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테토와 에겐, 유독 피로하게 느껴진다면

끊임없이 구분짓고 정의하는 라벨링의 유혹과 피로에 관하여

프로필 by 최강선우 2025.07.13

10초안에 보는 기사

☑️테토남, 에겐녀의 발상지

☑️테토남, 에겐녀의 숨겨진 뜻

☑️ 현대 사회의 젠더 테스트 '테토남' '에겐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그렇다면 테토남, 에겐녀에 대한 라벨링에 대응할 방법은 없을까?


‘테토’와 ‘에겐’ 사이, 우리는 어디에?

사진/권또또 유튜브 캡처

사진/권또또 유튜브 캡처

사진/@nezzo_toon 내쪼 툰

사진/@nezzo_toon 내쪼 툰

SNS와 커뮤니티를 떠도는 키워드 중 하나는 '테토남'과 '에겐녀'다. SNS에서 유행하는 ‘테토남’과 ‘에겐녀’는 성별 고정관념을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과 에스트로겐(estrogen)이라는 성호르몬에 빗댄 유사 심리 테스트에서 비롯했다. 온라인 퀴즈를 통해 성격을 네 가지 유형(에겐남, 에겐녀, 테토남, 테토녀)으로 분류하는 테스트에 60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고, 한 때 테스트 웹사이트 서버가 폭주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체격 좋고 스포츠를 즐기는 남성은 ‘테토남’, 긴 머리에 얌전한 행동의 여성은 ‘에겐녀’로 판정되고, 반대로 예술을 좋아하고 섬세한 남성은 ‘에겐남’, 목소리가 크고 외향적인 여성은 ‘테토녀’로 분류한다. 한 사람 안에서도 두 성향을 동시에 갖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배우 한가인이 유튜브 콘텐츠에서 남편 연정훈을 “전형적인 에겐남”이라 언급한 장면도 화제가 되었다. 유튜버이자 댄서 권또또가 남편 어버와 출연한 영상에서 ‘수컷녀–에겐남’ 커플 콘셉트를 보여주면서 트렌드는 급속히 대중화됐다.

사진/푸망 @poomang_official SNS 캡처

사진/푸망 @poomang_official SNS 캡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 네 가지 분류가 우리가 지닌 젠더의 다양성을 담아낼 수 있을까?’. 그 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단편적이고 가벼운 분류는 생물학적 특성과 사회적 기대를 교묘히 결합해, 오히려 고정된 성 역할을 강화한다. 특히 ‘에겐녀’라는 단어는 겉보기에 귀엽고 무해해 보이지만, ‘가녀리고 청순한’ 외모와 태도를 이상적인 여성성으로 고정함으로써 미묘한 폭력성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젠더 수행의 유동성과 복합성을 삭제하고 여성을 하나의 이상적 이미지에 귀속시킨다. 문제는 이미지들이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성호르몬의 이름을 빌린 이분법적 환상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 에스트로겐은 여성이라는 단순화된 구분은 섹스와 젠더의 차이를 지우는 전형적 오류이기도 하다. 성 역할은 고정된 본성이 아니라, 구성된 정체성이라는 점에서 구분 자체가 환상일지도 모른다.

로라 멀비의 이론대로 주류 시각 문화는 여전히 남성의 시선(male gaze)을 따른다. 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소비되고, 여성 스스로도 그러한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도록 강요받는다. 테토녀는 ‘독립적이고 터프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되지만, 결국 '털털하지만 매력적인 쿨 걸'이라는 오래된 남성 판타지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테토녀도, 에겐녀도, 결국은 남성 중심 사회가 정의한 이상적 여성성의 양면일 뿐이다. 겉으로 이분법을 섞어놓은 듯한 에겐남이나 테토녀 범주 역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구도를 전제한 채, 조합만 바꾼 사례다. 페미니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에서 젠더의 본질은 수행(performance)에 있으며, 진정한 젠더 트러블은 이분법 그 자체를 교란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선택지는 보다 다양해 보이지만, 고착화된 규범 안에서 조합을 바꾸는 데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틀에 성소수자와 젠더퀴어는 애초에 포섭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테스토스테론=남성, 에스트로겐=여성이라는 전제하에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같은 젠더 정체성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젠더의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는 구도는 다양성을 삭제하고, 어떤 존재를 배제한다. 안드레아 롱 추는 “신체와 정체성 사이의 불일치가 만들어내는 긴장이야말로 젠더 논의의 본질”이라고 말했지만, 밈은 긴장을 아예 지워버리고 외형·성격·라이프스타일까지 단일한 젠더 템플릿에 욱여넣는다. 그리고 호르몬이라는 생물학적 언어를 빌려 젠더를 설명하는 방식은, 성정체성을 증명 가능한 ‘증거’처럼 다루는 위험한 기획이다. 이는 젠더 인권 담론의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일상에서 무심코 소비하는 밈과 이미지 속에서, 얼마나 강고한 성 고정관념이 반복 재생산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테토남', '에겐녀'는 자신을 선택 가능한 상품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신자기계발 시대의 셀프 브랜딩 도구로 기능한다는 점도 문제다. 'MBTI', '퍼스널 컬러', '이상형 월드컵', 'TMI 테스트'처럼, 현대인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분류하고 정의하고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한다. 자신을 규정하고, 매력적으로 포장해 '선택될 수 있는 나'를 상품처럼 구성하는 새 기준이 하나 더 등장한 것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복잡한 인간을 단순한 유형으로 나누는 시도가 사람들의 사고를 편협하게 만들 수 있다”라고 우려한다. 호기심에 재미로 시작한 자기 분류라도 지나치게 몰입하면 틀에 자신을 가두고 맞춰버리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유튜브나 각종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이미지를 반복 노출하고, 특정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거나 정체성을 ‘있어 보이게끔’ 가다듬는다. “나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잖아”, “너는 이런 향이 어울릴 거야”라는 식으로 특정 정체성을 ‘권유’하는 미디어의 속삭임은 삶을 대신 기획하는 프로듀서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라벨링에 대응할 방법은 없을까? 느껴지는 불편함과 피로감에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무조건적인 해체보다 중요한 건 ‘교란’이다. 버틀러가 말했듯, 젠더는 흉내 내기와 반복을 통해 수행된다. 그렇다면 프레임을 모방하고 패러디하고 비틀면서, 규범 자체의 경직성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다. (코미디언 강유미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또 발 빠르게 해냈다.) 중요한 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혹은 ‘여기에 없는 사람들은 어디로 갔지?’를 끊임없이 묻고, 아직 우리가 모르는 스펙트럼이 존재할 가능성을 상상하는 일이 필요하다. 틈과 경계선, 보이지 않는 프레임 바깥을 더 자주 기웃거리고 넘나들어야 한다. 나는 적어도 우리를 단어 하나로 규정하기에 가능성이 크고 늘 변화하기 때문에 사는 재미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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