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박서보, 영원한 슈퍼 실버

박서보의 이름 석 자는 “나이를 초월하는 열정과 노력으로 힙하고 쿨한 작품을 만들고 동시대와 소통하다”라는 의미의 ‘고유동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BYBAZAAR2021.11.08

영원한 슈퍼 실버, 박서보 

〈Ecriture (描法) No. 120715〉, 2012,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31x200cm. 1970년 즈음부터 ‘묘법’이라 통용되고 있는 ‘에크리튀르(écriture)’는 불어로 ‘글을 쓰다’ ‘쓰여진 것’ 등을 뜻한다. 캔버스를 물감으로 덮은 후 연필로 쓰고 지우는 초기 연필 묘법에서 기인했으나 그 과정과 행위 자체를 강조한다.

〈Ecriture (描法) No. 120715〉, 2012, Mixed media with Korean hanji paper on canvas, 131x200cm. 1970년 즈음부터 ‘묘법’이라 통용되고 있는 ‘에크리튀르(écriture)’는 불어로 ‘글을 쓰다’ ‘쓰여진 것’ 등을 뜻한다. 캔버스를 물감으로 덮은 후 연필로 쓰고 지우는 초기 연필 묘법에서 기인했으나 그 과정과 행위 자체를 강조한다.

박서보 전시가 ‘장안의 화제’가 될 조짐은 기자간담회 당일부터 보였다. 어느 작가의 개인전을 공식 선포하는 이 딱딱한 자리가 더할 나위 없이 화기애애했다. 평소보다 수가 많았던 방송사들의 주파수가 엉키는 통에 마이크 없이 행사를 진행했음에도, 우렁찬 목소리가 온 공간을 점령했다. 경험과 신념 그리고 성과를 모험담처럼 펼쳐 보이는 그의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내로라 하는 미술 전문 기자들은 거침없기로 정평이 난 그의 입담에 귀를 기울이고, 호응했으며, 가끔 크게 웃었다. 포토타임은 지난 몇 년간 진행한 간담회 중 가장 치열했고, 작가와 기념사진을 찍겠다며 순서를 기다리는 기자도 여럿이었다. 그의 손을 부여잡고 쉼 없이 말을 붙이는 이들 덕분에 그는 지팡이를 짚고 선 채로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나는 평소와는 다른 이 풍경이야말로 90년의 생을 살아낸 노화백을 향한 완전한 인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인정한다’는 건, ‘그럼에도’라는 단서가 전제된다는 의미에서 좋아하다, 존중하다, 존경하다 등에 앞서는 본질적인 행위다.
 
지난 2010년, 지금은 기지 재단이라는 의미 있는 건물로 환골탈태한 연희동 작업실을 찾은 적이 있다. 국제갤러리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거의 동시에 열린 개인전을 맞아 작업세계를 조망하는 인터뷰였다. 이번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이후 몰두해온 색채 묘법이 대거 선보였다. 하지만 그땐 미처 몰랐다. 이 즈음부터 단색화의 존재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대대적인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본격 발현되며 단색화의 가치를 안팎으로 숙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그러므로 그의 전시들이 일종의 신호탄이 되었다는 것도 말이다. 박서보는 평생 “변해도 추락하고, 변하지 않아도 추락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일어난 그를 둘러싼 변화들은 필연이나 다름없다.
 
당시 나는 병상에 있던 백남준이 가장 주목하는 작가로 박서보를 콕 찍어 언급했다는 에피소드를 글의 맨 앞에 언급했지만, 이제는 굳이 백남준의 예언까지 소환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그의 전시를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같은 문장으로 부연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마땅히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동양의 모노크롬’이라 불리던 시절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단색화(Dansaekhwa)’를 척척 발음해내는 해외 미술 관계자와 컬렉터들을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색채학적 색과 시각을 중시한 서양 모노크롬과는 달리 단색화는 수행과 관조, 신체적 행위와 재료의 물성이 만난 ‘몸성’에 바탕한 미술임을 일일이 구분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어린 아들이 종이에 무언가를 썼다 지웠다 하다가 결국 체념하는 모습에서 묘법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중요하게는 단색화가 세계 미술사에서 중요한 사조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과 미술시장에서의 뜨거운 반응을 분리할 수 없다. 그의 작품 가격은 10여 년 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인 데다, 귀띔하자면, ‘없어서 못 판다’.
 
작가 본인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거대하고도 직관적인 변화, 그 핵심은 가장 가까운 전시장 풍경에서 찾을 수 있다. 관객층이 훨씬 젊어졌을 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해진 것이다. 기성세대의 전유물이었던 당시와는 달리, 20대 관객, 가족 단위, 데이트하는 커플 관객도 많다. 다른 전시와 달리 남성 관객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는 건 연령대는 물론 성별로도, 즉 관객층이 종횡으로 확장되었다는 얘기다. 관객의 다양성은 전시 관람 행위의 다양성을 수반한다. 그의 전시장에서는 소위 미술작품 앞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펼쳐진다. 작품 정면을 응시하고, 옆면을 관찰하고, 한 발 더 가까이서 자세히 보고, 다시 물러나 한참을 서 있고, 작품에 카메라를 갖다 대고, 셀카를 찍고, 동행인의 사진을 찍어주고, 전시 소개 글을 읽고, 다시 작품에 집중하는 식의 패턴이 반복되며 공간을 풍성하게 일군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모나리자〉를 찾은 관객들은 평균 15초를 보낸다지만, 박서보의 작품 앞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예술작품이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순간에 관객이 지속적,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만 작품의 의미가 활성화된다.” 단색화를 연구해온 학자 조앤 기가 〈옥스퍼드 아트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발췌한 이 문장은, 지금만큼은 박서보를 위한 것이다. 박서보의 위력은 딜레당트(예술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든 딜레당트로 만든다는 데서 발휘된다. 그간 한국미술계가 절실하게 피력해온 단색화의 가치를, 작가가 부단히 설파해온 ‘미래예술’의 본질을, 관객들은 묘법 작품에서 발견하고 개인적인 언어로, 부드러운 감성으로, 생생한 감각으로 표현해낸다. 물론 그가 화단의 거대권력이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반대하고 저항한 ‘반국전 선언’의 주인공이었음을, 엥포르멜 같은 전위적 흐름을 이끌었음을, 작가가 주장한 바 “무목적성, 무한반복성, 행위과정에서 생성된 흔적(물성)을 정신화하는 것”이 단색화의 필수요소임을, 이들은 모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구순의 화백이 선물한 값진 아름다움’(ii_wander_er)을 인식하고, ‘90살이 되신 작가님의 세월이 울퉁불퉁한 고랑을 파며 끝없이 지나간다.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했다’(silvertree_) 고백하는 이들의 존재는, 박서보의 예술이 후대의 몸에, 정신에, 이들이 살아보지 못한 과거를 상기시킨다는 사실을, 예술은 곧 치유여야 한다는 작가의 철학을 현실로 증명하고 있다.
 
요즘 관객들은 SNS를 통해 박서보 작품의 보편타당한 아름다움을 기록한다. 절제된 색, 반복적 리듬, 풍부한 질감을 통해 동시대적 모더니즘을 읽어내는 것이다. ‘단색화를 잘 모를뿐더러 평행선처럼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한 이들(dayofsepia)도 떨림을 경험한다. ‘결과보다는 수행이고 과정이라는 그의 말이 올곧은 선 사이를 슥슥 지나다닌다’는 표현은 정확하고, ‘일정한 간격의 한지 고랑 때문에 45도 각도에서 보면 색채감과 입체감이 더 잘 살아난다’(ihwanhee)는 조언은 유용하다. ‘색의 인지를 넘어 색의 경험을 확장하며, 색의 숨겨진 영역을 발견하게 하는 예술적 체험’(benjamine_ra)이나 ‘마음을 문지르는 그림’(yuzz_uz)은 작가가 평생 그림을 수신의 도구로 삼으며 의도한 바다. ‘노화가의 연륜과 철학에 신선한 색감을 더한 작품’(rileyseoinjo)과 ‘핫하고, 힙하고, 예쁘고, 깊고, 귀하디귀한 색감’(leialikes_)은 자연과 일상에서 유인한 색을 끝내 고유한 색으로 만드는 작가의 노력을 보전한다.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세련된 분’(nylover.lifestyle)인 박서보가 1931년생이라는 사실에도 열광한다.
 
최근 젊은 컬렉터들이 국내외 갤러리를 찾아다니거나, 옥션을 활용하거나, 미술품 분할구매를 통해 박서보의 작업을 ‘소유’한다는 소식도 자주 기사화된 바 있다. 와인바 ‘오프닝’을 운영하는 어느 30대 컬렉터는 그의 작품을 7점 갖고 있는데, 특히 바에 200호짜리 묘법 작품을 걸어두고 고객들과 공유한다. 작품 구입 시 그는 오래 볼 수 있을지, 작품의 개념과 명분이 타당한지, 그리고 시장선호도까지 살피고자 하는데, 박서보의 작업은 이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했다. “1년 전쯤, 4호짜리 소품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노화백의 그림이라 그저 클래식할 거라 예상했는데, 엄청 쿨하고 젊은 에너지에 놀랐죠. 특유의 색감과 에너지는 작가님의 철학과 역사 자체를 인정하게 할 뿐 아니라, 미술 전반에 더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요.” 그는 트렌드를 한 보 앞서 서브컬처에 탐닉하는 ‘스트리트 피플’ 사이에서 요즘 미술, 특히 박서보의 존재와 작품은 남다른 취향의 결정체로 통한다고 덧붙였다.
 
좋은 작품이란 새로운 작품을 의미한다. 하늘 아래 온전한 새로움을 창조하는 건 어차피 인간 능력 밖의 일이니, 결국 새로운 예술이란 새롭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새롭다고 여기지 못한 걸 인식하고 발견하게 하는 것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시대의 본질과 흐름을 고민해 미술사에 유의미한 균열을 일으키고, 또 다른 길로 만들어온 박서보의 작업은 끊임없이 관객을 탄생시키고, 감동시키며 그들의 삶에 각인됨으로써 스스로 새롭고자 한다. 그렇게 그의 이름 석 자는 ‘한국 현대미술의 아버지’ ‘미술계의 거장’ 등에 머물지 않고, “나이를 초월하는 열정과 노력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동시대와 소통하다”는 의미의 ‘고유동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역설적으로, 변치 않는 것들 덕분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소싯적 까만 양복에 흰 장갑을 끼고 다녀 ‘명동 백작’이라 불렸을 정도의 패션 감각이나 요즘도 중요한 날이면 꼭 챙기는 큼지막한 자수정 반지만큼 변함없이, 자신의 뜻을, 노력을 당당하게 드러내 정직하게 평가받고자 초지일관하는 고집과 자부심. 예의 젊은 컬렉터는 “선생님이 아름다운 작품과 완벽한 개념을 만들어 놓고, 모두들 미술에 관심을 가지는 오늘 같은 나날을 기다리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실은 시대가 그를 기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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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윤혜정(국제갤러리 디렉터)
  • 에디터/ 손안나
  • 사진/ 국제갤러리
  • 웹디자이너/ 민현지