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코르가즘 일으키는 향수 레이어링

향수 페어링으로 나만의 향수 찾기!

프로필 by BAZAAR 2023.11.05
 
재킷은 Versace.

재킷은 Versace.

나만의 향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듯하다. 틈새, 빈틈이란 뜻의 니치아(Nicchia)에서 파생된 니치, 즉 대량 생산이 아닌 틈새의 취향을 고려한 니치 향수 시장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으며 ‘향수 직구의 성지’ ‘나만 알고 싶은 향수’ 등의 콘텐츠는 늘 조회수 상위권에 링크된다. 두 가지 이상의 향수를 겹쳐 뿌리는 향수 페어링 역시 남들과는 다른 향을 갖고자 하는 이들의 응용 버전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향수 페어링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조향사나 향수 제조사들의 의견은 극명하게 나뉘는데 톱, 미들, 베이스 노트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향수를 하나의 작품으로 받아들이고 창작자의 의도를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과 향수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유물, 결국 향을 즐기는 방식도 사적 영역으로 페어링이 향을 누리는 방법 중 하나라면 반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만난 티에리 바세와 프레데릭 말의 표현을 빌리자면 “향에는 어떠한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취향과 방식의 차이일 뿐.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향수 페어링 법칙

그런 의미에서 향수 페어링의 법칙을 제시하는 건 향을 자유롭게 즐긴다는 의도와 어긋날 수 있다. 또 향은 예측불허의 영역. 제이미코리아 대표 오진섭은 “시트러스, 재스민, 우드를 동일하게 사용한 향수라도 원 재료의 출처, 조향 과정, 원료 비율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향수의 계열만을 따져 레이어링한다고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죠.”라고 말한다. 이에 당부하자면, 앞으로 소개될 가이드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칙이나 정답이 아니라는 것. 향은 취향은 물론 감정, 계절, 날씨, 하물며 피부 타입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1. 향수를 입는 방법
레이어링을 통해 향을 즐기기로 결정했다면 먼저 향수의 구성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향수는 보통 톱, 미들, 베이스 노트로 구성되는데 이는 휘발되는 시간에 따라 등장하는 향을 말한다. 톱 노트는 분사했을 때 처음 만나게 되는 향으로 5~15분 후면 휘발한다. 미들 노트(하트 노트라고도 한다)는 이름처럼 향수의 중심이 되며 베이스 노트는 가장 뒤늦게 등장해 가장 오래 지속된다.
조 말론 런던 교육팀 박혜진은 “레이어링 전, 본인이 선호하는 하트 노트에 집중하세요. 향수 페어링의 목표가 색다른 향을 찾는 과정이라고 해도 취향에서 벗어난다면 결국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전한다. 첫 시도라면 존재감이 강한 향끼리 매치하기보단 가벼운 향으로 시작한다. “발향력이 높은 시트러스, 플로럴, 그린 계열의 조합부터 시작해보세요.”
톱 노트는 첫 인상을 결정짓는 만큼 뿌리자마자 코끝을 강하게 자극한다. 따라서 톱 노트가 날아갈 만큼 시간 차를 두고 레이어링하는 것을 노하우로 꼽는다. 향도 성격이 셀수록 누군가와 충돌할 확률이 높기 때문. 또 여러 가지 음식을 동시에 먹으면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는 것처럼 향도 마찬가지라고 조향사 오하니는 말한다.
“제가 선호하는 방법은 프래그런스 샤워 하듯 가벼운 향을 공기 중에 뿌려 몸 전체에 입히고 미들 노트가 등장할 때 즈음 진한 향을 맥박이 뛰는 자리에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박혜진의 팁. 향이 무거울수록 위쪽으로 천천히 발향되므로 하체(대표적으로 치마 밑단이나 발목, 무릎 뒤)에 무거운 향을 뿌려주는 것도 방법이다. 보디 제품과 매치하는 건 공공연히 알려진 공식.
보통은 가벼운 향을 먼저, 무거운 향을 나중에 뿌리라고 권하지만 몸통 앞뒤에 다른 향을 뿌리거나 다음 날 입을 착장에 미리 향을 입혀놓는 방법으로도 즐길 수 있다. 옷을 입을 때 은은하게 남은 잔향이 내가 기대했던, 혹은 선호하는 향이라면? 마음껏 향유하면 된다.
 
2. 향수 매칭 공식
물론 직접 뿌려서 향을 느껴보고 자신에게 맞는 최상의 레이어링 공식을 찾는 게 가장 현명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오하니는 일상을 기록하듯 그날 조합한 향의 무드와 기분, 느낀 감정, 떠오르는 이미지를 메모해보라고 제안한다. (당연히 쉽지 않다는 걸 안다고 덧붙인다.) “향은 기억과 감정의 열쇠잖아요. 좋은 감정으로 기억된다면 성공한 레이어링이라 볼 수 있죠.”
레이어링의 최종 목표도 설정한다. 레이어링의 목적과 추구하는 이미지에 따라 향의 조합이 달라질 테니. 같은 계열을 매치해 향을 풍성하게 즐기거나 상반된 향으로 극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나의 향이 다른 향의 존재감을 묵살하거나 방해하는 건 성공한 레이어링이라고 할 수 없어요.” 박혜진은 말한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레이어링 노하우는 무엇일까? 오하니는 베이스 노트가 비슷하게 설계된 향끼리 매치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전한다. 또 요리에 조미료가 많이 쓰이거나 초보자가 만들었을 때 맛이 없는 것처럼 향수도 전문 조향사가 만든, 설계가 잘 된 향수는 실패 확률이 적다고 강조한다.
향수의 톱, 미들, 베이스 노트의 조합은 이미 조향사가 검증한 공식이다. 톱 노트나 미들 노트에 많이 쓰이는 시트러스, 플로럴, 그린 계열에다가 베이스 노트에 주로 쓰이는 우디, 스파이시, 머스크 계열의 향수를 덧입는다면 조화롭게 융합된다.
“플로럴과 플로럴은 의외로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직접 경험해보며 결과를 느껴보세요.” 오진섭의 설명. 박혜진은 “재스민이나 튜베로즈는 멀리서도 존재감을 드러낼만큼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플로럴 노트예요. 지나치게 개성 강한 향과는 멀리하는 게 좋죠. 꽃향에 꽃향을 더할 때는 단일 플로럴보단 플로럴 부케끼리 매치하는 걸 추천해요.”라고 덧붙인다. 구르망 계열도 레이어링이 까다로운 편인데 묵직하고 차분한 향과 잘못 매치하면 느끼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요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우디 향수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우디야말로 의외로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성질을 가졌다고 말한다. 향수를 매칭할 때 그 이미지를 상상해보는 것도 노하우인데 숲에 핀 은방울꽃, 비가 내려 촉촉하게 젖은 이끼, 나무에 탐스럽게 맺힌 오렌지, 어느 것 하나 부조화된 그림이 없다. 베이스 노트로 자주 사용되는 이유다. “특히 우드에 장미는 색다르고 매력적인 결과물을 풍기죠.” 오하니의 설명. 더불어 대표적인 향수 계열별 추천 매칭 노하우를 참고해보자.
 
 
플로럴 머스크와는 믿고 보는 조합. 관능적인 매력을 높이고 싶다면 우디나 구르망 계열을 매치해보자. 달콤한 향은 때론 섹시함을 표현한다.
 
시트러스 모든 향과 레이어링해도 실패 확률이 적다. 차가운 계절에 활용하고 싶다면 우디 앰버리 계열을 조합해볼 것. 연유나 바닐라 향의 구르망도 추천.
 
프루티 시트러스와 만나면 장점을 극대화한다. 산뜻한 화이트 머스크와 매치하면 솜사탕을 연상케한다.
 
그린 아쿠아나 시트러스와 조합할 때 초원에 우뚝 선 레몬나무, 이슬이 맺혀 있는 초원만큼 싱그러운 모습으로 변모한다.
 
우디 오묘한 매력을 극대화하고 싶다면? 또 다른 우디 향수와 짝을 지어보자. 첫 향은 강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적으로 변모한다. 로즈와의 조합도 중독적이다.
 
머스크 아기 피부에서 날 것 같은 파우더리한 향과 관능적인 느낌을 동시에 가진 머스크. 천사의 향이라고 불린 만큼 모든 노트와 잘 어울린다. 순수한 머스크라면 스파이시한 향을 더해 반전 매력을 즐겨봐도 좋다.
 
구르망 시트러스와 조합하면 레몬 셔벗을 연상시키는 상큼함을 더할 수 있다.
 
스파이시 우디 계열과 매치하면 남성적 강함이 극대화되며 플로럴과는 관능 그 자체다.
 
 

Credit

  • 에디터/ 정혜미
  • 사진/ 김선혜
  • 모델/ 루루
  • 손 모델/ 최현숙, 김한나
  • 헤어/ 안미연
  • 메이크업/ 이솔
  • 스타일리스트/ 강미선
  • 도움말/ 오하니(조향사, <아이 러브 퍼퓸> 저자),
  • 박혜진(조 말론 런던 교육팀), 오진섭(제이미코리아)
  • 어시스턴트/ 김영원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