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뭄바이 상징 중 하나인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를 배경으로 펼쳐진 디올 2023 가을 컬렉션.
인도란 참 묘한 나라다. 인도는 언제나 그저 한 나라가 아니었다. 인도는 하나의 꿈이었고, 관념이었으며, 수천 년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과도 같았다. 마르코 폴로는 13세기에 인도를 방문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며 신비로운 땅”이라고 감탄했다. 그때 그가 관찰한 인도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거의 다름이 없다. 그들이 지닌 건 물질적 풍요와는 다른 문화적 부유였다. 인도의 거리는 풍요의 과잉과 과잉의 풍요로 쉴 새 없이 부풀어 올랐다. 오랜 기간 인도는 다른 문명과의 대화를 통해 문화적 풍요를 이룩했다. 그 증거가 향료와 차, 그리고 섬유 문화다. 특히 섬유를 장식하는 인도인만의 방법은 탁월하다. 특유의 염색 기술과 직조, 자수, 아플리케, 퀼팅 등을 사용하여 독특한 미적 감각을 섬유에 담았다. 그 호화로운 문화의 저변에는 언제나 인도의 여성들이 있었다.




손으로 만든 입체적인 꽃과 잎사귀가 마치 정원을 연상케하는 피날레 드레스에 마지막 터치를 하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디올 2023 가을 컬렉션의 무대는 타지마할 호텔 바로 옆에 있는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Gateway of India)에 세워졌다. 인도의 전통 문발인 토란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약 8미터의 웅장한 무대 장식 역시 인도 여성들의 손끝에서 나왔다. 해가 저물자, 인도의 전통음악을 배경으로(이 역시 여성의 목소리로!) 디올의 아름다운 밤이 시작됐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 사이에서 열정적인 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아이디어는 인도의 텍스타일 전통에 경의를 표하는 다채롭고도 색다른 룩으로 표현됐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고대 기법에 따라 직조된 실크를 비롯해 튜닉, 매듭 디테일의 스커트, 드레이프 드레스는 인도식 풍요로움을 담고있다. 이 옷들을 보면 문득 과거 무슈 디올과 이브 생 로랑에 이어 디올을 이끌던 아트 디렉터 마크 보앙의 컬렉션이 떠오른다. 1960년부터 1989년까지 디올의 아트 디렉터였던 마크 보앙은 뭄바이와 델리에서 프랑스와 인도 사이의 대화를 이끌어내며 디올 아카이브에 길이 남을 모델을 탄생시킨 바 있다. 이번 디올 2023 가을 컬렉션은 마크 보앙의 작품을 오마주해 실크 소재에서만 구현 가능한 찬란한 색조의 그린, 옐로, 핑크, 퍼플을 이용했다. 이 컬러들은 세련된 이브닝 코트와 사리에서 영감을 받은 스트레이트 스커트, 전통적인 인도 스타일의 팬츠, 볼레로, 재킷 등에 칠해졌다. 그 순간 패션이란 우리의 인생에 온기와 색채를 더하고, 거기에 비중과 맥락, 특색 따위를 부여하는 무언가임을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컬렉션의 주인공이자 연구의 수단으로서 공예 기술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활짝 펼쳐 보이는 자수 역시 다채롭게 옷 위에 새겨졌다. 이번 컬렉션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손으로 그 작은 자수들의 요철을 만져볼수록 더 깊게 빠져든다. 인도의 여러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예 기법이 반영된 정교한 자수 기법은 ‘호화로움’이 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패션은 문화 내부에 순환하고 있는 중요한 관심사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패션 디자이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이번 쇼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자수와 인도의 재발견이자 궁극적으로 여성 공예가들의 재발견이다. 그건 최근 패션쇼에서 본 가장 놀라운 시퀀스 중 하나다.

런웨이의 배경이 된 토란을 제작 중인 장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