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영혼 없는 좀비와 함께 살아가기
<렛 미 인>을 쓴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또 다른 파격적인 소설 <언데드 다루는 법>이 드디어 영화화되었다. 이 작품을 연출한 테아 히비스텐달 감독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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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캐릭터들이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영화 속 공간이나 배우들의 움직임, 작은 디테일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캐릭터를 설명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방식이 영화에 더 긴장감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제가 감독으로서 요구 사항이 너무 많은 거라고 할 수 있죠. 관객이 영화를 좀 더 집중해서 봐주기를 원했습니다. 영화 속 작은 디테일에서 의미를 찾는 분도 있고, 놓치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엄마(안나)가 아이(엘리아스)의 칫솔에 키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할아버지(말러)가 아이의 텅 빈 침대에 솜 인형을 내려놓을 때 아이가 죽었다고 예상하게 됩니다. 어쩌면 무덤 장면이 나올 때쯤 상황을 알고 이전 장면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겁니다. 이런 장면들을 굳이 강조해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영화 속 가족들은 떠난 사람들의 공간을 남겨놓은 채 생활하고 있습니다. 영화 프레임 안에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죽은 이들의 부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돌아온 언데드(좀비)를 가족이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것처럼 관객 역시 언데드와 이들의 관계를 지켜보고 관찰하게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찰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데드가 나타나면 누구나 무섭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언데드가 되어 집에 오면 일단 가족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겠죠. 언데드를 놀라게 하면 안 되고 그들도 상처받을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정상이 아니지만 일부러 정상인 척, 가족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행동합니다. 궁극적으로 명상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슬픔, 비통에 관한 이야기인데 계속 비탄 속에 있으면 관객 역시 지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거리감이 필요합니다. 관찰할 수 있는 요소와 단서를 제공하면서 관객이 비통함에 빠져 있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에서 관찰을 활용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한 도구로써 언데드를 활용해 실험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존재인 언데드가 주인공들의 거울 이미지로 기능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촬영할 당시, “인간들이 언데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자 현실에 툭 던져 놓은 느낌”이라고 스태프들과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거울로도 볼 수 있지만 투사된다고 할 수 있죠. 어떻게 보면 언데드는 비통함의 물리적 형태를 보여주는 겁니다. 비통의 대상이죠. 영혼 없이 육체만 돌아와 있는데 이들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고 그저 물리적인 형태로만 남아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언데드에게 투영합니다.
언데드의 귀환 전에 초자연적이고 미스터리한 현상이 일어나지만 스펙터클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개개인의 평범한 일상에 초점을 맞춥니다. 최근 좀비물에서 좀비들은 뛰어다닐 정도로 빨라졌는데 이 영화에선 느린 것이 역설적으로 인상적입니다. 언데드가 야단법석을 떨면서 등장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죽은 이들이 깨어나는 과정이나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최대한 현실적이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고 싶었죠. 기존의 좀비 영화와 다른 방식을 원한 건 맞습니다. 죽은 이들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면 자칫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볼 때 무서움이나 처연함의 감정이 있어야 하는데 빠르면 웃길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죠.
영화 속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여전히 죽은 이들을 떠나 보내지 못합니다. 애도를 끝내지 못한 채 죄책감이나 우울함이 그들의 삶에 고착된 느낌을 줍니다. 언데드가 돌아오자 더욱 슬픔과 비통함에 빠지는 상황으로 악화됩니다. 엄마 안나는 비통함 속에 있다가 더 이상 나의 아이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립니다. 남들보다 빠르게 상실의 과정을 헤쳐가는 인물입니다. 다른 가족들은 더 어렵습니다. 토라의 경우 돌아온 연인과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슬픔을 느낍니다. 누굴 떠나 보내고 그리워하면서 어떤 이들은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이지만 죽은 이의 신발을 오랫동안 보관합니다. 돌아왔을 때 신발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서 간직하기도 합니다. 가족이 언데드로 돌아와도 내가 사랑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 관계에 희망은 없습니다. 육체의 형태만 돌아왔을 뿐입니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과거에 연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안나 역을 맡은 레나테 레인스베의 매력적인 연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에서 사랑의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면 이 영화에선 가슴 저린 모성애를 보여줍니다. 레나테는 촬영 1년 반 전에 캐스팅 했습니다. 그는 안나 캐릭터를 위해 헌신적으로 준비를 했죠. 특히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레나테는 직장에서 집에 돌아온 안나가 아들과 만나는 장면을 준비하면서 의도적으로 언데드로 분장한 배우를 보지 않았습니다. 안 보고 있다가 촬영 당시 문을 열고 방에 들어왔을 때 실제로 아들을 처음 봤죠. 멈칫하는 느낌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어서 첫 테이크를 그대로 쓴 경우입니다. 원작에 나와 있는 감정을 고스란히 잘 살려서 그 장면이 정말 좋았습니다.
Credit
- 글/ 전종혁(영화 칼럼니스트)
- 사진/ 판씨네마 제공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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