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본 적 있어? 이물감 1도 없는 월경컵

여성들이 자신에게 맞는 월경 용품을 고를 수 있길 바라며

프로필 by 박경미 2024.03.05
셔츠는 L’has. 시계는 J.estina. 이어커프는 Portrait Report. 스니커즈는 Adidas. 스커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는 L’has. 시계는 J.estina. 이어커프는 Portrait Report. 스니커즈는 Adidas. 스커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여성이라면 매달 겪어야 하는 월경 기간 내에 사회적, 신체적 불편함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월경 용품부터 다양해야 해요.

이물감 없는 디스크 모양의 월경컵
듀이랩스 대표 임지원

월경컵은 2017년 생리대 파동을 겪으며 생리대 대체품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사용해왔고 오랜 역사만큼 다양한 모양과 컬러를 만날 수 있다. 듀이랩스 대표 임지원은 한국 여성들도 많은 선택지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월경 용품을 고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지금까지 없던 모양의 월경컵으로 그 포문을 연다.

한국 여성의 신체를 고려한 디자인으로 착용감을 높인 오이사 월경컵.

한국 여성의 신체를 고려한 디자인으로 착용감을 높인 오이사 월경컵.

하퍼스 바자 월경컵을 어떻게 사용하게 됐나요?
임지원 2017년 생리대 유해물질 논란 당시 굉장한 배신감을 느꼈어요. 그때 생리대 대안품을 찾다가 월경컵의 존재를 알게 됐죠. 당시에는 국내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없어서 해외 직구로 구매했는데 신세계였어요. 그동안 축축하고 찝찝한 생리대를 하루 종일 가랑이에 끼고 있어야 했다면 생리를 하지 않을 때처럼 편했죠. 그때부터 월경컵만 사용했어요.
하퍼스 바자 기존 제품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나요? 왜 새로운 디자인을 구상하게 된 거죠?
임지원 여러 가지 모양의 월경컵을 사용해봤는데 제품별로 느낌이 굉장히 다르더라고요. 그중에서 일반적인 벨 타입이 아닌, 원반 모양의 디스크 타입 월경컵은 재질이 얇아 압박감이 덜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잘 맞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서양인의 신체에 맞게 만들어진 제품이라 착용했을 때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죠. 한국 여성의 신체 구조에 맞는 디자인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퍼스 바자 그때 사업까지 생각이 확장이 된 건가요?
임지원 사실 사업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당시 동기 3명과 함께 디스크 타입 월경컵으로 디자인 공모전에 서류를 응모했는데 알고 보니 창업 공모전이었어요. 그런데 서류가 통과돼 사업계획서를 쓰고 상금까지 받게 됐죠. 운이 좋았어요. 창업지원금으로 받은 상금을 사용하려면 증빙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샘플이라도 만들어보자고 한 게 시작이었죠.
하퍼스 바자 월경컵을 만드는 것이 운명이었나 봐요.
임지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현재의 모양을 갖추기까지 개발 기간만 3년, 비용은 3억원 정도가 들었어요. 자금이 부족해 정부에서 주는 창업지원금을 추가로 받고 상금이 있는 어워드나 각종 경진대회에 다 참여했어요. 그렇게 모아도 부족한 비용은 팀원들과 아르바이트로 채우고 끌어모아 충당했어요.
하퍼스 바자 개인 돈을 투자하는 것에 다들 동의했나요?
임지원 여성에게 필요한 제품이라는 순수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성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우리가 지키고 싶은 가치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일치했죠. 저희의 열정을 알아본 주변 친구들도 많이 도와줬어요. 샘플 버전이 1백 개가 넘는데 테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줬죠. 덕분에 여성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월경할 권리를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그렇게 만들어진 월경컵은 어떤 제품이죠?
임지원 ‘포이컵’은 한국 여성의 신체에 맞게 디자인된 디스크형 월경컵이에요. 우리가 아는 벨 모양 월경컵과 달리 자궁경부 생리혈이 나오는 입구에 착용해 떨어지는 생리혈을 바로 받아요. 벨 타입보다 탄성이 적어 부드럽고 질 내부에서 부피가 커지지 않아 압박감이 덜해요. 월경컵 크기가 내게 맞는지 알기 위해 질에 손가락을 넣어 길이를 측정하는 과정 없이 바로 착용 가능하고요.
하퍼스 바자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임지원 제품을 만드는 과정보다 식약처에서 허가를 받는 게 쉽지 않았어요. 기존의 월경컵과 모양이 달랐기 때문에 어떻게 작동하고 얼마나 안전한지 전부 증명해야 했거든요. 이미 검증된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었지만 독성 테스트, 생물학적 실험 등 여러 가지 테스트도 통과해야 했죠.
하퍼스 바자 포이컵을 비롯해 대부분의 월경컵은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드는데 이유가 있나요?
임지원 신체에 삽입돼도 상관없는 안전한 소재이기 때문이죠. 해외에서는 고무처럼 부드러운 TPU(열가소성 폴리우레탄)나 TPE(열가소성 엘라스토머)로 만든 월경컵도 있는데 가격이 훨씬 저렴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월경컵으로 통과된 사례가 없어요. 선택할 수 있는 월경 용품의 폭이 정말 좁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하퍼스 바자 제품을 출시하기까지 겪었던 어려움도 사명감으로 이겨냈나요?
임지원 새로운 월경 용품을 기다리던 여성들의 지지가 컸어요. 저희가 이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SNS를 통해 알렸는데 그때부터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거든요. 저희 제품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 분발할 수밖에 없었죠.
하퍼스 바자 월경 용품의 선택지를 넓히는 또 다른 제품이 기대돼요.
임지원 포이컵 개발 전에 시각장애나 발달장애를 가진 여성을 위한 월경 용품을 구상했어요. 탐폰처럼 사용하는 일회용 월경컵인데 삽입을 보조하는 애플리케이터 안에 밀봉형 월경컵을 넣어 사용할 수 있어요. 질 안에 손가락을 넣지 않아도 탈착이 가능하고 스트랩을 당기면 저절로 밀봉돼 제거시 생리혈이 흐르지 않도록 디자인했죠. 특허도 받았는데 식약처 인증을 받기가 너무 어려워 보석상자 안에 넣어뒀어요.
하퍼스 바자 개인적으로 조금 충격받았어요. 한 번도 장애 여성의 생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임지원 대부분이 그럴 거예요. 저는 대학생 때부터 장애를 가진 여성을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어요. 그분들을 직접 만나 실질적인 불편함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죠. 전맹이신 분들은 생리인지 분비물인지 알기 어려워 생리 일주일 전부터 생리대를 착용하고 발달장애 여성은 생리대를 붙이는 것도 어려워하거든요. 하지만 월경 자체가 불편한 게 아니라 특정 제품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꼭 장애 여성을 위한 월경 용품을 상품화하고 싶어요.

Credit

  • 사진/ 영배
  • 헤어/ 김수정
  • 메이크업/ 안세영, 맹하영
  • 스타일리스트/ 이승은
  • 어시스턴트/ 안나현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