰고요. 그는 자신의 콧수염이 항상 멋지게 치켜 올라간 상태로 유지되길 원하니까요. 완벽한 콧수염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성에 대한 믿음을 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를테면 명함 같은 거죠. 야외 촬영을 할 때마다 더위와 습기 때문에 푸아로의 콧수염이 축 늘어지는 게 큰일이었어요. 수염이 흐물흐물해지면 비상이 걸렸죠. 사막의 위력으로 축 처진 콧수염을 고데기가 구출해주는 동안, 물에 띄운 화려한 유람선과 열두 명의 훌륭한 배우들, 몇백 명의 스태프들이 마냥 기다려야 하는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웃음)
 팬데믹 위기로 영화 개봉일이 계속 미뤄졌었죠. 극장은커녕 한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영화 관람은 그 어느 때보다 매력적이고 필수적이고 스릴 넘치는 경험이 되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켜지는 작은 공간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영상, 감각적 자극을 통해 공동체의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죠. 몇 주 전엔 푸아로가 피라미드에 있는 장면을 다시 보는데 헉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정말 멋진 거예요. 그때 전 뱀부 양복을 입고 있었죠.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원단에 컬러가 정말 아름다웠어요. 갤 가돗의 드레스며 나일 강변에서 유람선을 향해 손 흔드는 아이들이며 물소도 눈에 띄었어요. 집에만 갇혀 있던 저도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게 되더군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잠시나마 휴가 떠나는 기분을 선사했으면 좋겠어요. 이집트로 떠나 사막, 피라미드를 경험하는 거죠. 나일강에 던져지거나 악어에 잡아 먹히거나 물소에 쫓길 일도 없잖아요. ‘저 옷을 입어보고 싶다’ ‘와, 맛있겠다’ ‘저기에서 수영하고 싶다’ ‘저 욕망과 열정, 욕정, 누군가에게 완전히 빠져드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 ‘지금 바로 저기에 있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애거서 크리스티가 모든 작품에서 선사했고 우리 영화에도 담긴 그런 경험요. 이집트를 럭셔리하게 여행하되, 살인사건의 희생양이 될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꽤 멋진 휴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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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손안나
  • 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