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향한 디올의 2023 가을 컬렉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인도로 향한 디올의 2023 가을 컬렉션

현대사회에서 패션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에 대하여.

BAZAAR BY BAZAAR 2023.05.03
뭄바이 상징 중 하나인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를 배경으로 펼쳐진 디올 2023 가을 컬렉션.

뭄바이 상징 중 하나인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를 배경으로 펼쳐진 디올 2023 가을 컬렉션.

자수, 이 단어에 담긴 뜨거움을 알고 있는가. 자수는 가부장제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위치의 여성들이 수행해온 행위 중 하나다. 놀랍게도 그건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똑같은 논리로 이뤄졌다. 한국의 규방에서도, 아프리카의 마을에서도, 영국의 왕실에서도, 인도의 길거리에서도 바늘과 실을 든 여성들이 있었다. 때로는 여성에게 여성성을 강요하기 위해, 때로는 사회로 나가려는 여성들을 가두기 위해 자수는 늘 여성의 몫으로 여겨졌다. 언제나 여성의 편에 서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던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인도로 향했다. 더 구체적인 목적지는 인도의 여성 자수가들을 양성하는 차나키야 공예학교다. 이 목적지가 알려주듯 디올과 인도의 만남은 단순한 콘셉트를 넘어 여성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있다.
인도란 참 묘한 나라다. 인도는 언제나 그저 한 나라가 아니었다. 인도는 하나의 꿈이었고, 관념이었으며, 수천 년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과도 같았다. 마르코 폴로는 13세기에 인도를 방문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며 신비로운 땅”이라고 감탄했다. 그때 그가 관찰한 인도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거의 다름이 없다. 그들이 지닌 건 물질적 풍요와는 다른 문화적 부유였다. 인도의 거리는 풍요의 과잉과 과잉의 풍요로 쉴 새 없이 부풀어 올랐다. 오랜 기간 인도는 다른 문명과의 대화를 통해 문화적 풍요를 이룩했다. 그 증거가 향료와 차, 그리고 섬유 문화다. 특히 섬유를 장식하는 인도인만의 방법은 탁월하다. 특유의 염색 기술과 직조, 자수, 아플리케, 퀼팅 등을 사용하여 독특한 미적 감각을 섬유에 담았다. 그 호화로운 문화의 저변에는 언제나 인도의 여성들이 있었다.
 
모던하고 유연한 디올 실루엣에 인도 고유의 컬러와 차나키야 아틀리에의 수작업이 섬세하게 중첩된 디올 2023 가을 컬렉션. 모던하고 유연한 디올 실루엣에 인도 고유의 컬러와 차나키야 아틀리에의 수작업이 섬세하게 중첩된 디올 2023 가을 컬렉션. 모던하고 유연한 디올 실루엣에 인도 고유의 컬러와 차나키야 아틀리에의 수작업이 섬세하게 중첩된 디올 2023 가을 컬렉션.
디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오늘날 가장 특이한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녀는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를 이끄는 몇 안 되는 여성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여성의 관념을 바꿔놓는, 일종의 사회운동가와 같은 역할을 자처한다. 이번 디올 2023 가을 컬렉션에서는 그동안 반짝이는 스타들의 만남으로 점철되어온 ‘협업’의 문화를 바꿔놓았다. 항상 어두운 무대 뒤에서 재료나 도구로서의 역할만 해오던 인도의 자수 장인들과 함께한 것. 자수와 여성의 위상이 한 번에 상승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3월의 어느 날, 인도 뭄바이 디올의 쇼장에서 이뤄진 것이다.
 
손으로 만든 입체적인 꽃과 잎사귀가 마치 정원을 연상케하는 피날레 드레스에 마지막 터치를 하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손으로 만든 입체적인 꽃과 잎사귀가 마치 정원을 연상케하는 피날레 드레스에 마지막 터치를 하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바늘과 실을 든 수많은 인도 여성 중 한 명인 카리시마 스왈리(Karishma Swali)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 우정(과 때로는 영감)을 나눠온 30년 지기 친구이자 인도 여성 공예가를 양성하는 차나키야 공예학교의 아티스틱 디렉터다. 둘의 끈끈한 우정은 탁월함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에서 비롯됐다. 두 사람은 다면적인 매력을 지닌 자수 공예를 보존하겠다는 굳건한 의지 아래 디올의 컬렉션을 통해 현대적 공예로서의 패션을 실험해왔다. 일례로 디올의 2021-2022 가을-겨울 오트 쿠튀르 패션쇼에서는 차나키야 아틀리에와 차나키야 공예학교의 노하우가 어우러진 350m² 규모의 화려한 자수의 방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디올 2023 가을 컬렉션을 통해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 카리시마 스왈리, 디올과 차나키야 공예학교, 프랑스와 인도의 협업이 선보였다.
 
무려 3백 가지의 기술을 갖춘 차나키야 아틀리에 장인들이 자수와 염색 작업을 하고 있다.무려 3백 가지의 기술을 갖춘 차나키야 아틀리에 장인들이 자수와 염색 작업을 하고 있다.
 
디올 2023 가을 컬렉션의 무대는 타지마할 호텔 바로 옆에 있는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Gateway of India)에 세워졌다. 인도의 전통 문발인 토란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약 8미터의 웅장한 무대 장식 역시 인도 여성들의 손끝에서 나왔다. 해가 저물자, 인도의 전통음악을 배경으로(이 역시 여성의 목소리로!) 디올의 아름다운 밤이 시작됐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 사이에서 열정적인 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아이디어는 인도의 텍스타일 전통에 경의를 표하는 다채롭고도 색다른 룩으로 표현됐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고대 기법에 따라 직조된 실크를 비롯해 튜닉, 매듭 디테일의 스커트, 드레이프 드레스는 인도식 풍요로움을 담고있다. 이 옷들을 보면 문득 과거 무슈 디올과 이브 생 로랑에 이어 디올을 이끌던 아트 디렉터 마크 보앙의 컬렉션이 떠오른다. 1960년부터 1989년까지 디올의 아트 디렉터였던 마크 보앙은 뭄바이와 델리에서 프랑스와 인도 사이의 대화를 이끌어내며 디올 아카이브에 길이 남을 모델을 탄생시킨 바 있다. 이번 디올 2023 가을 컬렉션은 마크 보앙의 작품을 오마주해 실크 소재에서만 구현 가능한 찬란한 색조의 그린, 옐로, 핑크, 퍼플을 이용했다. 이 컬러들은 세련된 이브닝 코트와 사리에서 영감을 받은 스트레이트 스커트, 전통적인 인도 스타일의 팬츠, 볼레로, 재킷 등에 칠해졌다. 그 순간 패션이란 우리의 인생에 온기와 색채를 더하고, 거기에 비중과 맥락, 특색 따위를 부여하는 무언가임을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컬렉션의 주인공이자 연구의 수단으로서 공예 기술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활짝 펼쳐 보이는 자수 역시 다채롭게 옷 위에 새겨졌다. 이번 컬렉션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손으로 그 작은 자수들의 요철을 만져볼수록 더 깊게 빠져든다. 인도의 여러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예 기법이 반영된 정교한 자수 기법은 ‘호화로움’이 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패션은 문화 내부에 순환하고 있는 중요한 관심사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패션 디자이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이번 쇼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자수와 인도의 재발견이자 궁극적으로 여성 공예가들의 재발견이다. 그건 최근 패션쇼에서 본 가장 놀라운 시퀀스 중 하나다.
 
런웨이의 배경이 된 토란을 제작 중인 장인들.

런웨이의 배경이 된 토란을 제작 중인 장인들.

윌리엄 모리스가 지적했듯이 공예는 ‘예술가와는 구분되는 보통 사람들(people)에 의해, 보통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지며 제작자와 사용자에게 모두 기쁨을 준다’. 바늘과 실을 지닌 여성들은 언제라도 한 곳에 모여 대화했고, 자수라는 공통점으로 생기는 연대는 여성들의 지난한 삶에 힘이 되었다. 그것이 윌리엄 모리스가 말하는 공예의 기쁨이자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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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김경후
    글/ 김민정
    사진/ ⓒ Dolly Devi(1,2),Prerna Nainwal(4,5)
    사진/ Sahiba Chawdhary(3,6,7)
    사진/ ⓒ Chanakya School Of Craft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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