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 후 거실에 늘어져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완전히 취하지 않은 채로 영화의 결말까지 기억할 수 있는 칵테일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하이볼이다. 스카치 위스키에 소다를 넣는데, 보통 탄산음료는 캔에 담겨 있다 보니 비율 조절이 중요하다. 영화의 시작부는 7대1, 중반부는 1대1, 결말부엔 남은 얼음과 위스키까지 싹 털어 넣고 기분 좋게 침대로 가는 순서를 즐긴다. 한국 영화는 소맥, 미국 영화는 잭콕, 영국 영화는 진토닉, 유럽은 스카치 하이볼. 단순하지만 기분 내기 좋은 나만의 루틴이다. -김대욱(웨스틴조선호텔 바텐더)

여행을 가면 아무리 번거로워도 그곳의 술만큼은 캐리어에 욱여넣는 버릇이 있다. 덕분에 냉장고의 한 칸은 항상 세계 각지에서 기나긴 여행을 한 알코올들이 웅크리고 있다. 더운 나라의 마트, 추운 나라의 편의점에서 온 것들을 한참 바라보다 그날의 기분과 주파수 맞는 것을 꺼낸다. 가장 사랑하는 건 타히티에서 온 히나노 맥주와 오징어, 간장마요네즈 삼합. 세팅한 트레이를 침대 위에 올려두고 배를 깔고 엎드린다. 뭘 봐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술을 다 마실 때까지 예고편만 여러 개 보다 끝나는 넷플릭스 증후군만 경계하면 나 홀로 완벽한 밤을 보낼 수 있다. -김희성(에세이스트, 〈질풍노도의 30대입니다만〉 저자)

청담동 바 문화가 기지개를 펼 때부터 취재하느라 온갖 바를 다녔다. 덕분에 위스키에 취미를 갖게 됐고 여행도 칵테일 바 위주로 계획을 짠다. 좋은 바에 가서 바텐더들에게 추천을 받다 보면 6박 7일도 짧다. 좋다는 위스키를 웬만큼 마셔봤지만 집에서는 다르다. 선반에서 꺼낸 제임슨 위스키를 각 얼음으로 가득 채운 머그에 붓는다. 위스키를 처음 만든 아일랜드, 또 그곳을 대표하는 위스키이지만 가격은 한 병에 2만원대. 적당히 맛있으면 괜찮고, 푹 잘 수 있을 만큼만 취하면 된다. 오늘도 집에 가서 나만의 제임슨을 마실 거다. -김용현(무신사 에디터 팀장)

술을 마실 때는 즐거워야 한다, 혼술을 할 때는 외롭지 않아야 한다는 게 나만의 알코올 철학이다. 집에 셰이커와 각종 보드카, 리큐어를 구비해놓고 칵테일을 만들어 먹는다. 귀찮을 때도 있지만 막상 만들고 나면 뿌듯한 마음에 괜스레 술맛도 더 좋게 느껴지는 것 같고. 한두 잔에 기분 좋고 싶을 땐 시트러스한 마르가리타를 즐긴다. 그리고 야심한 밤, 달달한 게 당기지만 디저트를 먹기에 부담스러울 땐 커피 향 가득한 에스프레소 마티니가 최고. -효민(가수, 연기자)

위스키는 너무 고독하고 와인은 너무 시끄럽다. 알코올램프맛 증류주나 안주 없인 부대끼는 과실주보다는 든든한 곡주가 좋다. 지평생막걸리와 서울장수막걸리는 세기의 유산으로 길이 보전되어야 한다. 술자리 모임에 파전에 막걸리 코스를 제안해도 보통은 다음 날의 숙취가 두렵다며 의견을 묵살당하기 일쑤. 몇 해 전 우도 특산품인 땅콩 막걸리를 맛본 뒤에 고소한 풍미에 반해 박스로 공수해 냉장고 음료 칸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혼자 마신다. 그랑데 사이즈의 투명한 유리컵을 냉동실에 살짝 얼려두었다가 꺼내 7부까지 콸콸 붓는다. 어쩐지 미스터 트롯이 연상되는 필 콜린스의 보컬을 들으며 안락의자 깊숙이 몸을 누인다. -손안나(〈하퍼스 바자〉 피처 에디터)

지난여름 친구에게 야외용 풀장 세트를 받았다. 어른 서넛이 들어가도 될 크기. 내리쬐는 볕 아래 낑낑대며 설치를 시작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넘실넘실 차오르는 물을 보자 발이나 담그고 놀까 했던 생각이 차차 발전한다. 새로 산 수영복을 개시한다. 태닝 오일을 바르고 용감히 파라솔 밖으로 몸을 내놓는다. 그리고 타이거 라들러 맥주. 우리만의 옥상이 있다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이다. -한량(작가, 〈원서동, 자기만의 방〉 〈지금 아니 여기 그곳, 쿠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