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클레어 퐁텐의 메시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 «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를 열고 있는 클레어 퐁텐의 급진적인 예술세계.

프로필 by 손안나 2024.05.03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한국어)>, 2004년-현재, 네온 사인, 프레임, 변압기, 전선, 가변크기.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한국어)>, 2004년-현재, 네온 사인, 프레임, 변압기, 전선, 가변크기.

2004년 이탈리아 출신의 이론가 풀비아 카르네발레와 영국 출신의 미술가 제임스 손힐이 설립한 예술가 집단 ‘클레어 퐁텐’은 이름부터가 ‘작품’이다. 우선 ‘맑은 샘(Clear Fountain)’을 뜻하는 프랑스어 클레어 퐁텐은 남성용 소변기를 ‘샘(Fountain)’이라고 이름 붙여 작품으로 제시한 마르셀 뒤샹에 관한 직접적인 오마주다. 이탈리아인과 영국인으로 이뤄진 듀오는 뒤샹이 활동했던 파리에서 결성했으며 여성형 이름을 선택했다. 여성이자 유대인인 ‘로즈 셀라비’를 창조해 자신의 얼터 에고로 삼았으며 말장난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뒤샹이 살아 있었다면 분명 좋아했을 이름이다. 1917년 뒤샹이 <샘>으로 ‘레디메이드’란 새로운 개념을 창안한 이후 미술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현대미술가가 레디메이드를 방법론으로 사용하지만 마르셀 뒤샹의 날카로운 타격은 후대 미술가들의 형식적 남용으로 무뎌지고 말았습니다. 클레어 퐁텐은 그 전략의 급진성을 다시 회복하고자 합니다.” 지난 3월 말 열린 «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 기자간담회에서 아뜰리에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 안소연은 말했다.

<컷 업>, 2024년, 시트 위에 타일 프린트, 가변크기.

<컷 업>, 2024년, 시트 위에 타일 프린트, 가변크기.

우리나라로 치면 ‘모나미’ 같은 프랑스 유명 문구 브랜드의 상표명이기도 한 클레어 퐁텐을 이름으로 삼은 그들은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예술가상”을 버리고 클레어 퐁텐의 조수를 자처한다. 구글 서치 이미지, 휴대폰 이모지 등 이미 존재하는 시각적· 조형적 양식을 가져다 작품을 만드는 클레어 퐁텐은 이러한 행위가 문구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공책 상표의 이름을 차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긴다. 뒤샹은 작가의 고유한 영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을 제시함으로써 예술작품의 상품으로서의 지위를 비판했다. 클레어 퐁텐은 오늘날 더 첨예해진 현대미술의 자본주의와의 결탁을 지적한다. 일상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이미지와 물건을 예리하게 선택하고 그것들에 시대의 긴급한 의제를 실어 전시장에 부려놓는다. 차분하고 단호한 얼굴로 ‘당신은 이걸 보고 무엇을 떠올리겠는가’라고 뇌까리는 듯이.

<무제 (보호)>, 2018, 인더스트리얼 프레임리스 LED 라이트박스, 펄 비닐 디지털 프린트.

<무제 (보호)>, 2018, 인더스트리얼 프레임리스 LED 라이트박스, 펄 비닐 디지털 프린트.

올해 4월부터 11월까지, 개최 60주년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열기 속에 열리는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는 클레어 퐁텐의 주요 작품 시리즈에서 차용했다.(안소연 디렉터는 전시 준비 과정에서 이와 같은 희소식을 들었고, 덕분에 관람객들은 베니스비엔날레에 가지 않아도 주제전의 일부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됐다.) 네온사인 작품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2004~)는 클레어 퐁텐의 정치적 지향성을 드러내는 대표작이다. 작가는 2000년대 초반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증에 맞서 싸웠던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단체가 유포한 전단지에서 발견한 두 단어(Stranieri Ovunque, 이탈리아어로 ‘Foreigners Everywhere’라는 뜻)를 가져와 20여 년 동안 총 60개의 언어로 번역하며(소멸한 토착 언어도 있다) 시리즈를 이어왔다. 부부이기도 한 두 작가가 거주하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의 낡고 금 간 타일 사진을 콜라주한 바닥 설치 작업 <컷 업>(2024) 위에 서서 거추장스럽게 발에 치이는 가짜 레몬을(<이민자들>, 2022) 피하며 전시장에 부유하다 보면 이내 영어, 이탈리아, 프랑스어, 한국어로 구성된 <Foreigners Everywhere>(2024)를 마주하게 된다. 시칠리아에서 여름이 되면 과일 매대에 무더기로 쌓이는 레몬을 바닥에 흩뜨려트려 ‘경제적으로 열악한 유럽 남부의 상징’이자,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민자들’을 비유한 클레어 퐁텐. 주제로 채택된 소감을 묻자 클레어 퐁텐은 최악의 난민 위기 가운데 열리게 될 이번 비엔날레에 최초의 라틴계 예술감독이 “자신의 급진적인 작품 제목을 시의적절하게 채택한 직관이 탁월했다”고 말했다. 과거 국영 조선소이자 무기고였던 아르세날레에 설치될 60개 언어 버전의 <Foreigners Everywhere>는 베니스에 모인 모든 이방인을 환영하며 그 다채로운 빛을 발할 것이다.
전시 개막일 클레어 퐁텐은 리움미술관에서 예술세계 전반을 소개하는 짧은 강연을 선보였다. 강연 막바지 작가는 «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에는 출품하지 못한 <Burnt/Unburnt>(2011~)를 소개해주었다. 벽에 성냥을 심어 지중해, 이탈리아, 미국 대륙 등의 형상을 만들고 태워버리는 이 작품은 다소 파괴적인 수행 방식 때문에 지난 세기의 아나키스트를 연상케 한다. 클레어 퐁텐은 지난해 말 로마의 한 갤러리에서 이탈리아 형상의 <Burnt/Unburnt>가 불타오르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3분 가까이 보여주면서 말했다. “<Burnt/Unburnt>는 여러 점에서 매력적인데요, 냄새와 질감으로 화이트 큐브의 분위기를 바꾸고, 활활 타오를 때는 불이 격렬한 드로잉을 만들어내며 또 완전히 전소하고 남은 흔적은 회화가 된다는 점에서 그래요. 그리고 저희는 이 작품을 태우는 걸 선호합니다만, 제목 그대로 태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언젠가는 방문객이 불을 붙일 수도 있겠죠.” 클레어 퐁텐에게 불은 ‘정화’를 의미하며 작가가 깨끗하고 신성하게 되돌리고자 하는 것은 세계 곳곳에 난무한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억압하는 일종의 폭력”이다.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안동선
  •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