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ON LIFE
우리가 몰랐던 칼 라거펠트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짙은 선글라스 뒤에서 무표정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칼 라거펠트의 안경 너머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그리하여 또 다른 라거펠트, 혹은 그의 자아 중 하나를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으리라.” 칼의 어록을 모은 책
아울러 발렌티노부터 슈퍼마켓 모노폴리까지 다양한 브랜드를 위해 온갖 디자인을 하는 프리랜스 디자이너 생활도 했다.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이지만 한 번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고, 풍경 사진에 흥미를 느껴 두 권의 사진집을 발간한 적이 있다. 특히 그의 연인으로 알려진 자크 드 바셔와의 로맨스는 한 편의 영화를 방불케 했다. 20여 년간 함께했음에도 잠자리를 한 적이 없는 플라토닉 러브였음을 고백한 것에 이어(이브 생 로랑을 비롯해 그가 수많은 남녀와 염문설에 휩싸였음에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바셔의 마지막 순간을 지킨 유일한 남자였으니. 그의 일상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뜨거운 음료가 맞지 않는다며 눈뜬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코카콜라 라이트만을 마신다는 일화(후에 그는 해당 음료와 협업을 진행하고 모델로도 활약한다), 매일 15분가량을 투자해 드라이 샴푸로 백발을 더욱 강조한 뒤 포니테일로 묶는 시간을 ‘스타일링 타임’이라 일컬으며 혼자만의 인형 놀이를 즐긴다는 얘기 등,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전설적인 디자이너가 아닌, 매력적인 인격체로서의 칼 라거펠트가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생전의 그는 선글라스를 가면 삼아 속내를 감춘 채 철저히 ‘칼 라거펠트’로만 보이길 원했다.
펜디의 가족, 샤넬의 전설적인 용병
2019 F/W 펜디 쇼는 칼 라거펠트의 마지막 컬렉션으로 어느 때보다 엄숙하고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피날레에 상영된 라거펠트 영상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다. 펜디 패밀리와 칼 라거펠트의 히스토리를 보고 듣노라면 누구나 가족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1965년 칼 라거펠트는 오랜 역사를 가진 가죽 & 모피 하우스 펜디에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었는데, 당시 브랜드를 이끌던 5명의 자매들은 젊은 독일인 디자이너가 회사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길 원했다. 1994년부터는 안나의 딸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가죽 컬렉션의 디렉터로 칼과 협업을 시작하게 된다. “칼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어린아이일 뿐이었습니다. 끈끈하고 진심 어린 애정을 바탕으로 우리는 아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저의 멘토이자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죠. 그가 사무치게 그리울 겁니다.” 실비아의 추모 글에서도 존경, 그 이상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편 카라 델레바인, 페넬로페 크루즈 등 칼 라거펠트의 사단이 런웨이에 등장한 샤넬 쇼는 그에게 보내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궁극적으로 나는 외국인 용병입니다. 샤넬을 영원히 지속시킬 것을 명령받은 군인이죠. 샤넬과 함께라면 결코 패할 일이 없을 겁니다.”
1982년 샤넬의 수장으로 부임한 칼 라거펠트는 그가 사랑한 코코 샤넬의 스타일에 자신의 색을 덧입히며 무려 35년간 하우스를 이끌었다. 특히 그가 컬렉션을 통해 보여준 쇼 메이커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매 시즌마다 혁신적인 데커레이션으로 꾸며진 그랑 팔레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패션 판타지를 자극했으니 말이다.
라거펠트가 사랑한, 라거펠트를 사랑한
칼 라거펠트의 85년 인생에서 그의 동료, 뮤즈 혹은 동반자가 되어준 이들이 여기에 모였다.
칼 라거펠트가 우리에게 남긴 말들
내게는 세 가지 소명이 있다. 패션, 사진, 그리고 책이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영감을 준다.”
나는 찰나를 사랑한다. 그래서 패션은 내 천직이다.”
What is the Source of My Energy? EDF(Envy, Desire, Forcefulness).내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인가? EDF(욕심, 갈망, 단호함).”
복수는 천박하고 끔찍한 것,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 몹쓸 짓을 했는데 굳이 되갚아 주지 않을 건 또 뭔가. 사람들이 이젠 잊었겠지 할 때쯤 ‘의자’를 뒤로 확 빼버리리라. 한 10년 후에라도 말이다.”
에너지란 반드시 즉각적으로 발현해야 한다. 무한정 보관할 수 있는 에너지란 없다. 물론 에너지를 저장해 전기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창의력은 나오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 그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 인생의 무상함, 패션의 덧없음. 이보다 더 나와 잘 어울리는 건 없다.”
나는 뭔가 알게 되는 걸 사랑한다. 모든 걸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성인이 아니다. 우주의 ‘청지기’ 같은 사람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전에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 어떤 늙은 바보들이 말하는 걸 들었다. ‘우아함은 죽었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아니지요. 우아함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이랍니다.”
솔직히 난 사람들이 내가 못됐다고 여기는 게 좋다. 사실을 말하자면, 난 좀 모자란다.”
자기 자신한테 동의하라. 그 순간 비로소 내가 원하는 나를 끌어낼 수 있다.”
내 안은 텅 비어 있다. 그리하여 내 안에서는 모든 시대정신이 청아하게 메아리치고 있다.”
whatever it is, I do perfectly, namely ‘Professional Killer’. (나는 무슨 일이든 100퍼센트 확실하게 처리한다. 한 마디로 나는 ‘전문 킬러’다.)”
I Exist, at the Same Time in Not. (나는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썩어 없어지는 존재다. 내가 남긴 말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