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록, 어윈 올라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암스테르담의 나이트 라이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테러, 산소 튜브를 낀 자신…. 어윈 올라프(Erwin Olaf)의 사진작품에는 개인적이고도 정치적인 작가 자신의 삶이 담겨 있다. | 공근혜갤러리,어윈 올라프,Erwin Olaf,사진,사진전

 ━  I AM   ‘I Wish, I Am, I Will Be’, 2009. © Erwin Olaf 네덜란드 아트 신에서 2019년은 어윈 올라프의 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네덜란드 출신 사진작가의 60번째 생일을 맞아 헤이그와 암스테르담에서 여러 전시가 개막했다. 지난봄 헤이그 시립미술관과 헤이그 사진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에는 3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가며 전시 기간이 연장되었고, 네덜란드 국립미술관(Rijksmuseum, 이하 라익스)에서는 9월 말까지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등 네덜란드 회화 거장들의 그림과 올라프의 사진을 비교 감상할 수 있게 한 <12 × Erwin Olaf>가 계속된다. 이 전시는 어윈 올라프의 생일인 7월 2일 개막했다. 전 세계에서 온 올라프의 동료 작가, 컬렉터, 갤러리스트들이 선상 파티를 열고 암스테르담 시내를 수놓은 아름다운 운하를 지나쳐 라익스 미술관에 도착하자 오프닝이 시작됐다. 이번 개인전의 소감을 묻자 작가의 감격에 젖은 마음이 이메일로도 느껴졌다.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크나큰 영감을 준 라익스에서 생일날 전시를 개막하게 되어 정말 행복했어요. 저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Dutch Light’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과 함께 제 작품이 걸려 있다니…! 특히 렘브란트는 이 부분에 있어 마스터라고 할 수 있죠.” 마침 렘브란트 서거 350주년을 맞이해 그의 작품을 1천5백여 점 넘게 가지고 있는 라익스에서는 올해 내내 다양한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12 × Erwin Olaf>에는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누드 드로잉 옆에 연관성을 지닌 올라프의 사진작품이 나란히 걸렸다. 특히 여성용 모자를 쓴 청년들이 포즈를 취한 ‘Ladies Hats’ 시리즈는 렘브란트의 ‘Self-portrait’(ca. 1628)의 빛의 사용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도구의 차이는 있으나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활용해 인물을 묘사한 두 암스테르담 작가의 3백 년을 뛰어넘는 만남이 여름밤 라익스에 초대된 이들에게 퍽 인상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Joy’, Squares, 1985. © Erwin Olaf 어윈 올라프에게 처음부터 네덜란드 회화 전통에서 비롯된 빛의 사용이 중요했던 건 아니었다. 어윈 올라프의 작품집 에 실린 헤이그 게멘테 박물관 큐레이터 로라 스탬프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말했다. “사진 작업에서 빛이 본질임을 깨닫기까지 20~30년이 걸렸습니다.” 전 생애에 걸쳐 올라프의 사진 작업은 작가의 인생을 투영하지만 특히 1980~1990년대의 초기 작품들은 나이트 라이프에 열광하는 게이로서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조엘 피터 위트킨에게서 영향받았고 육체에 대한 감각에 사로잡혀 강렬한 사진을 찍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며 알게 된 친구들에게 자신의 스튜디오에 와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다. 이를테면 ‘Square’(1983-93) 시리즈의 ‘Joy’(1985)에서 솟구쳐 올라 자신의 식스팩을 적시는 매그넘 사이즈 샴페인을 들고 있는 청년은 올라프가 좋아하는 디스코텍 휴대품 보관소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Irene Portrait’, Grief, 2007. © Erwin Olaf 어윈 올라프는 저널리즘 스쿨 재학 시절 선생님에게서 건네받은 니콘 FM2의 육중함과 차가운 금속 느낌이 좋아 글쓰기 대신 사진을 시작했다. 비록 애초 계획대로 저널리스트가 되진 않았지만 경력 초기에 그는 게이 인권 단체에 투고하거나 여러 시사 매거진에서 일했다. 그 때문인지 어윈 올라프의 패셔너블하고 화려하며 매끈하게 매만진 사진 이면에는 시대를 조망하는 예리한 관찰자이자 급진적인 논평가가 보인다. 그는 피부색이나 성 정체성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사회를 생각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테러와 같은 무자비한 폭력에 결연하게 맞설 것을 주장한다. 1990년 작품 ‘Blacks’는 재닛 잭슨의 <리듬 네이션 1814>, 어두운 피부색의 친구가 클럽에서 입장이 제지당한 경험 등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했다. 올라프는 암스테르담 반 룬 뮤지엄 입구의 트롱프뢰유 조형물을 떠올리며 검은색 세트에 검은색 의상, 검은색 분장으로 도배한 인물 사진을 선보였다. 이때부터 그는 세트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레퍼런스 체크 담당자 등과의 협업 속에서 바로크 스타일의 예술적 아이덴티티를 찾아갔다. 2000년에 선보인 ‘Royal Blood’ 시리즈는 어윈 올라프의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그는 당시 신기술인 포토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시시 황후부터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다이애나 비까지 비극적인 삶을 산 왕족을 새하얀 의상과 새빨간 선혈로 표현했다.     ‘Masonic Lodge’, Berlin, 2012. © Erwin Olaf 2001년 9·11 테러 이후 어윈 올라프는 사색의 시간을 가질 필요를 느꼈다. 그때 네덜란드 고전주의를 새삼 공부했고 일상적인 미국인의 생활을 대중적으로 표현한 노먼 록웰을 비롯해 1940~50년대 사진작가들을 떠올렸다. “9·11이 있고 난 후 몇 년 동안 서구사회는 거의 마비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액션’과 ‘리액션’ 사이에 있었어요. 펑 하는 폭발음을 듣는 순간과 ‘어, 저게 뭐지?’ 하고 반응하는 순간, 그 사이라고 할까요.” 올라프는 그 사건을 내면화하고 자기 식대로 소화해 ‘Rain’(2004)과 ‘Hope’(2005) 시리즈를 발표했다. ‘Grief’(2007) 시리즈는 “어떤 사건이 완전히 인식된 바로 다음 순간”을 다룬 작품이다. 누군가가 열쇠 구멍을 통해 다른 방을 보고 있는 듯한 뒷모습을 담은 ‘Keyhole’(2011-13) 시리즈는 현대 사회의 관계들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점점 더 가까이에 살지만 점점 더 서로를 모르게 되고 있습니다.” 이후 변화하는 세상을 세 도시를 통해 살펴보는 로케이션 시리즈가 나왔다. 그동안 올라프의 세계는 조명이 구석구석 환하게 비추는 스튜디오에서 창작되었다. “저는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디렉팅하는 사진가였어요. 하지만 외부에서 촬영을 할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로케이션, 날씨뿐만 아니라 사진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이 너무나 많았죠. 스튜디오 밖에서 촬영을 하기 위해 제가 해왔던 방식을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어윈 올라프는 ‘Berlin’(2012), ‘Shanghai’(2017), ‘Palm Springs’(2018)를 위해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다. “완벽해 보이는 세계가 내포하고 있는 균열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3부작 로케이션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의 배경인 팜스프링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고급 휴양지다. 화려한 파라다이스를 배경으로 작가는 인종 차별, 종교적 학대, 부의 양극화 등 사회·정치적 갈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The Kite’, Palm Springs, 2018. © Erwin Olaf 어윈 올라프는 얼마 전 세 도시 시리즈, 커리어의 변곡점을 만들어준 중요한 작업들, 1980년대 초기 작업까지 연대기 순으로 집대성한 4백 페이지 분량의 작품집 을 펴냈다. 사진집 첫 장에는 ‘Dedicated to my mother’라고 적혀 있다. “‘Palm Springs’를 촬영하기 위해 미국에 머물 때 요양원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촬영하면서 내내 어머니를 생각했죠. 어머니가 저의 수호천사가 되어 제가 잘못되지 않도록 도와주고 인도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얘기를 듣자 ‘Palm Springs’ 시리즈의 내러티브에 또 하나의 레이어가 겹쳐졌다.   ‘Shanghai, Fu1088, Portrait 01’, Shanghai, 2017. © Erwin Olaf 어윈 올라프의 정치적이고 고전적이며 또 혁신적인 작품들은 결국 개인적인 의미로 수렴된다. 실제로 그는 40여 년 동안 꾸준히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었다. 자신의 얼굴에 정액을 뿌리고 찍은 첫 셀프 포트레이트부터 드래그 복장을 하고 찍은 것, 프랑스 정치 주간지 <샤를리 앱도>가 공격을 당한 후 표현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자 찍은 ‘Tamed’와 ‘Anger’(2015) 이면화, 그리고 ‘I Wish, I Am, I Will Be’(2009) 삼면화 등이 있다. 유전적인 폐기종을 앓고 있는 어윈 올라프는 이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싸웠다고 말한다. “‘I Wish’는 농담 같은 거예요. 멋진 몸을 가진 젊은 남자에게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해서 찍은 가슴 부분을 제 사진에 합성했죠. ‘I Am’은 현재의 접니다. ‘I Will Be’는 산소 튜브를 끼고 있는 나의 미래 상태를 담은 작품이죠.” 지금도 장거리 비행을 할 때면 산소 튜브를 껴야 하고, 건강 때문에 장편영화 작업을 포기해야 했지만 어윈 올라프는 앞으로도 사진으로 삶을 기록하는 일을 놓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사진 작업을 통해 알게 되거든요.”     ※ 2012년부터 어윈 올라프의 작품을 한국에 꾸준히 소개해온 공근혜갤러리는 그의 최신작 ‘Palm Springs’(2018) 시리즈와 13개의 스크린이 연결된 비디오 설치 작품 ‘The Troubled’(2016)를 9월 5일부터 10월 6일까지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