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11월에는 이 전시를!

11월에는 이 전시를!

프로필 by 손안나 2024.11.04
Erwin Olaf, <Dance in Close-Up_Kammerballett I>, 2022.

Erwin Olaf, <Dance in Close-Up_Kammerballett I>, 2022.

그로부터 1년
2023년 9월 20일, 네덜란드의 사진가 어윈 올라프가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년이 지난 지금 작가의 예술과 삶을 추모하기 위한 전시 «어윈 올라프, 작고 1주기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선천성 폐기종을 앓던 작가는 짧은 삶을 예측하며 자화상 연작을 여럿 남겼다. 2009년 건강한 육체를 갖기 소망하며 “내가 원하는”, 폐기종을 앓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담아 “지금 나는”, 산소 호흡기를 끼고 생활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 “내가 될”이라는 키워드를 녹인 작품 <I wish, I am, I will be>를 발표했다. 작가의 삶 일부가 담겨 더 의미심장한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되었다. 2023년 작고 직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댄스 인 클로즈 업(Dance in Close - Up)> 연작도 마찬가지. 이 연작은 네덜란드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발레안무가 한스 판 마넨의 안무작, <캄머발레>를 촬영한 작품이다. 세계적인 사진가의 죽음 이후 다시 한 번 그의 작품을 새로운 마음으로 맞아보는 시간은 11월 2일까지 공근혜갤러리에서 진행된다.

Hanna Hur, <Sun IX>, <Sun X>, 2024, 패널 위 캔버스에 색연필, 아크릴, 플래시, 안료, 각 152.4 x142.2cm, 2점.

Hanna Hur, <Sun IX>, <Sun X>, 2024, 패널 위 캔버스에 색연필, 아크릴, 플래시, 안료, 각 152.4 x142.2cm, 2점.

균열하는 평면
갤러리 벽에 걸린 격자무늬 캔버스가 마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문처럼 보인다. 한국계 캐나디안 작가 한나 허는 복잡한 화면을 구성하여 보는 이를 현실 너머 초월적인 곳으로 이끈다. 눈에 익숙한 그리드에 시선을 맞추면 일렁이듯 착시효과가 느껴진다. 작가는 먼저 연필로 그리드를 그린 뒤 아크릴, 플래시, 안료를 사용해 신중하고 정교하게 색을 채워나간다. 더디게 움직임을 반복하는 동안 조형의 기본인 선, 색, 형태만으로 평면에 대한 인식이 흔들리는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전 작품에도 꾸준히 등장한, 작가가 ‘천사, 방문자 또는 뮤즈’라고 부르는 인물들이 이번 전시에도 어김 없이 등장한다. 화면 위에 신비로운 에너지를 자아내는 생물의 형태나 여타 배열들이 견고한 그리드에 균열을 가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신작 8점이 전시되는 «한나 허: 8»는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에서 11월 13일부터 12월 21일까지 열린다.

최민영, <하교_Bridges>, 2024, Oil on linen, 170x130cm, 스페이스K.

최민영, <하교_Bridges>, 2024, Oil on linen, 170x130cm, 스페이스K.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후 영국으로 이주한 최민영 작가는 한국에서 보냈던 아득한 유년시절과 현재의 자전적인 기억 사이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얼핏 봐서는 저녁 노을에 물든 한강 어디쯤으로 보이지만 수면에 보이는 돌고래 떼가 현실에서 멀어지는 감각을 선사하며, 얼굴은 닮았지만 머리카락 색이 다른 두 명의 인물은 작가의 성장 과정과 삶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의식과 무의식, 자연과 인공물,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화면에는 작가의 상상 속에서 재탄생하는 인물과 동물들이 관객이자 참여자로서 등장한다. 시간이 멈추어 있는 듯 기묘하고 몽환적인 최민영 개인전은 스페이스K에서 12월 12일부터 2025년 2월 23일까지 열린다.

제이슨 레그·더크 반 깅켈·조이 코가와, <록키 산맥의 동쪽에서>, 2019, 증강현실(AR), 약 50분. 캐나다 국립영상위원회.

제이슨 레그·더크 반 깅켈·조이 코가와, <록키 산맥의 동쪽에서>, 2019, 증강현실(AR), 약 50분. 캐나다 국립영상위원회.

다른 시공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영화는 예술 세계에서 어디쯤 자리할까? 서예, 회화, 조각 등에 비해 비교적 새로운 매체로 여겨지지만,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가 등장한 지도 1백 년이 훌쩍 지났다. 영화는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창작자들은 여전히 도전하고 있다. «순간이동»전은 특정한 시공간과 그 속의 인물에 대해 몰입하여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다. 권하윤, 김경묵, 김진아, 유태경, 랜달 오키타, 리사 잭슨 등 여덟 팀이 참여한다. 제이슨 레그, 더크 반 깅켈, 조이 코가와는 게임의 형식으로 관객에게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김진아는 복합현실 영화와 증강현실 영화를 통해 관객과 작품이 만나는 방법을 다양하게 변주한다. 영상이 보는 만큼의 시간을 가져가는 대신 무엇을 남기는가에 대해 질문하는 «순간이동»전은 10월 18일부터 2025년 2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Nell Brookfield, <Spilt Milk>, 2024, Natural pigment and acrylic dispersion on linen, 76.3x120cm.

Nell Brookfield, <Spilt Milk>, 2024, Natural pigment and acrylic dispersion on linen, 76.3x120cm.

주시하는 눈, 그리는 손
한 여성이 텅 빈 풍경 속에서 차분하게 존재하고 있다.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 있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잠을 자거나, 무언가를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며 기다린다. 런던 출신의 작가 넬 브룩필드는 작업의 출발에 앞서 항상 주변 사람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 관찰을 통해 낯익으면서도 불편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단순히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말해지지 않은 것, 억압된 것, 숨겨진 것까지 반영하는 일종의 강화된 거울처럼 작품을 완성한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형상도 등장하는데 인간에게도 존재하는 동물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는 깊은 색감을 내기 위해 직접 배합한 재료로 세심하게 깃털의 질감과 제스처 등을 그려 더욱 생생한 기운을 전한다. 꿈과 환상에 기댄 현실의 모습을 담은 «Inbetweens»는 두아르트 스퀘이라에서 11월 1일부터 12월 24일까지 열린다.

전현선, <When You Believe HJ 002, HJ 012 et HJ 004>, 2013, Aquarelle sur toile, 200x100cm.

전현선, <When You Believe HJ 002, HJ 012 et HJ 004>, 2013, Aquarelle sur toile, 200x100cm.

강서경, <Mountain #autumn #23-02>, 2023, Acier peint, fil, chaine, roues Approx, 100.3(H)x89.5(W)x39.8(D)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강서경, <Mountain #autumn #23-02>, 2023, Acier peint, fil, chaine, roues Approx, 100.3(H)x89.5(W)x39.8(D)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파리를 향한 인사
아트 바젤 파리의 일환인 «굿모닝 코리아,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는 파리 8구 샹젤리제에 위치한 메종 겔랑에서 열린다. 큐레이터 에르베 미카일로프는 한국을 풍부한 문화유산과 더불어 현대 예술계에서 높고 넓은 위치를 점유하는 나라로 보고 작가를 선정했다. 박서보, 백남준, 이건용, 우국원을 거쳐 이불, 아니카 이와 윤지은, 오묘초까지 거장부터 널리 알려진 작가, 신인 작가까지 두루 꼽았다. 세대뿐 아니라 조각, 비디오, 섬유, 설치미술 등 분야도 다양하게 아우른다. 검은색, 숯의 순수함과 에너지를 상징하는 힘을 보여주는 이배의 <불에서 나온>, 가상공간에서 만들어진 기억의 형태를 보며 시간에 대한 인식을 재정의하는 오묘초의 <바렐 아이즈>, 여성의 형태와 로봇적 요소를 결합한 사이보그를 통해 현대적 정체성의 왜곡된 현실을 탐구하는 이불의 작품 등을 파리 한복판에서 만난다. 10월 16일부터 11월 12일까지.

Mak2, <Home Sweet Home: Love Pool 13>, 2022.

Mak2, <Home Sweet Home: Love Pool 13>, 2022.

혼란 속의 유토피아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개념미술 작가 Mak2의 첫 한국 전시. 환상과 현실, 인간 경험 사이의 경계를 깊이 고찰해오던 작가는 비디오게임 심즈의 디지털 배경과 유머러스한 가짜 뉴스로 한층 초현실적인 회화를 만들어낸다. <와이파이가 내장된 소>라는 작품은 소를 모바일 핫스팟으로 기능하도록 조작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내러티브로 사용한다. 이런 터무니없고 조작된 이야기를 목가적인 생활 공간에 녹여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강조한다. 회화뿐 아니라 설치와 영상도 선보이는 Mak2 개인전은 페레스프로젝트에서 11월 14일부터 2025년 2월 15일까지 열린다.

박의령은 <바자>의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미술 주간 동안 휘몰아치던 전시의 폭풍 속에 있던 게 바로 어제 같은데 또 다시 쏟아지는 새로운 전시 소식을 보며 감탄밖에 못했다.

Credit

  • 글/ 박의령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