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릴리안 토마스코의 첫 한국 개인전 이야기
릴리안 토마스코의 개인전《Seeing Things》를 보기 전 필독해야 할 인터뷰.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into the unconcious
화가 릴리안 토마스코(Liliane Tomasko)는 무의식 너머의 세계를 향한 신실한 붓질을 멈추지 않는다.
<Seeing Things(delicately weighed)>, 2025, Acrylic and acrylic spray on aluminum, 152.5x140cm.
무성한 숲으로 둘러싸인 뉴욕 외곽의 어느 스튜디오. 남편 션 스컬리의 1층 작업실은 낮은 채도의 직선이 촘촘히 배열된 반면, 릴리안 토마스코의 2층 공간은 색색의 유려한 선들이 화면 밖으로 흐르듯 캔버스를 채운다. 보고 그리는 행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해온 사람. 릴리안 토마스코라는 이름이 다소 낯설지 모르지만,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을 다룬 회화 작업을 이어왔다. 유연한 태도로 자신만의 추상 세계를 견고히 지어 올려 만든 결과물은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얼마 전 뉴욕 니노 마이어 갤러리에서는 릴케의 시 ‘Evening’에서 영감을 얻은 개인전 «Poem Things»의 오프닝을 치렀고, 올해 초 영국 셰필드 미술관에서는 기관 소장 조각과 회화를 추상화 형식으로 재해석한 개인전을,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파리의 빌라 라로슈에서는 건축물과 호흡하는 신작들을 선보였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번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 «Seeing Things»을 통해 작가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지금 피비갤러리에는 동일한 크기의 프레임 안에 역동적인 붓질이 펼쳐진다. 그 안에서 우리는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보는 행위’를 향한 사유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한 예술가가 추상회화를 통해 어떻게 내면의 지형을 그려왔는지 보여주는 궤적이기도 하다. 한국 관람객에게 그 긴 여정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릴리안 토마스코가 <바자 아트>를 뉴욕 작업실로 초대했다.
본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그 사이 어떤 여정이 존재하는 일이다. 무언가를 보는 순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 주제는 줄곧 나의 관심사였다. 같은 광경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볼 때, 그 순간 우리는 어떤 식으로 공통의 감각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품고 작업을 시작했다.
«Seeing Things»는 ‘본다는 행위’ 자체를 강조한 전시명이자 연작 제목이다. 이 문장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그 사이 어떤 여정이 존재하는 일이다. 무언가를 보는 순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 주제는 줄곧 나의 관심사였다. 이번 전시 제목에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싶었다. 보는 행위 자체가 어떤 대상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과정, 즉 ‘지각’과 ‘인지’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자 했고, 한편 한 사람은 보지 못한 무언가를 다른 누군가는 볼 수 있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전자를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보값이 시각 피질에 의해 수신된 이후 처리되어 해석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인데, 내겐 이 과정이 마치 매체에서 매체로 연결되는 일종의 ‘번역’ 같다. 사실 후자에 좀 더 흥미를 느낀다. 같은 광경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볼 때, 그 순간 우리는 어떤 식으로 공통의 감각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품고 작업을 시작했다.
같은 크기의 연작들이 마치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듯 공간을 채운다. 신작을 만들 때, 모든 그림의 크기와 알루미늄이라는 매체가 동일해야만 했다. 연작을 일종의 ‘가족’처럼 여기기도 하고, 작품들이 물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익숙지 않은 먼 나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붉은 실처럼 일관된 흐름을 강하게 느꼈으면 해서 형식적인 한계를 정했다.
리넨 캔버스와 알루미늄 패널, 두 가지 매체를 사용한다. 전시에서 대형 작업은 알루미늄에, 작은 크기의 회화는 캔버스에 완성되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매체를 활용해 그릴 때 어떤 차이가 있나? 리넨은 붓을 대는 순간 천이 미묘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창의적인 집중을 방해할 때도 있다. 그 작은 차이가 시각적으로 큰 차이를 만든다는 점이 놀랍다. 천은 물감을 흠뻑 흡수할 정도로 ‘배고픈’ 상태일 때가 많아서, 많은 양의 물감을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점점 그래픽적인 느낌이 나올 때가 있다. 반면 알루미늄은 바르는 즉시 표면 위에서 마르고, 모든 것이 그대로 기록된다.
당신의 회화는 늘 꿈이나 무의식, 내면의 상태와 연관된다. 이유는 무엇인가? 꿈, 무의식, 우리 안의 또 다른 세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각자 다르게 경험하는 세계. 많은 예술가들이 이 주제에 매료되었듯, 나 역시 탐구할수록 알 수 없는 무한한 주제라 느낀다. 꿈을 떠올려보면, 거기엔 ‘내면의 시선(inner sight)’이 존재한다. 결국 깨어 있든, 꿈을 꾸고 있든, 우리는 항상 이미지와 함께한다. 하지만 꿈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성질이 좀 다르다. 모든 게 뒤집혀 있거나 뒤바뀌어 있고, 몸에 대한 인식도 흐릿해진 채 다른 존재가 될 때도 있다. 육체를 갖춘 ‘나’라는 정체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지점이 이번 전시와 연결된다.
어린 시절 생생한 악몽을 꾼 고통을 토로한 적도 있다. 요즘은 어떤 꿈을 꾸나? 그때의 경험이 무의식, 심리학, 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열두 살쯤 심한 악몽을 꾸기 시작했는데, 몇 년 동안 계속됐다. 온갖 끔찍한 존재들이 등장하고, 실제 세계처럼 느껴져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시엔 상담을 받거나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방법도 전무했다. 미술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차 악몽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창작을 하면서 나아진 걸까? 창작을 하며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완전히 지워진 건 아니었다. 무섭고 충격적인 경험을 누군가에게 꺼내는 것조차 어려워서 결국 작업에 반영하게 된 게 아닐까. 우연히도 칸딘스키, 말레비치, 파울 클레처럼 처음 관심 갖기 시작한 예술가가 모두 초기 추상주의자들이었고 그들 역시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신지학이나 오컬트 같은 주제를 작업의 원천으로 삼았다. 자연스레 이것이 내 작업의 기반이 된 듯하다.
작업 초기에는 조각과 사진 작업이 위주였다. 침구, 커튼, 옷가지 등을 촬영하다가 점차 이 소재들을 회화로 옮겨왔다. 16살쯤, 내 손에 오래된 카메라가 쥐어진 후 뭔가를 표현할 출구를 암실에서 찾았다. 예술학교 진학 당시 천으로 추상적인 조각 작업을 시작했고, 이후 몇 차례 조각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회화에 각별한 매력을 느꼈을 뿐이다. 항상 집 안의 사물을 관찰하는 데 관심을 두는 아이였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침대 위 옷가지들,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행동과 ‘집’이라는 장소를 흥미로운 심리적 공간으로 여겼던 것 같다. 1998년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전에 찍어 놓은 사진 아카이브를 다시 찾아봤다. 1987년쯤 찍은 침대 사진들이 내 시선을 끌었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추상 작업을 시도 했다. 침대는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 담긴 공간이자 삶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시간을 상징하는 하나의 중심점으로 다가왔다. 실로 강력한 이미지였다.
구체적으로 회화의 어떤 지점에 사로잡혔나? 내게 회화는 어떤 예술 형태와도 다른, 매우 독특한 예술로 다가온다. 회화가 지닌 ‘정면성(frontality)’이라는 특성은 마치 스크린과 같다. 그림 앞에 서면 ‘대면’이 이루어지고, 자신과 마주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건 분명한 대화이다. 다른 예술은 환경과 어우러지거나 같이 공존하는 느낌이 강하다. 음악은 우리 주변을 감싸고 춤은 3차원의 세계에 존재한다. 하지만 회화는 평면임에도 우리 앞에 완전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디지털 아트와 달리, 순수한 환상을 표방하지 않고 오직 표면과 물질성을 지닌 채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포털’의 역할을 한다.
색채의 스펙트럼은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나? 초기 작업들은 지금보다 어두운 편이다. 초기의 색은 훨씬 현실적이고 차분한 톤이었고, 단색조에 가까웠다. 사진을 재현하기보다 다른 형태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그림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 되도록 놔두는 작업에 가까웠달까. 침대 사진을 드로잉으로 옮기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엔 선이 굉장히 많았다. 점점 자유로워지겠다고 결심한 뒤부터 선과 면, 색을 통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 같다. 의도적으로 완전한 추상 형태로 방향을 전환한 건 2014년쯤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활발히 색채 실험을 해왔다. 색은 불확실한 연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기에 다양한 색을 쓰는 건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원색의 대담한 색상 사이로 어두운 색의 스트로크가 화면 중앙이나 주변부를 메우는 작업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강렬한 색이 형태의 바다, 즉 캔버스를 가로지른다는 시각이 흥미롭다! 이전 회화에서 어두운 색의 붓질과 형태는 극적인 심리를 반영하곤 했는데, 대부분의 작업에서 중앙부에서 외부로 밀려나는 경향을 띨 때가 있다. 대형 회화를 그릴 때 선의 움직임이 종종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확장되길 의도하는데, 때론 가장자리를 넘어 밖으로 흘러넘쳐 숨 쉬는 듯한 느낌을 주고자 한다. 이번 신작은 훨씬 대립적인 편이라, 관객들이 심리적 차원에서 작품의 이런 지점과 교감해주길 바란다.
연작 중 어떤 작업에는 스프레이가 등장하고, 일부는 붓질로만 채워져 있다. 아껴 쓴다.(웃음) 처음엔 스프레이를 붓질처럼 활용하는 시리즈도 시도했는데, 이 말이 어색하게 들릴진 몰라도 캔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프레이는 어떨 때는 뭉툭하게 나오고, 어떨 때는 아주 가늘게 나오는 등 조절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서, 작업에 예기치 못한 우연을 부여한다. 내 추상 언어는 구조를 오랜 시간 고심해 완성되는 편이라, 스프레이가 그 틀을 깨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추상 언어를 구축하는 데 있어 가장 영향을 미친 작가나 질문은 무엇인가? 아티스트 토크에서 당신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과는 다르다고 말한 걸 본 적 있다. 형태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이 질문을 항상 고민한다. 분명히 내 그림을 보고 추상표현주의와 관계있다고 말할 이들이 있겠으나 내 그림은 ‘자동화’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잭슨 폴록 같은 작가는 자동적으로 그림을 완성하겠지만. 내 작업에 있어 제스처, 즉 움직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일종의 도구 상자처럼 내게는 늘 반복해 쓰는 특정한 붓질의 형태, 선형의 모양들이 있는데 이걸 다른 배열로 배치하면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따른다. 그게 나만의 언어인 셈이다. 단, 빌럼 데 쿠닝의 작업은 남다르고, 그렇기에 그의 작업을 좋아한다. 그는 아주 뛰어난 드로잉 실력을 지닌 화가였고, 덧칠하고 긁어내고 다시 그리는 과정을 반복해 자시만의 구조를 만들었기에.
당신의 작업이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현재 셰필드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The Psyche of the Portrait»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만든 빌라 라로슈에서 열리는 전시 «The Conundrum of the Organically Angular»처럼, 실제 조각이나 공간 같은 물리적인 대상을 추상 언어로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지점이다. 특정 프로젝트를 대할 때는 장소나 대상과 연결되는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The Psyche of the Portrait»에서는 셰필드 미술관이 소장한 컬렉션에서 세 점의 회화와 한 점의 조각을 골라 각각에 반응하는 추상화를 완성했다. 구상이라 볼 수 없지만, 여전히 작품과의 관계성을 인식할 수 있는 추상을 만드는 게 과제였다. 개인 작업을 할 땐 자유롭게 주제를 정한다. 2년 전 «Portrait of Self»라는 개인전에서 대형 규모의 연작을 선보였는데,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작업한 적이 있다. 다시 ‘보는 것’이란 무엇인가, ‘무의식’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으로 돌아갔다. 이 모든 질문은 내게 같은 주제의 ‘굴절’처럼 느껴진다. 본질적으로 ‘존재함’과 ‘의식’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뉴욕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일과는 어떠한가? 남편 션 스컬리와는 오랜 시간 예술적 동반자로 시간을 보내왔는데, 서로의 작업에 관해 조언하는 편일까? 일상은 규칙적이고 단순하다. 이른 아침에 출근해 작업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정원을 걷는다. 션과 나는 삶의 ‘공범자’ 같은 느낌이다. 우린 한때 같은 공간, 바로 옆에서 작업하기도 했다. 지금은 가끔 서로 작품을 피드백해주는 편인데, 션의 스튜디오는 항상 작업으로 가득 차 있다.(웃음) 서로 지금 몰입하는 작업이나 전시, 예술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예술가들에겐 작업이 삶 전부를 차지하니까. 함께 양육하고 있는 아들과 예술, 이 두 가지가 완전히 우리 삶을 채우고 있다.
요즘 당신을 사로잡는 화두는? 몇 년간 내 작업은 내부에서 외부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지금의 작업들은 어딘지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면모가 있는 것 같다. 이전처럼 보는 이들을 침대에 눕거나 잠들라고 초대하는 느낌이 아니다.(웃음) 지난 몇 년간 자연의 형태를 작업에 연결시키려 했다. 자연에는 뾰족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도 있고, 계속 자라나는 느낌이 있다. 자연과 우리 존재의 관계가 얼마나 분열되어 있는지,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자연을 내면의 시각에서 바라보려 한다.
정신과 무의식에 관한 이론이나 개념 중 당신이 믿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면 무엇인가? <햄릿> 1막 5장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항상 내가 하는 일을 명료하게 만들어준다. “천국과 땅에는 당신이 철학 안에서 꿈꾸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호레이쇼.”
※ 릴리안 토마스코 개인전 «Seeing Things»는 피비갤러리에서 11월 7일까지 열린다.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추상회화가 발전한 뉴욕에서 작가를 인터뷰하는 경험이 느닷없이 즐거웠다.
Credit
- 글/ 안서경
- 사진/ 이광민(인물), 피비갤러리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2025 가을 패션 트렌드
가장 빠르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셀럽들의 가을 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