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블 흔적이 고민이던 에디터 J는 레이저 박피 시술을 받았다. 자극을 줄이고 햇빛을 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누구보다 바쁜 그녀가 칩거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의사는 다음 두 가지를 당부했다. 완벽한 자외선 차단과 순한 클렌징! J는 고민에 빠졌다. 철벽 자외선 차단을 위해 꼼꼼하게 선블록을 덧바를수록 클렌징은 어려워질 텐데, 의사가 권하는 순한 클렌징이 현실 가능할까?
의사가 J에게 권했던 건 워터 클렌저였다. “계면활성제가 가장 적게 들어 있으니까요.” 아모레퍼시픽 HBD2 랩 유현주는 “일반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라고 답하면서도 “제품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조건을 붙였다. 브랜드별, 제조사별로 차이가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이쯤에서 세정제가 ‘순하다’의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원한 논쟁의 화두, 계면활성제는 화장품 내에서 몇 가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클렌저에서는 노폐물을 제거하며, 토너와 같이 찰랑이는 워터 제형에선 향료 혹은 소량의 오일 친화적 성분이 잘 섞이도록 한다. 또 크림 등의 오일 제형 중에는 친수성을 가진 성분까지 한 몸이 되도록 돕는다. 별도의 물 세안이 필요 없다는 요즘의 워터 클렌저는 세정을 위한 계면활성제 대신 토너에 들어가는 가용화 혹은 유화용 계면활성제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익명의 연구원은 “예전에는 워터 클렌저도 세정용 계면활성제를 사용했어요. 하지만 바이오더마 클렌저의 등장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죠.”라고 귀띔한다. 계면활성제의 함유량이 줄어들며 그 종류도 바뀌었다는 것. 물론 가용화용 역시 피부의 기름과 만나면 세정 효과를 발휘하지만 그것이 세정을 목적으로 설계된 예전 제품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또한 토너에 들어가는 계면활성제는 이미 안정화가 끝난 상태, 워터 클렌저의 그것은 피부에 닿으며 활동을 시작하도록 설계됐으니 정말 물로 헹구지 않아도 되는지, 클렌저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하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워터 클렌저의 효용을 ‘순하다=능력 없음’으로 일반화할 수 없는 건 제품의 설계 노하우 때문. 가용화제 중에서도 세정 능력이 뛰어난 고가의 성분을 사용하거나 세정용 계면활성제의 ‘순한’ 성질을 강조하기 위해 가용화제로 등록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또 제품에 따라 두 종류를 함께 쓰기도 하며 친수성 밸런스를 정교하게 이용해 레시피를 짜기도 한다. 즉, 앞서 “제품마다 다를 수 있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순한’ 워터 클렌저에는 또 하나의 의구심이 있다. 클렌징 워터는 보통 화장솜에 덜어 사용하는데 피부를 여러 번 문질러 닦아내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에디터 J는 검색에 돌입했고 마침내 솔깃한 사용법을 찾아냈다. 워터 클렌저를 펌프형 버블 메이커에 덜어 거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 영상 속 뷰티 엑스퍼트는 “워터 클렌저를 화장솜에 적셔 쓰는 이유는 제형이 묽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마치 폼 클렌저처럼 형태를 바꿔 마사지하듯 롤링해주면 피부에 자극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LG생활건강 페이셜클렌저 연구랩 책임연구원 정재범은 이에 다음과 같은 명쾌한 답을 보내왔다. “거품 형태로 사용해도 계면활성 성분의 변동은 없기에 제품 자체의 세정력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워터 클렌저는 제형에 사용된 계면활성 성분과 화장솜의 물리적인 제거력이 결합될 때 최고의 세정력을 발휘하도록 설계된 제품입니다.” 예젤의원 이상욱 역시 “거품이 자극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세정력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고 표했다. 워터클렌저는 진한 메이크업을 완벽히 지우는 데 한계가 있다. 더불어 무기자외선차단제 등 오일을 베이스로 하는 제품들은 오일 클렌저로 지울 때 더 효과적이다. 클렌징 오일이나 로션과 같은 유성 세안제를 사용해 세안한 후 워터 클렌저를 화장솜에 덜어 2차 세안 하는 것을 추천한다.
에디터 J는 오일이 두렵다. 파워 지성이기 때문. 물론 뷰티 에디터로서 진화한 클렌징 오일이 1차 세안만으로 충분하며 지성 피부도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자료를 수없이 받아왔다. 그럼에도 세안 후 간증하는 촉촉함이 보습의 실화인지, 아니면 끈적임의 실체인지 항상 궁금했다. 워터로 기름을 지워내는 것과 기름으로 기름을 지워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다. 클렌징 워터는 계면활성제가 피부의 기름을 감싸안아 떨어내는 원리라면, 클렌징 오일은 세정하고자 하는 기름과 완전히 한 몸을 이뤄 깍지를 낀 후 비로소 계면활성제가 일을 시작한다. 대부분의 메이크업 제품은 기름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후자가 더 효과적인 것은 팩트다. 피지, 노폐물 역시 오일 성분이기 때문에 클렌저와 한 몸을 이뤄 떠날 준비를 하기에 좋다. 이상욱 역시 지성 피부에도 클렌징 오일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지성 피부의 모공 속 청결을 위해서입니다.” 관건은 이 다음이다. 노폐물과 한 몸이 된 오일을 피부에서 완벽히 제거하는 단계 말이다. 브랜드사에서는 물을 묻혀 거듭 마사지하는 단계, 즉 유화 과정을 통해 완벽히 떨어내면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게 사용해 건조함을 극복해낸 오일 모범생들이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연구원의 레시피가 나의 욕실을 완벽히 컨트롤할 수는 없다. 유현주는 “지성 피부는 트러블이 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클렌징 후 피부에 남아 있는 오일 때문이죠. 이 잔여 오일을 잘 제거해주는 것이 관건입니다.”라고 조언한다.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이중 세안을 제안한다.
무기자외선차단제에는 오일, 유기자외선차단제에는 워터?
자외선을 방어하는 기전은 두 가지다. 방패처럼 튕겨내는 무기자외선차단제, 자외선을 흡수해 무력화시키는 유기자외선차단제가 그것이다. 요즘 전자는 오일로, 후자는 워터로 지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썰’이 있다. 기름이 바탕이 되는 제품이냐, 물이 바탕이 되는 제품이냐를 나눠 세안하라는 거다. 그렇다면 심리적으로 오일이 싫은 에디터 J는 유기자외선차단제를 사용해야 할까? 정재범은 자외선 차단의 원리에 따라 클렌저의 궁합을 일반화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제형에는 오일 친화적인 성분과 수분 친화적 성분이 혼합되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자외선차단제의 핵심 성분만을 두고 클렌저를 논하기는 다소 조심스럽다. 물론 예전보다 물과 친한 자외선차단제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익명의 연구원은 소비자의 니즈가 제품을 바꿨다고 전한다. 가볍고 산뜻한 제형을 선호하는 시장 흐름에 따라 기름 친화적인 자외선 차단 성분도 캡슐로 감싸 수상 제형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밀착력은 높아졌지만 씻겨나가는 건 더 수월해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자외선차단제는 오일로 닦아내길 권한다. 유기자외선차단제에도 오일 성분은 있고, 호모마스쿠스 시대의 밀착력을 위해 새로운 제형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기 때문. 그래서 수많은 ‘카더라’에 의구심을 품던 에디터 J는 현재 어떻게 세안하고 있을까? 안전하게, 효과적으로 자외선차단제를 씻어내기 위해 짧고 굵게 클렌징 오일을 사용하고 이중 세안을 통해 잔여 오일을 한 번 더 제거하기로 했다. 그리고 세정력이 낮지만 순한 워터 클렌저는 아침에 사용한다. 버블 형태로 만들어 가볍게 닦아내고 물로 헹군다. 라이프스타일, 피부 타입, 화장 습관, 생활 패턴에 맞춘 클렌징 패턴을 구축하자 마음과 피부가 한결 편안해졌다는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