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루이 비통 비저너리 서울에서 무라카미 다카시를 만나다

언제나 판타지 안에서 살아온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지난 20여 년 동안 루이 비통과 걸어온 길을 회고했다.

프로필 by 손안나 2025.12.22

THE NEW JOURNEY


마침내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Louis Vuitton Visionary Journeys Seoul)이 문을 열었다. 이 특별한 장소에서 루이 비통과 예술적 동행을 이어오고 있는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를 만났다. 그가 말하는 하우스의 창의성과 장인정신 그리고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되고 있는 놀라운 파트너십에 관하여.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테스트 룸에서 로봇 루이즈가 루이 비통 가방과 트렁크의 내구성을 실험하고 있다. 완벽한 품질에 대한 하우스의 집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테스트 룸에서 로봇 루이즈가 루이 비통 가방과 트렁크의 내구성을 실험하고 있다. 완벽한 품질에 대한 하우스의 집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퍼스 바자 지난 10월, 아트 바젤 파리에서 관람한 ‘아티카퓌신 VII – 루이 비통 × 무라카미 다카시(Artycapucines VII – Louis Vuitton × Takashi Murakami)’ 컬렉션을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오프닝 이벤트에서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패션과 예술은 때때로 장소성을 초월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장소의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무쌍하게 달라지기도 하죠. 파리의 그랑 팔레와 LV 더 플레이스 서울, 신세계 더 리저브 내에 자리한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은 여러모로 전혀 다른 공간입니다. 창작자로서 이곳의 장소성을 어떻게 느끼나요?

무라카미 다카시 최근 몇 년간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고 특히 아시아 안에서 서울이 패션을 이끄는 목소리가 되었죠. 그런 면에서 서울은 저를 겸허하게 만드는 도시예요. 제가 가장 의견을 듣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고 느꼈던 사람들이 바로 이곳에 있으니까요. 제가 진화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곳에 오기를 고대했답니다.

하퍼스 바자 컬렉션을 보고 제가 느낀 첫 번째 감정은 설렘이었습니다. 마치 2003 S/S 멀티컬러 모노그램을 선망하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20여 년 만에 루이 비통과 다시 협업하는 소감이 어떤가요? 세월의 변화를 체감하나요?

무라카미 다카시 이번 협업은 정말이지 루이 비통의 CEO 피에트로 베카리와의 우정 덕분이랄까요. 그가 관대하게 저를 초대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 관계가 돈독한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비티의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20여 년 전 처음 루이 비통과 협업했을 때, 저는 패션이라는 게 무엇인지 도통 모르는 사람이었는데요. 그래서 패션쇼에도 치노 팬츠 같은 걸 입고 가서 루이 비통 재팬의 관계자들께서 조금 웃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입게 되었다는 게 가장 달라진 점인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그 정도일 뿐 큰 변화는 없었어요. 어쩌면 제가 언제나 판타지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하퍼스 바자 레트로, 빈티지라는 개념이 유행하면서 최근엔 과거의 상품을 아예 똑같은 디자인으로 복각해서 출시하는 경우가 흔해졌습니다만 올해 초 출시한 루이 비통 × 무라카미 다카시 리에디션은 이런 흐름과는 거리가 멀죠. 과거의 아이코닉한 작품에 현재성을 담기 위해 고심한 지점이 있어 보여요.

무라카미 다카시 어떤 면에서는 과거의 것을 되살리는 작업이었지만, 어떤 면에선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작품의 모든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데이터의 형태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협업의 처음부터 매우 구체적이었어요. 과거의 협업들이 다소 추상적이었다면, 이번엔 양측 디자이너들이 매우 세밀하고 긴밀하게 조율했어요. 저에게 이번 협업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이었어요.

무라카미 다카시가 ‘아티카퓌신 VII - 루이 비통 X 무라카미 다카시’ 컬렉션을 살펴보고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아티카퓌신 VII - 루이 비통 X 무라카미 다카시’ 컬렉션을 살펴보고 있다.

하퍼스 바자 제프 쿤스는 루이 비통과 협업하면서 장인들의 솜씨에 감탄했다죠. 당신의 경우엔 어땠나요?

무라카미 다카시 카퓌신 BB 골든 가든(Capucines BB Golden Garden)을 예로 들자면, 엠보싱을 만들고, 가죽에 금박을 입히고, 다시 그 위에 코팅을 하고…. 심지어 그 코팅에 사용되는 용제와 마감재에 이르기까지 최첨단이죠. 이번 ‘아티카퓌신 VII – 루이 비통 × 무라카미 다카시’ 컬렉션을 통해서 하우스에 집약되어 있는 기술의 폭과 깊이를 목격하고 정말 놀랐습니다. 저희도 가방과 의류를 만들지만, 그 정도 수준의 최신 기술은 전혀 몰랐어요. 특히 20년 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테크놀로지의 격변이더군요. 이 업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어요. 하우스의 공방에서는 아직 대중에게 공표되지 않은 실험적인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본 적 없는 소재, 본 적 없는 사고방식 같은 것들이죠. 무엇보다 창의성의 측면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저희 공방도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하퍼스 바자 올해 초 공개된 캠페인 영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신이 핑크색 휴대폰을 뉴욕에서 캠페인 촬영 중인 젠데이아에게 보내고 그녀가 그 휴대폰 속 메시지를 확인하고 미소 지어요. 사실 이 핑크색 휴대폰은 2003년과 2009년 하우스와 협업한 단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아야’의 것이죠. 올해 초, 당시 선보였던 단편 애니메이션의 리마스터링 버전이 공개됐어요. 아야 또래의 소녀들은 젠데이아처럼 현재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20여 년간의 시간 여행이죠. 이 작품에 어떤 철학을 담고 싶었나요?

무라카미 다카시 처음 마크 제이콥스에게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이유가 있어요. 루이 비통 매장을 찾는 이들 중에는 아이들도 있는데, 저는 그 아이들에게 루이 비통의 세계를 각인시키고 싶었거든요. 아이들은 금세 자라니까 언젠가 그들이 루이 비통의 미래 고객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마크에게 반쯤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죠. 이는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였어요. 데뷔 직후에 저는 미스터 도브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판매했어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고 제 회화나 조각을 구매하는 컬렉터들로부터 “어릴 때 아버지가 미스터 도브 티셔츠를 사주셨는데, 이제는 여유가 생겨 원작을 사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꽤나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접점을 만드는 일이 미래를 구축하는 데 중요할 수 있다고 마크에게 말했던 거예요. 이번 협업에서 루이 비통과 함께 그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재해석하고 젠데이아를 통해 실사로 구현했습니다. 젠데이아는 SF 영화에도 자주 출연하는 배우이다 보니 시간이라는 경계를 초월하는 감각이 아주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제 입장에서는 정말 탁월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죠.

하퍼스 바자 물론 아이들은 미래죠. 그런데 저처럼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 여행이 미래성을 담보할까요?

무라카미 다카시 인지학의 핵심은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이라고 해요. 예를 들어, 미래의 당신이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거나, 낯선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거나, 기타리스트나 화가가 되었다고 상상해보는 거예요. 이런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면 현재가 변화한다고 믿는 것이 인지학의 요체이고 일본에서는 이미 중요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미래가 멀고 손이 닿지 않는 시간대에 존재한다고 여겨졌어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다릅니다. 아무리 비현실적인 말을 내뱉는다고 할지라도 그런 미래를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를 손에 잡힐 듯 느끼게 만듭니다. 이것이 현대의 감수성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저에게 미래는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뿐이지만(웃음) 저보다 젊은 세대는 30년, 40년 전의 제 세대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미래를 붙잡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하퍼스 바자 2003년 루이 비통을 위해 제작한 모티프와 캐릭터를 회화와 조각 작품으로 전시한 전시 «Superflat Monogram»은 미술계에서 일종의 사건이기도 했어요. 루이 비통과의 협업이 창작자로서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요?

무라카미 다카시 올해 5월 뉴욕의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우키요에와 만난 자포니즘 아티스트들을 주제로 삼았어요. 예를 들어 모네나 고흐 같은 작가들이 우키요에를 처음 접하고 왜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제 머릿속에서 그 여정을 다시 더듬어보는 과정이었어요. 자포니즘은 결국 서구 미술에서 추상으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다다이즘처럼 예술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움직임까지도 촉발했어요. 그 지점을 깊이 파고들면서 제게 해답이 된 것이 바로 루이 비통과 함께 만든 멀티컬러 모노그램이나 모노그램 위에 피어나는 꽃 같은 작업들이었잖아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루이 비통과의 협업이 저에겐 참으로 운명적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기원 룸. 루이 비통의 깊은 역사와 아카이브를 마치 여행하듯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기원 룸. 루이 비통의 깊은 역사와 아카이브를 마치 여행하듯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퍼스 바자 당신은 한 인터뷰에서 “아트와 패션의 차이는, 바로 지금 결과를 내는가, 아니면 미래에서 본 현재를 표현하는가의 차이”라고 말한 적 있어요. 그런데 저는 오늘날 패션과 예술의 시차가 점점 좁혀지는 것 같다고도 생각합니다. 패션계와 예술계에서 공히 사랑받는 당신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두 세계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요?

무라카미 다카시 제 세대는 주로 예술과 패션을 뒤섞고자 했어요. 만약 제가 20대나 30대였다면 패션과 예술의 간극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좁혀지는 이 시대에서, 반대로 둘 사이의 예술적 차이를 표현하는 일에 집중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요즘 제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AI의 부상과 그로 인해 가능해진 음악 제작이에요. AI로 곡의 기본 구조를 만들고, 그것을 음악가가 연주하게 한 뒤, 다시 디지털로 해체하고 재조합해 새로운 음악으로 만드는 방식이죠. 저는 지금까지 시각예술가로 활동하면서 음악가에게 어떤 이미지에 맞는 곡을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을 뿐, 음악을 직접 만들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가능해진 시대죠. 시각예술과 음악이 그렇듯 시각예술과 패션의 간극도 그렇게 점점 좁혀지고 있어요. 두 세계는 필연적으로 더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당장은 이러한 융합을 단번에 꿰뚫을 완벽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을지라도, 언젠가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기를 바라며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해요.

하퍼스 바자 “여행이란 ‘저쪽 세계로 가는 것’으로, 일종의 각성한 세계 같은 겁니다”라는 당신의 말에 비추어보면, 패션과 예술을 넘나드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루이 비통과 함께한 이번 여행은 어떤 여정이었나요?

무라카미 다카시 천체물리학에는 우주가 극도로 차갑게 식어버린 뒤 ‘의식의 에테르’로 가득 채워질 것이라는 가설이 있어요. ‘여행’이라는 개념을 넓게 보면, 우리의 의식 자체가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로 확장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루이 비통과 협업하면서, 또 최근 하우스가 캠페인을 전개하는 방식을 보면서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20년 전만 해도 루이 비통은 사막 같은 세계 곳곳의 이국적 장소를 보여주며 물리적 공간을 여행하는 듯한 이미지를 제시하곤 했어요. 이제 그런 방식은 사라졌죠. 대신 이번 프로젝트처럼 거대한 터널, 시간 여행, 의식의 확장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중심이 되었어요. 말하자면, 지금 루이 비통에게 ‘여행’은 어느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 가는 단순한 이동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보다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열어젖히는 여정에 가까운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SF적 세계관이 하우스의 내러티브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큰 깨달음이었죠.

하퍼스 바자 다시 시간 여행을 떠나보죠. 2002년 생애 첫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마크 제이콥스를 만나러 가던 날로 말입니다. 당신은 그때도 이미 유명한 아티스트였지만, 루이 비통과의 협업을 기점으로 작가로서 새로운 분기점을 맞은 것도 사실입니다. 마크를 만나러 가는 길, 비행기를 타기 전의 자신을 만난다면 스스로에게 무슨 조언을 해주겠어요?

무라카미 다카시 “마크 씨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짧으니까 사진을 많이 찍어 둬”라고 말할 것 같아요.(웃음)

Credit

  • 사진/ ©Louis Vuitton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