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만 머핀 서울에서 2022년 6월 30일부터 8월 20일까지 열린 캐서린 오피 개인전 «나의 해안에서 당신의 해안으로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 전경. Photo ⓒ OnArt Studio
서울에 지점을 내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갤러리들의 각양각색 운영방식을 돌아보며 마크 글림처의 말이 그저 듣기 좋은 수사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속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세계가 그리는 복잡하고 난해한 무늬를 정체성으로 조합해나가는 갤러리들은 그 어떤 치밀한 전략을 세워도 우연적이거나 운명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미술 생태계 안에서 때론 본능적으로 때론 원칙에 따라 비전을 좇을 수밖에 없다.
2019년 4월 한남오거리 부근에 문을 연 VSF는 태생적인 조건들로 말미암아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가 동시대 미술이 추구하는 ‘시대정신’과 조우하게 된 흥미로운 갤러리다. 미술사를 공부한 한국계 미국인 에스더 김 바렛이 현대미술의 수도인 뉴욕을 떠나 L.A에 작은 예약제 갤러리를 연 게 2012년. 얼마 후 L.A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데스티네이션이 되었다. L.A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작가 빌리 알 벵스턴과 에드 루샤 2인전으로 서울에 갤러리를 오픈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L.A에 위치한 우리는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을 공유한다. 아시아가 향후 미술시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거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에 이 방향으로 성장해나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 전 나의 부모님은 새로운 기회를 위해 미국으로 왔다.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한국은 크게 발전했고 이제 서양이 한국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리즈에서 니키 리의 정체성 ‘프로젝트’ 연작 앞에서 다시 만났을 때 에스더는 “텍사스 댈러스에서 학교 내 유일한 아시아계 소녀였던 나에게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코리안-아메리칸’이라는 내 정체성이 한국과 미국 그리고 더 넓은 세계와의 연결을 도모하는 ‘브리지’로 작용한다는 걸 갤러리를 하면서 실감했다.” 의도치 않게 개척자 정신을 발휘해온 에스더는 자신과 같은 세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직원, 작가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한국 미술계에 들어와 ‘테이크 어드밴티지’ 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 L.A와 서울에서 순차적으로 열릴 조각가 이동훈의 개인전은 브리지 역할이 실현되는 자리가 될 것 같다.

에스더 김 바렛(Esther Kim Varet) VSF 대표. Photo ⓒ Coley Brown

페레스프로젝트 서울 전경.
키아프 마지막 날, 탕 컨템포러리 아트 부스에서 일본 3세대 회화 작가를 대표하며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에가미 에츠를 만났다. 올해 4월 탕 컨템포러리 아트는 송은아트스페이스에 둥지를 틀고 개관전으로 중국 대표 작가인 자오자오의 한국 첫 개인전 «Parallel Affinity»를 선보였다. 송은이 헤르조그&드 뫼롱이 설계한 건축물로 옮겨간 후였다. 1997년 방콕에서 개관한 탕 컨템포러리 아트는 베이징, 홍콩에 이어 서울을 택했다. 아이 웨이웨이를 비롯해 유에민쥔, 우국원, 황용핑 등 아시아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선보이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갤러리로 아트바젤 홍콩에 가면 항상 방문하던 곳이었다. 현재 도쿄 출신으로 베이징에서 공부한 94년생 라이징 스타 에가미 에츠 개인전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뉴욕에 방문해 큐레이터들을 만나고 돌아왔다는 그녀는 “전 세계 미술계가 다양성을 중시하는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는 와중에 아시아에 대한 주목도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기존의 현대미술은 백인 남성 위주였는데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등을 비롯해 모마 같은 서구 대형 미술관의 컬렉션에서도 발 빠르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시아 작가, 특히 아시아 여성 작가들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스프루스 마거스 베를린에서 2017년 9월 16일부터 2018년 1월 20일까지 열린 바바라 크루거 개인전 «Forever» 전경. Photo ⓒ Timo Ohler

탕 컨템포러리 아트 서울에서 2022년 9월 1일부터 10월 8일까지 열린 에가미 에츠 개인전 «Rainbow» 전경.
안동선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작가를 지원하고 양질의 전시를 열고 판매를 도모해야 하는 갤러리스트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3위 안에 든다고 생각해 늘 갤러리에 가면 비하인드 신을 채집하느라 눈을 가늘게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