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 톱은 Courrèges by Farfetch.
롱 코트는 Alyx by Yoox. 탱크톱은 16만원대 Courrèges by 110 Corso Como. 레더 팬츠는 Bottega Veneta. 오른손에 착용한 팔찌, 반지는 모두 Fred. 왼손에 착용한 반지는 모두 Bulletto. 선글라스는 60만원대 Off-White™. 슈즈는 Valentino Garavani.
벨벳 소재 수트는 Marni. 목걸이는 690만원대, 오른손에 착용한 팔찌는 1천만원대, 왼손의 팔찌는 7백만원대 모두 Cartier. 안경은 31만원 Gentle Monster.
터틀넥, 팬츠, 부츠는 모두 Prada. 비즈 목걸이는 26만8천원, 체인 목걸이는 59만8천원 Bulletto. 반지는 Chrome Hearts.
슬로바키아에 있는 줄만 알았는데 잠시 서울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 어쩐 일인가?
솔직히 작년까지만 해도 연기를 하고 싶다는 갈증이 없었다. 아, 이렇게 이쪽 세계와 점점 멀어지겠구나, 배우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겠구나. 복잡하게 고민하고 싶진 않았고 운명이려니 그저 인정하고자 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내 안의 무언가 달라졌다. 연기가 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서울에서 열심히 시나리오를 보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전략이나 콘셉트를 정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일단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순수하게 연기가 하고 싶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올해 초, 가족과 잠시 한국에 머물렀다. 그때 아내가 제3자의 시선으로 이곳에서 사람들의 환대를 받는 나를 지켜봤던 것 같다. 어느 날 밤 내게 말했다. “사람들이 너를 좋아해.” 그 말이 큰 울림이 되었다. 지금껏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나? 내 입장만 생각했나? 받은 사랑을 공유할 줄 몰랐구나 돌아봤다. 감사함이 아니라 겸허함이었달까. 그 말이 유독 와닿은 건 아빠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대 싱글이었다면 아마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빠가 된 것은 당신에게 어떤 변화였나? 남들처럼 우주가 뒤집힐 만한 사건이던가?
너무 커다란 변화라 1~2년 정도 소화의 시간이 필요했다. 혼란스럽고 고민스럽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진정해야겠다 싶더라.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거든. 조용히 흐르는 시간을 느끼며 비로소 나의 역할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행복의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빠 말고 인간 류승범의 자아는 어디로 갔나?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자아가 없어진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박살났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의 세상에 어른만 있었다면 지금은 정확히 반대다. 〈무빙〉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예전에는 남자와 여자, 인간의 고뇌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제는 가족 이야기, 부모의 심정 같은 게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는 이제 고작 세 살이지만 나에겐 지금껏 보지 못한 세계가 꼭 그만큼 확장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승범이라서 결코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무엇인가? 당신을 두고 “변한 것 같지만 가장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한 배우”라는 평이 따랐던 게 기억나서.
변하지 않는 부분과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 변하지 않는 건 나의 확고함이다. 아빠의 역할 안에서는 타협해야 할 것들이 있겠지만 일단 나는 하고 싶으면 해야 하고 확신으로 움직인다. 이런 나를 이해해주는 아내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부분은 나의 순수성이다. 나의 순수성을 세상에 뺏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완전하게 순수한 존재인 아이와 있다 보면 유난히 그 점을 실감하곤 한다. 우리는, 아니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변한 걸까. 더이상은 타협하고 싶지 않다. 지금껏 남아있는 순수성을 잘 지켜가고 싶다.
이런 시대에 순수성을 지키며 산다는 건 투쟁에 가까운 일이다. 여행, 이민, 결혼, 육아 등등…. 당신 인생의 새로운 선택들도 결국은 좋은 인간으로 살아내기 위한 분투이자 방책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여러 갈래의 삶을 모색한 끝에 무엇을 발견했나?
나는 머리와 몸이 같이 가는 사람이다. 생각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원히 철학가나 망상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좋으면 해야 하고 싫으면 그만둬야 한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경험했다. 이제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명확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예전에는 막연하게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해야 착하게 사는 것인지 알고 있다. 안착했으니 구체적으로 이행하다가 자연히 소멸하면 될 것이다.
그물 톱은 Courrèges by Farfetch. 팬츠는 41만8천원 Recto. 슈즈는 Celine Homme. 주얼리는 모두 Tiffany & Co..
셔츠, 니트 톱, 팬츠는 모두 Dries Van Noten. 진주 펜던트 목걸이는 Vivienne Westwood.
대중이 꼽는 당신의 대표작은 주로 다음과 같다. 〈베를린〉 〈부당거래〉 〈사생결단〉 〈아라한 장풍대작전〉 〈품행제로〉. 당신의 아픈 손가락은 어떤 작품인가?
아픈 손가락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희한한 게 나는 흥행작이 없는 배우다. 스코어로 따지면 그렇다. 대단한 흥행을 목표로 한 건 아니지만 기대는 했다. 매번 흥행이 안 될 때마다 조금 섭섭했다. 내가 이 필드와 맞지 않는 사람인가. 내가 작품을 잘못 선택하나. 내 성향이 아웃사이더인가 같은 고민도 따랐다. 그런데 그 리스트에 〈주먹이 운다〉는 없나?
그게 지금 내가 하려던 말이다. 류승범의 최고작은 〈주먹이 운다〉라고 주장하는 쪽이라.
나를 배우의 세계로 잡아당긴 작품이다. 수차례 돌려볼 만큼 좋아했던 〈올드보이〉의 주인공이 고작 25살인 내 앞에 턱 서 있었다. 최민식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했고 심지어 작품 안에서 같은 무게 추를 가져가야 했다. 사실 도망가려고도 했다. 나중엔 거의 발악이었지. 그 영화를 다시 보면 짠하다. 내가 어떻게 최민식 보다 연기를 잘할 수 있겠나? 그게 안 되니까 어린 애가 그냥 오기로 밀어붙이더라고. 이 작품을 통해 그전에는 몰랐던 내 안의 엄청난 에너지를 발견했다.
이십대가 오기이고 객기였다면 삼십대는 혼돈이었을까. 〈수상한 고객들〉 개봉 당시 서른한 살 류승범은 이렇게 토로했다. “지금은 혼란한 것 같다. 내 성격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비뚤어져 있다. 엇나가 있다. 이런 비뚤어짐에 기름을 칠하고 갈고 닦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인다운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굉장히 솔직했네.(웃음) 방금 그 말을 듣고 내가 왜 떠났는지, 그 혼란이 무엇이었는지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역시나 순수성을 잃어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고통이고 괴로움이었다.
게다가 빨리 나이 들고 싶었나 보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정쩡하다”며 “배우가 진정성을 가지는 나이는 사십대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런 얼굴로 바뀌었는지 역추적해서 사십대의 얼굴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었다.
사십대가 된 지금은 편안한 상태이다. 대단한 걸 이루어서가 아니라 내 그릇을 알게 되면서 그 안에서 만족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 이젠 오십대를 꿈꾸게 된다. 젊은 아빠가 아니라 건강한 아빠이고 싶다. 건강한 남편, 건강한 남자, 건강한 사람, 건강한 삶.
혼자서 자기 삶의 지도를 완벽하게 그리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요즘 당신의 삶을 자유롭고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북돋운 타인의 말이나 행동이 있나?
음, 이걸 말하면 지금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확 걸려버리는데.(웃음) 에크하르트 툴레라는 작가가 요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이제는 예전처럼 걱정을 사서 하고 늘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진 않겠군.
최악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완전히 깊숙히 깨닫고 인정하게 됐다. 그 뒤로 쓸데없는 생각을 덜 하게 됐다. 게다가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나. 어찌 보면 신의 한수인 게, 하루하루가 바빠서 망상할 겨를이 없다.(웃음) 현실을, 순간을 살 뿐이다.
생활의 변화가 당신의 연기에서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차차 알게 되겠지.
그동안의 경험이 나의 연기에 어떻게 작용할지 나 역시 궁금하고 기대된다. 간간이 작품을 해오면서 한쪽 발만 담근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분명 다를 것이다. 물론 한 번에 보여지진 않을 것이다. 다시 갈고 닦아야 한다. 안 쓴 지 오래됐지 않았나. 열심히 해보겠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포스터가 기억 나나?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당신은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했다. “영화 속 유일한 20대인 기태는 거기 딸려가면서 뒤를 돌아보며 웃고 있어요. 어딜 가는지도 모르면서 좋은 거죠. 그 미소는 인생의 뒤를 돌아보는 웃음이 아니라 관객을 바라보며 영화의 의미를 전달하는 거죠. ‘나 어딘가로 가요. 기분 좋아요.’” 20년 전 영화 포스터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지금 얼굴이 꼭 그때와 닮아서다.
무슨 점쟁이신지?(웃음) 안 그래도 내년 농사지으러 가야지. 지금부터 작품을 찾고 하반기에는 작업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나도 내가 성장했길 바란다. 앞으로 삶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보고 싶다. 기분은, 좋다.
셔츠, 팬츠, 슈즈는 모두 Ferragamo. 목걸이는 Chrome Hearts. 오른 팔에 찰용한 팔찌는 모두 Chrome Hearts. 왼손 팔의 팔찌는 모두 Bulletto. 안경은 36만8천원 Gentle Monster×Maison Margiela.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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