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ni Horn, 〈Water Double〉, 2017–2019, Solid cast glass with as-cast surfaces with oculus, two parts, 131.4x142.2cm each. Roni Horn, 〈Water Double〉, 2017–2019, Solid cast glass with as-cast surfaces with oculus, two parts, 131.4x142.2cm each . Roni Horn, 〈Water Double v.4 (detail)〉, 2016–2019. Solid cast glass with as-cast surfaces with oculus, two parts, 132.08x142.2cm each. © Roni Horn.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by Jjyphoto. © He Art Museum
나선형 계단이 이어진 미술관에는 작가의 회화·영상·조각 등 50여 점을 망라한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반복적인 인물 사진으로 둘러싸인 전시실에 들어서면 시작과 끝의 경계는 모호해지며 입구와 출구의 개념은 사라진다. 한편 짝을 짓는 유리 기둥은 친밀한 환경을 조성하며 관람객과의 대화를 이끈다. 전시장을 들여다보면 사물의 동일한 경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것은 로니 혼이 이번 개인전을 위해 창조한 판타지다. ‘작가와의 대담’에서 〈바자〉와 나눈 이야기를 공유한다.
Roni Horn, 〈Dead Owl (Two Iris)〉, 1997, Prints, 29x29 cm. ⓒ Roni Horn. Courtesy of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Roni Horn Studio. Photo: Francois Deladerriere
아이슬란드의 물과 빙하, 대지와 날씨를 당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You are the Weather〉에 투영했듯이, 여행은 당신의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번 중국 방문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환경이 작가의 작업에 감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 역시 아이슬란드가 작업 인생을 바꿀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삶을 충실히 살았을 뿐이다. 나는 익숙하지 않는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주로 그림 그리는 방법을 고수한다. 매일 새로운 점을 발견하며 드로잉으로 담는다. 결국엔 예술이 나의 삶을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드로잉은 나의 초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관계 설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개인전 역시 큐레이팅에 직접 참여했음을 밝혔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나선형 형태의 미술관 공간이 어떤 영감을 주었나?
우선, 나의 작업 일대기를 이토록 멋진 건축물에서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의 첫인상은 마치 놀이동산과도 같았다. 다양한 기하학적 구조의 방, 벽의 각도, 빛의 방향 등 모두 예상을 뛰어넘었다. 건축적 특징들이 큐레이션에 영감을 줬다. 각 전시실마다 다른 전시 풍경을 연출하며 관람객에게 서프라이즈를 선물하고자 했다. 예측 불가능 속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동시에 나의 판타지 역시 실현할 수 있었다. 나는 늘 사진 컬렉션으로 방의 둘레를 감싸 원을 형성시키는 큐레이션 방식을 시도하고 싶었다. 이는 입구와 출구를 겹치며 시작과 끝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데, 궁극적으로 사건의 순환을 의미한다. 늘 중요시했던 ‘시퀀스’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You are the Weather〉 시리즈를 선보인 전시실이 그 예시 중 하나다.
대형 유리 조각 〈Water Double〉 네 쌍이 관람객을 처음으로 맞이한다.
나의 조각 및 질량(mass)를 완벽히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창조한 작품 중에서 가장 거대하고 무겁다. 높이 약 1백31cm에 넓이 1백42cm, 무게는 무려 4천5백 킬로그램이다. 130℃의 뜨거운 유리물이 틀 속에서 고체로 변하는 과정을 거쳤다. 보통 3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무려 8개월이 걸렸다. 미술관 내부로 들여오기 위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웃음) 크레인을 특별히 커스터마이징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종종 이것을 ‘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불’에 더 가까운 물체이다. 이들 작품 주변을 걷다 보면 투명성에 대한 일종의 환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조각작품을 효과적으로 선보이기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한 요소는 무엇이었나?
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는 요소는 자연광이다. 인공조명은 색감과 모양, 무게 등 조각이 지닌 복잡한 정체성을 투영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작품 의도를 파괴한달까. 조명을 최소한으로 설치한 이유다. 때문에 빛이 어떻게 투영되느냐에 따라서 각기 다른 감각을 유발한다. 하지만 맞고 틀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밝든 어두컴컴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늘은 비가 오는데 화창한 날씨였던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을 것이다. 사물의 ‘동일한 경험’이란 없다고 믿는 나의 철학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2파운드 순금을 빛나는 직사각형 매트로 압축한 〈Gold Field〉에 햇빛이 내리비칠 때의 모습을 가장 사랑한다.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당신의 사진·드로잉·조각·인스톨레이션 작품들은 서로 짝을 짓거나 규칙적인 배열을 이루며 깊은 사유와 침묵의 긴장감을 배경으로 이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는 ‘더블링(doubling)’ 전략이 더욱 도드라져 있다.
그렇다. 나는 오래전부터 작품 하나만으로 관람객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한 쌍을 이루는 형태에 대한 아이디어에 도달하게 됐는데, 이것은 작품이 관람객을 배척하는 느낌을 덜어내며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블링’은 작품 간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이자 정체성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금 되짚고 싶었다. 한 쌍의 구리 조각, 네 개의 정체성을 가진 동일 인물의 인물사진 컷, 한 쌍의 같은 모습의 오브젝트가 하나의 유닛으로 분류된 물체, 다른 매체지만 하나로 묶여 있는 조각 등. 모두 다른 방법론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 〈You are the Weather〉는 1995년도와 2010년도의 사진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2010년에 15년 전과 동일한 장소를 방문해 동일한 모델과 동일한 방법으로 촬영했다. 그 미묘한 차이에서 어떤 서사가 펼쳐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시를 들자면 〈Key and Cues〉. 에밀리 디킨슨의 텍스트가 새겨진 조각을 읽는 행위는 관람객을 새로운 장소로 이끈다. 물리적 공간이 아닌 상상으로나마 말이다.
※ «A Dream Dreamt in a Dreaming World is Not Really a Dream...but a Dream Not Dreamt is.»는 광저우 허미술관에서 10월 7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