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삼청동의 지금

지난 일 년간의 크고 작은 움직임이 만든 오늘날의 삼청동.

프로필 by BAZAAR 2023.10.04
 
삼청동 안에서 변화라는 말은 제 갈 길을 벗어나고 만다. 오랜 시간 삼청동은 삼청동이었다. 누가 가라고 떠밀지 않아도 전시를 가려면 제일 먼저 삼청동에 갔다. 해외 관광객이 밀려들어왔을 때도 기꺼이 파도를 함께 탔고, 주춤할 때도 딱히 목적지가 없이 서성댈 수 있는 곳이었다. 한남동이 새로운 예술의 집결지로 떠오르고 구석구석 변화가 일어날 때도 삼청동은 오랜 시간 응집된 고유함이 있었다. 돌을 던져도 잔잔하게 파문이 이는 깊고 넓은 호수 같은 이곳에 새로운 소식들이 생겨났다. 송현 부지가 1백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 미술관이 기반을 옮겼다. 해외 갤러리인 리만 머핀이 떠나고 페레스프로젝트가 새로운 발돋움을 한다. 땅값이 비싸 아무나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동네라고 우스개를 하는 사이 주변부에 개성 있는 작은 공간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자리 잡은 후부터 삼청동의 지형도가 달라진 것 같아요. 미술 애호가들이 특정 장소를 찾는 편이었다면 이제는 문화에 호기심을 가진 이들이 가볍게 발걸음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긴 거죠. 덩달아 주변 미술 공간의 문턱도 낮아졌고요.” 폭넓은 층을 찾아온 뮤지엄한미 관계자는 말한다. 프라이빗하게 소통하던 페레스프로젝트는 삼청동의 역사성과 역동성을 동시에 보았다. “오래된 갤러리와 대형 미술관들 사이에 겉모습은 역사를 간직했지만 내부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들이 많아요. 실제로 젊은 세대들이 찾고 있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개성 있는 작가와 일하는 저희 갤러리로서는 모험심 강한 관람객들이 반가워요. 갤러리의 문을 두드리는 데 저항 없는 외국인의 방문도 눈에 띄는 곳이 삼청동인 것 같아요.” 완곡한 변화는 없어도 반길 만한 변동이 일어나는 지금 삼청동의 모습이다. 
 
열린송현 녹지광장
1백 년 만에 송현동 부지의 담장이 3미터 낮아지면서 삼청동의 시야가 재설정되었다. 기약 없이 방치된 것만 같았던 거대한 폐허는 방해물이 적은 광장이되 꽃과 풀로 채운 녹지로 되돌아왔다. ‘송현’은 사연 많은 땅이다. 조선 초기 소나무숲 구릉지로 경복궁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던 곳에서 일제강점기 ‘송현정’을 거쳐 광복 후 ‘송현동’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몇 번이나 개발이 무산되었던 공간이 변화의 첫 호흡을 내쉰 것이다. 서울광장의 세 배가 넘는 부지는 삼청동의 입구이자 관문으로 모두를 맞이한다. 보행로를 통해 인사동과 북촌을 넘나들어도 좋고 가려져 있던 구석구석의 골목길에서 흔쾌히 방향을 잃어도 좋다. 임시 개방을 마친 후 어떤 공간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 열린송현의 현재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쓰임에서 예술과 함께하는 쓰임을 더해가고 있다.
송현동 48-9
 
※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10월 29일까지 열린다. 
 
페레스프로젝트 서울
독일 베를린에 본관을 둔 페레스프로젝트의 변모는 눈부시게 빨랐다. 작년 4월 개관 20주년 기념으로 신라호텔에 분점을 개관한 지 일 년 만에 근거지를 옮겼다.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펼쳐 보여주리라는 의지는 역사성과 지리의 이점을 가진 삼청동에 닿았다. 페레스프로젝트의 선택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좁은 주택가에 있던 20년 된 건물. 흥미롭게도 설계 당시 언젠가 갤러리로 만들 것을 염두에 둔 듯 1층 층고가 높았으며 20년이라는 시간의 우연도 겹쳤다. 더욱이 송현동 부지가 개방되면서 진정한 삼청동 초입의 갤러리가 되었다. 페레스프로젝트는 촘촘한 주택가 사이의 균형을 해치지 않도록 최소한의 단장을 마친 후 지난 4월 문을 열었다. 넉넉한 공간을 확보해 개관전부터 동시에 두 개의 전시를 열며 관람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그에 화답하듯 컬렉터뿐 아니라 미술애호가와 관광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독창적인 갤러리로 거듭나고 있다.
율곡로1길 37
 
※ 파올로 살바도르 «천에 새겨진 미스터리»와 키얀 윌리엄스 «별빛과 진흙 사이»가 11월 12일까지 열린다.
 
푸시투엔터
창덕궁 담과 맞닿은 골목에는 주택을 개조한 공방과 작업실, 가정집이 이어진다. 상업시설의 규제 덕분에 고요라는 수혜를 얻은 거리다. 보강 공사까지 한 40년 된 건물이지만 링크를 만드는 플랫폼이고자 하는 푸시투엔터는 고민 없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담 쪽으로 난 커다란 창 밖으로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창덕궁 후원이 보이고, 그 앞에는 동그란 탁자가 365일 자리한다. 전시 공간의 반을 차지하는 원탁에는 관람객이 작가나 큐레이터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주변의 작가들이 오며 가며 머무르기도 한다. 중동을 중심으로 미술 현장을 놓치지 않는 김정희 대표는 해외 작가의 스크리닝을 열거나 포럼을 여는 공간으로도 아낌없이 사용한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탁자는 모습을 바꾸고(확장형이었다) 늦은 밤까지 술자리로 이어질 때도 있다. 볼트로 단단히 조인 H빔이 1층과 3층을 잇는 2층에 위치한 것이 숙명이라도 되는 듯 푸시투엔터는 차근차근 ‘링크’를 만든다.
창덕궁길 100 2층 A-2호
 
 
뮤지엄한미 삼청
방이동 한미타워에 있는 한미사진미술관이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뮤지엄한미 삼청이 새로이 터를 잡았다. 스카이라인이 보이던 고층 빌딩의 풍경은 주택과 개울가 근처의 고즈넉한 풍경으로 대체되었다. 관람객을 제일 먼저 맞는 것도 동네를 휘돌아다니는 길고양이들. 그도 그럴 것이 뮤지엄한미는 삼청은 삼청동의 끝에 있다. 민현식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은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으려는 듯 낮고 평평하다. 건물 중심에 ‘물의 정원’이라는 인공 연못을 두고 세 개의 동이 3차원으로 교직한다. 이 독특한 구조는 계단을 통해 전시장과 카페, 후원을 오르내리며 다른 성질의 공간을 자유롭게 향유하게 만든다. 이전하면서 만든 열린 수장고도 획기적이다. 우리나라 근대사를 담은 주요한 사진 원본을 보관하는 저온 수장고에 유리창을 내어 전시 공간으로도 함께 사용한다.
30초 거리에 있는 별관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먼저 삼청동에 자리 잡아 ‘MoPS’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다 뮤지엄한미 삼청별관으로 탈바꿈했다. 삼청본관이 사진사에 획을 긋는 거장을 조명하는 곳이라면 별관은 신진 작가의 전시, 도록과 자료를 보고 세미나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 1970년대 한 건축가의 자택으로 지어졌다가 유치원, 음식점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철갑을 두른 듯한 미래적인 외관과 다르게 내부는 옛 주택의 특징인 낮은 층고와 지금은 보기 힘든 나무 계단 등 일부를 간직하고 있다. 옥상에서 전시가 열릴 때면 작품과 삼청동이 대치하거나 스며든 진풍경이 보인다.  
삼청로9길 45
 
※ 김신욱 개인전 «보물섬»은 10월 13일~12월 31일까지 뮤지엄한미 삼청별관에서 열린다.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테이블이 몇 개 없던 ‘먹쉬돈나’에서 밥을 먹고 허리를 제대로 펴기 힘든 ‘에그’ 2층에서 차를 마시고 전시를 보던 삼청동의 옛 기억이 엊그제 같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김연제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